[작가]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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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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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ilius Patavinus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 Patavinus, 1275?~1343?)는 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 대학의 공증인이었던 본마테오 데이 마이나르디니(Bonmatteo dei Mainardini)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러 문헌 증거에 따르면, 그는 파도바에서 의학을 배운 듯하며 아베로에스주의에 경도되었다. 제1차 파리 체류 기간이었던 1312년 성탄절부터 1313년 3월까지 파리 대학 총장을 지냈으며, 제2차 체류 기간이었던 1320년부터는 의사로서 활동하면서 파리 대학 인문학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교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2차 체류 기간 동안 그에게는 바이에른의 루트비히의 조력자로서 독일에 대한 정치적 관심과 반(反)교황적 분위기가 생긴 듯한데, 이것이 1324년 『평화의 수호자』에서 표현되었다. 이 중대한 변화에서 특별한 점은 그가 당시 파리에서 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독일에서의 정치적 격변과 프란체스코회와 교황 요한 22세 간의 청빈 논쟁 발발 등 연이은 사태는 그로 하여금 더욱더 황제 편에 서게 만들었다. 그는 1328년 4월 15일에 황제 대리인으로, 그 후 밀라노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황제의 이탈리아 정책 실패는 그를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1343년 4월 10일, 그는 클레멘스 6세의 한 담화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언급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1341~42년 사이에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제국의 이전에 대한 논설』(Tractatus de translatione Romani imperii), 『작은 수호자』(Defensor Minor), 『결혼 문제에서 황제의 사법권에 대하여』(De Jurisdictione Imperatoris in causa matrimoniali)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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