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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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이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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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년 12월 경진일(庚辰日)에 이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대릉직 박인육의 딸로 진한국대부인이다. 1301년, 성균시에 장원급제하였고, 또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사관이었던 권부의 사위가 되었다.

1314년, 백이정의 문인으로서 정주학을 연구하였다.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연경(燕京)에 가서 원의 학사 원명선·조맹부·장양호·우집 등과 교유하여 문학이 크게 진취되었고, 조맹부의 서체를 배워 왔다. 1319년, 상왕을 모시고 강향사로 강남 보타굴에 다녀왔다. 이때 왕명으로 오수산이 이제현의 화상을 그렸고, 탕병룡이 찬을 지었다.

1320년 겨울에 원나라에 가다가 상왕의 피참사건을 듣고 <황토점> 세 수의 울분시를 짓고 <명이행> 일 편을 지었다. 1323년, 원나라가 고려의 국호를 없애고 정동성을 설치하려 하자, 이제현이 원의 정부에 상서하여 철회시켰다. 또 상왕의 귀양을 풀기 위하여 원의 승상 백주에게 상서하고 1만 5천 리의 먼길을 떠나 서번의 상왕을 배알하였다.
1342년 여름에 《늑옹패설》을 지었다. 1346년, 서연강설을 사임하고 안축과 이곡을 추천하여 대행케 하였다. 5월에 《효행록》을 짓고 11월에 《본조편년강목》을 왕명으로 중찬하였으며, 또 충렬·충선·충숙왕의 《삼조실록》을 수찬하였다. 문정공 권부의 상을 당하였다.

1351년 겨울에 공민왕이 즉위하자 우정승 권단정동성사가 되고, 도첨의정승이 되어 법사로 하여금 제도존무안렴의 공과를 고핵케 하였다. 이때 공민왕이 원에 몇 달 동안 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현이 국정을 맡아서 많은 치적을 쌓았다.
1361년 2월에 왕명에 의하여 《서경》 무일편을 강하게 하였다. 1365년, 왕이 신돈을 총애하므로 이제현은 신돈의 골상을 들어 경계할 인물임을 주청하였고, 신돈은 백방으로 이제현을 해치려 하였다. 뒤에 신돈의 본체가 드러나자 왕은 이제현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였다. 6월에 조마 호약해가 명주사도 방국진의 사건으로 방물을 바치고 돌아갈 때, 시를 청하므로 오언시 1편을 지었는데 이것이 작시의 마지막이었다.
1367년 7월에 병으로 사저에서 졸하니 태상에서 문충공의 시호가 내렸다. 겨울 10월에 유사가 위의를 갖추어 우봉현 도리촌의 선영 아래 장사하였다가 1376년에 공민왕 묘정에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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