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눌재 박상

이전

  저 : 눌재 박상
관심작가 알림신청
1474년(성종 5년) 5월 18일에 광주 서쪽 방하동 본댁에서 태어났다. 형님인 박정에게 글을 배웠다. 남보다 기억력이 뛰어나서 경술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문장이 나날이 나아졌다.
1505년에 전라도사(종5품)가 되었는데, 1506년 8월 금성관에서 우부리(牛夫里)를 곤장으로 때려 죽였다. 우부리는 연산군이 자신의 딸을 총애하자 그 힘을 믿고 제멋대로 포악한 짓을 저질렀다. 남의 부녀자를 약탈하고 남의 논밭을 빼앗아 가졌다. 감히 그의 죄를 다스리는 자가 없었으므로, 선생이 그를 장살(杖殺)하였다.
우부리를 죽이고는 형벌을 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여, 명령을 기다리려고 서울로 올라가는데, 정읍서 10리쯤 지나다가 고개에 이르자 고양이가 나타나서 작은 길로 인도하였다. 선생이 이상하게 여겨서 작은 길로 따라갔다. 그래서 연산군이 보낸 금부도사와 길이 엇갈리게 되었다. 중종이 반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대로 고양이를 따라서 금강산의 절까지 갔다. 중들이 놀라고도 기뻐하면서 “우리 절의 고양이가 보이지 않은 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 지금 행차를 인도하여 왔구나” 하고는 조용한 방으로 맞아들여 머물게 하였다. 그뒤에 광주 오산에 있는 약간의 논밭을 절에 주어, 고양이의 먹이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사람들이 그 고개를 묘망(猫望)이라고 불렀다.
1507년 고관(考官)에 임명되었지만, 굳이 사퇴하여 법관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태학생들이 상소하고 재상들이 구제하여 풀려났다. 1508년 임피 현령(종5품)으로 나갔다(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지방관을 자원한 것이다). 1515년 정월에는 청백리로 뽑혔다.
8월에 순창 군수 김정과 함께 폐비 신씨(신수근의 딸)의 복위를 청하고, 중종반정의 공신이었던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의 죄를 논하였다
1519년 11월에 남곤이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어진 선비들을 귀양 보내었다. 조광조가 능주로 귀양 간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 남문 밖 십 리 되는 곳에 있는 분수원까지 쫓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상중이어서 조정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벗어난 것이다.
1521년 봄에 상주 목사(정3품) 벼슬을 받았다. 여름에 충주 목사로 옮겼다. 남곤이 그를 조광조의 일파라고 상소하여 배척하였다. 1522년 7월에 ≪도정절문집(陶靖節文集)≫을 간행하고, 그 발문을 지었다. ≪동국사략≫을 지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문집을 모아서 간행하였다.
1527년 봄에 파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름에 나주 목사 벼슬을 받았다.
1530년 4월 11일에 방하동 집에서 죽었다. 6월에 봉황산 성재동 묘좌원에 장례지냈다.
1547년(명종 2년 정미년) 4월에 그의 제자인 임억령이 금산 군수로 있으면서 ≪눌재집≫을 간행하였다.

눌재 박상의 대표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