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역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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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역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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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원의 자(字)는 선장(善長)이고 범양군(范陽郡)의 탁군(郡), 즉 현재 하북의 탁주(州) 출신이다. 그의 부친인 역범(?范)은 일찍이 청주자사(靑州刺史)를 지내기도 했다. 역도원의 출생 시기는 현재까지 미상이다. 연구자에 의하면 대략 북위 헌문제(獻文帝) 천안(天安) 원년(466년)이나 이보다 약간 이후인 효문제 연흥(延興) 2년(472년)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일찍이 북위의 수도에 있었던 평성(平城)에서 상서주부랑(尙書主簿郞)과 상서사부랑(尙書祠部郞)을 역임했다가 이후에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에 경사를 떠나서 지방관에 재임하면서 기주진동부(冀州鎭東部)의 장사(長史)와 노양군태수(魯陽郡太守) 및 동형주자사(東荊州刺史)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적 혼란은 역도원으로 하여금 분주하게 전국을 주유하듯이 지방관을 역임하게 했고, 이것이 결국 《수경주》라는 거작을 저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역도원은 한때 관직을 그만두고 10여 년간 귀향을 했다가 후에 다시 하남윤(河南尹)과 어사중승(御使中丞) 등을 역임했다. 마지막으로 북위 효명제(孝明帝) 효창(孝昌) 3년(527년)에 관우대사(關右大使)의 직분으로 소보인(蕭寶?)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음반역(陰盤驛), 즉 현재 섬서 임동(臨潼) 부근에서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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