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소개(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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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 Bryan F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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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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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Pat Benatar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노래 : Pat Bena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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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대중적인 팝 록과 하드록을 적절히 배합한 성인 취향의 록으로 당시를 풍미했던 팻 베네타(Pat Benatar)의 인기는 여성 록 보컬리스트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1980년도부터 1984년까지 그래미 최우수 여성 록가수 상을 4회 연속 수상했고, 4곡의 톱10 싱글과 9곡의 톱40 곡을 배출했다. 그녀는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제퍼슨 에어플렌인의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으로부터 시작된 여성 록보컬리스트의 명맥을 시네드 오코너, 1990년대 홀(Hole)의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 리즈 페어(Liz Phair) 같은 후배들로 이어준 교량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여성 록 전사들이 남녀 평등이나 페미니즘, 또는 사회적인 이슈들을 직선적인 소음형식으로 설파했다면‘미스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을 지닌 팻 베나타는 중도적이면서 점진적인 방법론을 택하면서도 강렬하고 폭발적으로 노래해 여성 팬들은 물론 남성들로부터도 대단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1953년 1월 10일 뉴욕에서 태어난 이 로커는 1970년대 후반 배우 릭 뉴만(Rick Newman)이 운영하는 클럽에서 주최하는 오디션에 합격함으로써 대중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릭은 팻 베나타의 데뷔 시절 그녀의 매니저도 겸하면서 레코드사와 정식 계약을 맺는데 도움을 주었다. 1979년에 발표된 처녀작에서는 이제 록의 고전으로 격상된 데뷔 싱글 ‘Heartbreaker(23위)’와 가성 창법이 뛰어난 ‘We live for love(27위)’를 비롯해 스모키(Smokie)의 ‘If you think you know how to love me’와 존 쿠거(John Cougar)의 ‘I need a lover’를 커버한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다. 데뷔 시절에 이미 그녀는 충분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했다. 1980년에 공개된 두 번째 작품 < Crimes Of Passion >의 사운드는 전작보다 강해졌고 사회적인 시각마저 투영하기 시작했다. 영화 < 사관과 신사 >에서 들을 수 있었던 ‘Treat me right(18위)’를 위시해 박력에 넘치는 로큰롤 넘버‘Hit me with your best shot(9위)’, 아동 학대를 비판한 ‘Hell is for children’, 그리고 케이트 부쉬(Kate Bush)의 명곡 ‘Wuthering heights’의 리메이크 버전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음반으로 그래미 최우수 여성 보컬 수상의 물꼬를 틀기 시작한 팻 배네타는 향후 4년 연속 이 부문을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 신기록은 팝의 절정기인 1980년대에 록음악의 기반이 이전 또는 이후 시절보다 상대적으로 얇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1981년에 공개되어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 Precious Time >에는 ‘Fire and Ice(17위)’와 ‘Promises in the dark(38위)’, 그리고 비틀스의 ‘Helter Skelter’를 커버한 넘버들이 수록되었고, 신시사이저를 사용함으로써 전작들에 비해 세련되고 멜로딕한 방법을 택한 1982년의 < Get Nervous >에서는 ‘Looking for a stranger(39위)’와 그래미상 수상곡 ‘Shadows of the night(13위)’로 다시 한번 골드 앨범을 기록했다. 1983년 첫 번째 실황 음반 < Live From Earth >에 수록된 신곡 ‘Love is a battlefield(5위)’로 마지막 그래미를 거머쥐었고 1984년에 공개한 < Tropico >에서 히트 싱글 ‘We belong(5위)’과 ‘Ooo Ooo song(36위)’의 선전으로 다시 한번 수상이 기대 되었지만 1984년에 경이로운 컴백을 한 ‘Better be good to me’의 티나 터너(Tina Turner)에게 트로피를 넘겨야 했다. 페미니즘을 표현한 ‘Sex as a weapon(28위)’과 ‘Le bel age(54위)’ 같은 싱글을 포함하고 있는 1985년의 < Seven The Hard Way >와 마지막 싱글 히트 곡 ‘All fired up(11위)’을 수록한 < Wide Awake In Dreamland >의 실패는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시도를 꿈꾸게 하였다. 불혹의 나이를 앞둔 1991년 팻 베네타는 스탠더드 재즈 풍과 초기 블루스로 채색된 < True Love >를 공개했지만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에 팬들은 결코 전처럼 열광하지 않았다. 다시 이전의 스타일로 회귀한 < Gravity’s Rainbow >와 어쿠스틱 형식의 < Innamorato >를 1993년과 1997년에 내놓았지만 얼터너티브와 R&B, 힙합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음악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말았다. 오페라를 전공해 4옥타브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가창력과 4년 연속 그래미 수상이라는 업적을 소유한 팻 베나타는 가수에게 자신만의 음색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성에게 폭발력이 때로 얼마나 큰 재산인지를 증명한 인물이다. 멜로디가 잘 들리는데도, 파괴력이 넘치는 ‘Hit me your best shot’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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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 Wham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밴드 : W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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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이클이라는 걸출한 팝 스타를 배출한 팝 듀오 왬(Wham!)은 80년대 팝 역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중요한 그룹이다. 소울 음악과 결합된 즐겁고 흥겨운 팝 댄스를 들려줬던 이들은 80년대 특유의 ‘가벼움’을 관통함으로써 80년대 팝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이들은 사실상 90년대에 들어 맹위를 떨친 보이밴드의 효시였다. 잘 생긴 외모와 수준급 가창력, 거기에 경쾌한 댄스 팝과 매혹적인 발라드 등 현 보이밴드의 전형이랄 수 있는 특질을 이미 80년대 초반에 확립해, 전부 보여줬기 때문이다. 1981년, 왬은 ‘나이트클럽 광’이었던 조지 마이클과 그의 친구 앤드류 리즐리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지 마이클이 작곡과 작사, 보컬, 제작 등 음악에 관한 한 모든 걸 담당했고, 앤드류 리즐리는 그룹의 스타일과 이미지, 비주얼 등 외적인 측면에만 힘을 기울였다. 그 때문에 팀 해산할 때까지 자주 앤드류 리즐리의 역할 부재론이 거론되기도 했다(그렇지만 그룹의 방향성은 앤드류 리즐리가 결정했던 만큼 역할이 아주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꽝!’이란 의미의 그룹이름과 이미지는 앤디 워홀과 더불어 팝 아트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주로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주제로 매스미디어를 묘사한 바 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에서 따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이 둘은 1979년, 이그제큐티브(Executive)라는 스카 밴드활동을 하면서 음악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밴드가 해산되고 향후 약 2년간 작곡과 홈메이킹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는 등 수련과정에 들어간다. 당시 작곡한 곡 중에는 나중 메가히트를 기록하는 ‘Careless whisper’와 ‘Club tropicana’가 있었다. 몇 번의 오디션 끝에 1982년, 댄스 레이블 < 이너비전 >(Innervision)과 계약을 체결한 왬은 데뷔싱글 ‘Wham rap!’을 발표했지만 영국차트 100위권에도 못 오르는 실패를 맛봤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 내놓은 두 번째 싱글 ‘Young guns(go for it)’은 BBC 방송국의 프로그램 < 탑 오브 더 팝스 >(TOTP)에서의 인상적인 댄스 공연으로 차트 3위로 도약했다. 1983년 6월 9일, 팝 댄스로 가득 찬 이들의 데뷔앨범 < Fantastic >이 발매되었고, 이 앨범은 곧장 영국차트 1위를 기록했다. 한편 조지 마이클은 이미 이때부터 독자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같은 해 8월 그는 미국의 머슬 쇼울스(Muscle Shoals) 스튜디오에서 전설적인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와 함께 ‘Careless whisper’를 녹음했다(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고 나중에 런던에서 재녹음되어 나중에 출시된다). 1984년부터 왬의 센세이션이 일어났고, 동시에 그들의 히트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침대 맡에 적어놓았던 앤드류 리즐리의 노트에서 영감을 얻어 조지 마이클이 만든 ‘Wake me up before you go go’는 영국차트는 물론 미국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수년간 공력을 들인 발라드 ‘Careless whisper’도 3주간 영국차트 넘버원을 지켰다. 이듬해에는 미국차트에서도 역시 3주간 1위를 기록했다. 조지 마이클이 자신의 부모님께 바친 이 싱글의 미국판 크레딧에는 ‘조지 마이클이 피처링한 왬의 곡’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앤드류 리즐리가 두 번째 앨범을 구상하는 동안, 조지 마이클은 다른 음악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했고, 엘튼 존과의 파트너십도 쌓기 시작했다. 12월에는 밴드 에이드의 난민 구호곡 ‘Do they know it''s christmas time?’ 녹음에도 참여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곡 때문에 그들의 크리스마스송 ‘Last christmas’가 차트 2위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이듬해인 1985년 3월에는 서포모어 앨범 < Make It Big >이 출시되었고, 그 앨범은 제목대로 미국에서만 5백만 장이 팔리는 ‘빅 히트’를 기록했다. 당해 4월 왬은 서구 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들은 1만여명이 운집한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공연함으로써 ‘중국에서 공연한 최초의 서방 그룹’으로 기록되었다. 계속해서 조지 마이클은 라이브 에이드 행사에서 엘튼 존과 듀엣으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불렀고, 또 엘튼 존의 싱글 ‘Nikita’에서 백업보컬을 담당하는 등 확실하게 솔로활동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결국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여전히 친한 사이였지만 서로를 위해 1986년 왬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1986년 4월 발매된 조지 마이클의 두 번째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는 공식적으로 밴드의 종말을 알리는 곡이었다. 같은 해 6월 윔블던 스타디움에 모인 7만2천명의 관객 앞에서 행한 마지막 콘서트 ‘The Final’을 끝으로 왬은 해산되었다. 왬 이후 조지 마이클은 < Faith >를 시작으로 솔로가수로서 놀랄만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앤드류 리즐리는 < Son Of Albert >를 발표했지만 ‘Shake’라는 희미한 히트곡만 남겼을 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왬의 음악을 담당했던 조지 마이클이 성공을 거두고, 음악적으로는 아무런 역할도 못했던 앤드류 리즐리가 실패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지만 추억 속에 남아있던 앤드류 리즐리의 아름다운 매력이 솔로활동의 참담한 실패로 그나마 퇴색해버린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어쨌거나 왬은 80년대를 살아왔던 음악팬들에게는 아련한 기억으로, 또 아쉬움으로 존재하는 그런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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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 Simple Minds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밴드 : Simple M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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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마인즈 (락 밴드)
''Don''t you (forget about me)''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심플 마인즈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 펑크로부터 시작하여, 유로 댄스가 가미된 뉴 웨이브를 거쳐 유투(U2)와 종종 비교되는 스타디움 록 밴드로서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다. 시대 조류를 타는 이들의 음악적 변화는 그러나 급진적이 아닌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안정감과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플 마인즈의 모태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에서 1970년대 중·후반 활동했던 포스트 펑크 밴드 자니 앤 더 셀프 애버서스(Johnny & The Self Abusers). 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보컬리스트 짐 커(Jim Kerr)와 기타리스트 찰리 버칠(Charlie Burchill)은 1978년 뉴 웨이브 흐름이 대세임을 직감하고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곡 ''Jean Genie''의 노랫말에서 따온 심플 마인즈를 새로운 그룹명으로 정하고, 브라이언 맥기(Brian McGee, 드러머), 믹 맥닐(Mick MacNeil, 키보드), 데렉 포브스(Derek Forbes, 베이스), 던캔 반웰(Duncan Barnwell, 기타) 등의 멤버를 추가 영입하였다. 록시 뮤직(Roxy Music)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음악을 사운드의 근간으로 삼은 그들의 음악은 뉴 로맨틱스에 근접할 정도로 낭만적이고 부드럽다. 상큼한 기타와 청명한 키보드의 빛나는 협연은 뉴 웨이브 시대 심플 마인즈의 찬란한 성과이다. 히트곡들을 내놓지 못한 초기작품들인 1979년 < Life In A Day >, < Real To Real Cacophony >, 1980년 < Empires And Dance >, 1981년 < Sons and Fascination >, 1981년 < Sister Feelings Call > 등과 앨범 차트 3위까지 오른 1982년 < New Gold Dream (81-82-83-84) > 등에서 유로 댄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심플 마인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1982년 < New Gold Dream >은 ''Promised you a miracle'',(영국 차트 13위), ''Glittering prize''(16위), ''Someone somewhere in summertime''(36위) 등의 인기 곡들을 쏘아 올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그들의 사운드는 유투와 비교되기 시작했다. 1984년 < Sparkle In The Rain >(1위), 1985년 < Once Upon A Time >(1위) 등에서 보여지는 짐 커의 보컬은 보노(Bono)와 매우 흡사했으며, 찰리 버칠의 기타 색깔도 에지(The Edge)의 깨끗함과 노선을 같이했다. 실제로 짐 커는 보노와 매우 친한 친구사이이며, 이 때문에 1984년 < Sparkle In The Rain > 앨범을 유투의 프로듀서였던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가 맡기도 했다. 또 1985년에 그들은 영화 < Breakfast Club > 사운드트랙에서 ''Don''t you (forget about me)''를 불러 처음으로 미국 차트 넘버 원 정상을 밟으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곡은 그들의 정규 음반에는 실려있지 않다. 이후 그들은 짐 커와 찰리 버칠을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거의 물갈이 됐지만, 1995년 < Good News From The Next World >(2위)를 내놓을 때까지 인기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현재까지 새 앨범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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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 Human League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밴드 : Human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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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리그
기타도, 드럼도, 베이스도 없다. 오직 목소리와 천의 얼굴을 한 신시사이저가 있을 뿐이다. 이 유일한 악기로 그들은 전혀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영국의 뉴웨이브, 신스팝 그룹 휴먼 리그(Human League). 그들은 거짓말처럼 컴퓨터와 신시사이저만으로 ‘Don’t you want me’나 ‘Human’ 같은 명곡을 만들어냈다. 휴먼 리그에겐 악기에 대한 제한이나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자신들의 자신감과 음악 철학이 있었다. 1985년을 고비로 대부분의 뉴웨이브 그룹들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현재까지 살아남은 혼성 4인조 그룹 휴먼 리그는 뉴웨이브의 산 증인이자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영국 펑크의 해로 기억되는 1977년, 두 신시사이저 플레이어 마틴 웨어(Martyn Ware)와 이안 크레이그 마쉬(Ian Craig Marsh), 그리고 냉소적인 음색의 보컬리스트 필립 오케이(Philip Oakey)의 트리오 체제로 출발한 휴먼 리그는 전자 음악의 선구자인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나 록시 뮤직(Roxy Music) 등으로부터 음악적인 채무를 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선배들보단 더 세련되고 상업적인 멜로디를 뽑아내 싱글 커트에 부담 없는 곡들로 대중들의 귀를 정복했다. 애드리안 라이트(Adrian Wright)로 멤버를 보강한 후 2년의 담금질을 감내해 낸 휴먼 리그는 1979년의 데뷔 앨범 < Reproduction >을 가지고 본격적인 팝 무대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 작품과 1980년의 2집 < Travelogue >을 발표하자마자 마틴 웨어와 이안 크레이그 마쉬는 휴먼 리그를 떠나 헤븐 17(Heaven 17)이라는 뉴웨이브 트리오로 가지치기를 감행했다. 그들과 필립 오케이와의 파워 게임이 원인이었다. 두 여성 수잔 설리(Susanne Sulley)와 조앤 캐써롤(Joanne Catherall)을 보컬리스트로, 이안 버든(Ian Burden)을 새로운 신시사이저 연주자로 새롭게 맞이한 후 제작한 앨범이 뉴웨이브의 최고 명반 중 하나로 자리한 < Dare >다. 여기서 싱글로 커트 된 ‘Don’t you want me’가 빌보드에서 3주 동안 1위를 고수하면서 휴먼 리그는 국제적인 그룹 대열에 합류했다. 비록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같은 음반에 수록된 ‘Love action(I believe in love)’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 곡은 2000년에 영국의 음악 전문지 < 언컷 >에서 선정한 1976년 이후에 탄생한 명곡 100위에서 ‘Don’t you want me’를 물리치고 당당히 36위를 차지했다. 1983년에는 싱글 ‘(Keep feeling) Fascination’이 8위에 오르면서 꾸준한 인기 행진을 이어가는 듯 보였으나 다음 작품 < Hysteria >가 예상 밖의 참패를 거두었다.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레바논 사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밝힌 싱글 ‘Lebanon(64위)’을 위해서 처음으로 전기 기타를 직접 연주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앨범으로 명성을 드높인 지미 잼(Jimmy Jam)과 테리 루이스(Terry Lewis) 콤비가 제작을 맡은 1986년의 < Crash >에서는 두 번째 넘버원 곡 ‘Human’과 ‘I need your loving(46위)’이 싱글 차트에 기록되면서 전작의 실패를 만회했다. 1990년대, ‘Heart like a wheel(32위)’과 ‘Tell me when(31위)’ 등으로 얼터너티브의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뉴웨이브의 지존 휴먼 리그는 2001년에도 정식 음반 < Secrets >로 자신들이 익힌 생존 비법의 비밀을 들려주었다. 그들의 음악은 그룹 이름처럼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신시사이저로 찍어내는 휴먼 리그의 노래들은 듣는 사람들에게 차갑고 냉정한 음원의 미학을 제공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음악도 이제는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휴먼 리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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