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윌리엄 베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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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윌리엄 베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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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everidge
1879년 영국령 인도의 랑푸르(오늘날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과 고전학을 배웠으며, 나중에 법학을 공부했다. 변호사가 된 후 런던의 자선단체에서 활동하며 빈곤 퇴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명한 사회주의자 비어트리스 웹의 소개로 정부에서 실업 문제를 해결할 국민보험 실행 관련 업무를 맡았으며, 1919년에는 그녀의 초청으로 런던정경대학(LSE) 총장이 되어 18년 동안 대학 행정을 이끌었다. 1933년에는 학문원조위원회(AAC)를 결성해 나치 독일에서 해직된 교수를 돕는 활동을 주도했으며, 1937년 옥스퍼드대학교 유니버시티칼리지 학장을 맡았다. 1941년 다시 공직으로 돌아가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에 관한 부처 합동위원회의 책임을 맡았으며, 1942년 12월에 국민최저선, 보편주의 원칙, 완전고용, 사회보장 계획을 강조한 『베버리지 보고서』(원명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를 출간했다. 1944년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영국 북부 노섬브런드 지역의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5년 총선에서는 낙선했으나 『베버리지 보고서』에 실린 그의 제안은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 정부에서 전면적으로 실행되었고, 이는 현대 복지국가의 토대가 되었다. 1946년에는 자유당 소속 상원의원이 되었고, 이후 상원의 자유당 대표로 활동했다. 1963년 노섬브런드에서 별세했다.주요 저서로 『실업: 산업의 문제』(1909), 『사회주의의 계획』(1936), 『12세기에서 19세기까지 영국의 가격과 임금』(1939),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베버리지 보고서』)(1942), 『보장의 기둥』(1943), 『자유 사회의 완전고용』(1944), 『내가 자유주의자인 이유』(1945), 『자발적 행동』(1948), 『권력과 영향』(1953), 『학문의 자유에 대한 옹호』(1959) 등을 출간했다. 그의 이름을 딴 『베버리지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복지국가의 청사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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