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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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정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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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응(鄭道應, 1618∼1667)은 본관이 진주이며, 자는 봉휘(鳳輝), 호는 무첨재(無?齋)·휴암(休庵)이며, 1618년 12월 6일 부친 정심(鄭?)과 모친 여강 이씨 사이에 태어났다. 7세에 조부 정경세에게 《사략(史?)》을 배웠고 12세 때 노준명의 문하에 나아가면서 학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열여섯 살에는 할아버지를, 스물한 살에는 할머니를 여의었고 그 이후로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생전에 조부인 정경세에게 부탁받은 고모부 송준길의 세심한 가르침을 받았다.

스물한 살에 유성룡의 아들인 유진의 딸과 결혼해 29세에 아들 석교(錫僑)를 얻었다. 31세였던 1648년(인조 26), 12월,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내시부교관(內侍府敎官)에 제수되었으나 다음 해 1월 도성에 들어가 사은(謝恩)하고 2월에 천연두를 앓는다고 아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2월에 부사용(副司勇)이 되고 4월에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제수되었으며 6월에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에 발탁되어 7월에 도성에 들어가 사은(謝恩)하고 소를 올려 사양했으나 윤허받지 못했다. 10월에 친병(親病)을 아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657년(효종 8), 40세에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에 제수되고 다시 시강원자의에 제수되어 몇 차례 체직을 요청했으나 윤허받지 못했다. 1658년에야 비로소 윤허받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몇 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대부분 사양했다. 1667년(현종 8), 4월 22일 율리의 바깥사랑채에서 50세의 나이로 졸해 현의 북쪽인 가도(佳道)의 동향에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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