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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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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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육십 다섯이다. 지나고 보니 그래도 50대가 좋았다 살림살이 좀 정리되며 안정도 찾아, 세상이 제대로 보이고 글이 그나마 글 같았다. 단어가 빨리 떠오르고 판단도 빨라 쓸 말과 할 말을 걸러내기도 지금보다 수월했다. 그렇다면 40대가 훨씬 나은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 그때는 오욕칠정, 거품처럼 일어났었다. 이웃보다 잘 꾸미며 살고 싶었고 품위와 격조는 어설프면서도 여왕처럼 살고팠다. 불혹이 아닌 미혹. 이때도 글은 썼었지만, 서점에 나온 수많은 활자의 진실은 대담한데 나의 말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가 아닌 잔망스런 사실만 늘어놓는, 말하자면 가관이란 말이 맞다. 30대는 뭘 했나. 아이와 남편의 세계가 전부인 양 이런 게 여자의 일생인가 싶었다. 아들은 어렸었고 남편과는 삐걱대며 결혼에 대해 회의감. 그러면서 아이를 향한 무한사랑으로 어미로 한 남자의 아내로 지지고 볶는다는 말뜻을 경이롭게 절절하게 경험했다. 그럼 20대로 돌아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썩 가고 싶지 않다. 목련처럼 산수유처럼, 벚나무처럼 온몸이 달큰함으로 물이 올랐지만 청춘이라는 멋들어진 어감보단 숫자만 풋풋했다. 인생에 대해, 앞날에 대해 유심히 골똘해지지만 정답 없는 문제집만 풀고 풀었다. 10대 때는 표준전과처럼 고 나이의 표준대로 눈치코치도 늘어가고 부모님에 대한 반항과 내 안에 불확실한 불안이 묘하게 뒤틀리며 매캐한 연기를 피워댔다. 매사에 불만이며 표출하자니 구실은 빈약했다. 몸은 자꾸만 허물을 벗어 용모는 뚜렷해지는데 몸의 변화에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정신세계는 가만히 있자니 원인 없는 열불이 나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올인하며 위안을 얻었다. 집에선 침묵하고 밖에서만 수다스러워지는 시절. 그전은 어땠나 5,6,7,8,9 그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때였지 싶다. 어른들이 들려주는 말과 뜻을 하나하나 익혀가며 학교라는 작은 사회, 그 놀이터에서 자라는 내 키만 몸무게만큼의 세계가 아마도 날마다 해마다 신세계였을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태어나기 전으로 갈 수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다. 카오스, 카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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