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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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이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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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동물들은 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더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동물들에게, 동물들은 나에게 서로 의존했던 것 같다. 수의사가 되기 전 신학을 전공했다. 신학은 고등학교 때 활동했던 문예반 선배의 영향 때문이다.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권해주던 선배의 뒤를 따라,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닌 어떤 물음 때문에 신학을 선택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은 당시 가장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의 학교였다. 졸업논문은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루이 알튀세르의 구조주의적 독해에 의존해 재해석해 발표했다. 기존 신학논문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허락되었다. 그러나 졸업 후 목회 생활은 전혀 달랐다. 한국교회의 병폐인 근본주의 신학과 기복신앙 등은 우리 교단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학생시절부터 “새로운 교회 공동체 연구소”라는 단체를 창립하면서 한국교회의 대안으로 평신도 신앙 공동체 운동을 했다. 이것은 기존 교단에서 목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의학과를 편입해 다시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할 때 이런 배경을 들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동물을 좋아하는 내 천성 때문이었다.

그동안 임상수의사로 25년 정도 살아왔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사는 분들이었다.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동물병원 차트 안에 담긴 동물들의 이름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 이름 하나하나는 저마다 창의적이고 특별하고 사랑스럽다. 이분들과 동물들은 슬픔과 기쁨, 혹은 불행과 행복 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내 삶 역시 이런 만남 속에서 채색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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