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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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전익구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전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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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구는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명수(明?), 호는 가암(可庵)이다. 본관인 용궁은 지금 경북 예천군 용궁면 지역이다. 종조인 전찬(全纘, 1546∼1612)은 퇴계 이황에게 수학했으며 부친 전이성(全以性)은 정구(鄭逑)와 정경세에게 배워 가학의 연원이 깊다. 부친은 인조 때 춘추관편수관을 겸직하면서 ≪광해군 일기≫의 편찬에 참가했으며 월봉 고인계, 월간 이전, 무주 홍호, 창석 이준, 이수광의 아들 이민구 등 당대의 석학들과 상당히 깊이 교유했다.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한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의 행역에 대해 정종로가 묘지명을 썼으며, 많은 인물들과 교유했는데 특히 정경세의 손자 정도응, 홍귀달의 5세손 홍여하와 교분이 깊었다. 평생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정경세가 우거하던 상주 우산(愚山) 근처로 이주해 가암(可庵)을 건립하고 독서와 강학으로 보냈다. 상당한 유학적 소양을 갖추었으나 안타깝게 학문적 성취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숙종조에 포의로서 소를 올려 지역 사족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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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김숭겸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김숭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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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崇謙
김숭겸(金崇謙)은 1682년(숙종 8) 10월 30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조선 후기의 명문 가운데 하나인 안동(安東)이고 자(字)는 군산(君山)이며, 호는 관복암(觀復菴)이다. 병자호란 때 높은 절의로 유명했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후손으로, 조부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이고, 아버지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어머니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의 딸 연안 이씨다. 어려서부터 부친 김창협과 숙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에게 여러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노론인 조부 김수항이 사사된 후 집안이 당화를 입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영평(永平)의 백운산(白雲山)·봉은암(奉恩庵) 등에서 학문에 전심했다. 1700년(숙종 26) 10월 20일 병으로 인해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고로 ≪관복암 시고(觀復菴詩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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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구하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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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河
구하(1872∼1965) 스님은 근대 통도사의 개혁을 이끈 선승(禪僧)이자 시승(詩僧)이다. 법명은 천보(天輔), 법호는 구하(九河), 시호(詩號)는 축산(鷲山)이다.
13세가 되던 1884년 천성산 내원사로 출가했고, 1886년 경월도일(慶月道一)을 은사로 득도했다. 1896년 표충사에서 만하승림(萬下勝林)에게 대소승계를 수지했다. 이후 1899년 통도사에서 수선 안거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내외 경전을 두루 섭렵하게 된다. 1899년(28세)에 통도사 황하각에서 성해남거(聖海南巨) 선사의 전법 제자가 되어 구하(九河)라는 법호를 받았고, 1905년 통도사 옥련암에서 정진하다 오도의 경지를 맛본다.
1908년 명신학교를 비롯해 1932년 입정상업학교(지금의 부산 해동고등학교), 1934년 통도중학교(지금의 보광중학교)를 설립해 어려운 절 살림과 암울한 일제 치하의 시대 속에서도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1910년부터 15년간 통도사 주지를 맡아 근대 통도사의 개혁을 이끌게 된다. 구하의 개혁은 ‘안으로부터의 개혁’이 우선이었고, 환성의 법손임을 매개로 대중을 아울렀으며 교육을 기반으로 포교와 역경 사업을 함께 추진했다. 불교를 통해 세상과 공생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도 일제 치하에서 ‘독립’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위해 임시 정부에 독립 자금을 지원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불교계 독립 운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수많은 글씨와 시문들을 남기기도 했다. 1963년 10월3일 세수 94세, 법랍 82세로 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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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홍여하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홍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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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汝河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 1620∼1674)는 본관이 부림[(缶林, 부계(缶溪)]이며 부림 홍씨 15세다. 부림은 곧 그의 선향인데, 지금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일대다. 시조는 고려 중엽 때 재상을 지낸 난(鸞)이고, 1세가 직장을 지맨 좌(佐)이며 5세 인석(仁?)과 6세 문영(文永) 때 상주로 이거하고 다시 8세 득우(得禹) 때 함창으로 이거했는데, 5세 인석 이후를 함창파라 부른다. 성종과 연산군 때 양대(兩代) 홍문관 대제학 곧 문형(文衡)을 지낸 홍귀달은 홍여하의 5대조가 된다. 그리고 인조 때 대사헌을 지낸 홍호의 아들이 홍여하다. 홍호는 정경세의 제자로 퇴계에서 유성룡, 정경세로 이어지는 영남학맥의 위치에 있었다.
홍여하는 자가 백원, 호가 목재와 산택재다. 안동부 성동리, 즉 지금의 문경시 영순면 율리에서 홍호와 장흥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모친 고씨의 상을, 27세 때 부친상을 당했다. 35세 때 생원진사시와 식년 문과에 합격했다. 37세 봉교로 있을 때 송규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상진과 이원정을 추천한 일로 파직되었다. 다시 그해 응지 상소를 올렸다가 고상도 찰방으로 쫓겨났으며, 40세 경성 판관으로 있을 때 현종이 즉위해 응지 상소를 올렸는데, 북방 군정의 폐단과 함께 이후원에 대해 붕당의 행태가 심함을 지적하자 이조 판서로 있던 송시열이 이것은 자신을 배척하는 것이라고 여겨 상소한 뒤 사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서인 측에서 이 상소가 윤휴 등이 조종한 것이라고 보아 크게 문제를 삼으면서, 그는 당쟁 속에 휘말려 들었다. 이때에는 제1차 예송이 터지기도 했다. 41세 때 병마사 권우의 일을 다시 문제 삼았다가 파직된 뒤에 충청도 황간으로 유배되었으며, 얼마 후 풀려나 고향 함창 율리로 돌아왔다.
율리로 돌아온 후 그는 산택재를 짓고 학문 연구와 저술에 매진했다. 51세 때 예천 북쪽 복천촌에 존성재를 짓고 잠시 이거했다가 53세 때 다시 율리로 돌아왔다. 55세 때 숙종이 즉위해 병조 정랑과 사간의 관직을 내렸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예천의 흑송리에 장사 지냈으며, 이장 후 묘갈은 계당 유주목이 지었다. 1689년 갈암 이현일의 주청으로 통정대부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1693년 근암 서원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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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조정규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조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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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貞奎
서천(西川) 조정규(趙貞奎, 1853∼1920)의 자(字)는 태문(泰文)이고, 본관은 함안이다. 서천(西川)은 그의 별호다. 1853년 10월 17일에 함안 안도 유암리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언행이 예사롭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효성이 지극했다. 학문은 대체로 가학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고, 성재(性齋) 허전(許傳, 1797∼1886)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그는 “종묘와 사직이 무너지고, 백성의 삶이 짓밟혔다”라고 통곡하고, 자고산으로 들어가 ≪춘추≫를 강론해 ≪주역≫의 이치를 완색했다. 1913년부터 중국 서간도를 거쳐 북경, 산동 지역 등을 두루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고 동포들의 생활과 독립을 지원했다. 봉천성에 남아 있던 전후 5년간 질병을 얻어 환국했는데, 병이 위독하게 되자 손수 ‘충효문(忠孝門)’이라는 세 글자를 쓰고, 그 아래에 “자손들은 영원히 충성하고 효도하는 것으로 서로 전하라”라고 써 조카 용돈에게 주어 이를 당문(堂門)에 걸게 하고 마침내 절필(絶筆)했다.
경신년(庚申年, 1920) 7월 23일 신시(申時)에 창리(昌里) 본가에서 조용히 일생을 마쳤으니, 향년 68세였다. 서산 아래 구수동(九水洞) 해좌(亥坐)에 전부인 묘 우측에 안장했는데, 친지들과 문인들로 흰 두건과 띠를 맨 자가 43명이었고, 장례식에 모인 자가 1000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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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최전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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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澱
최전(崔澱, 1567∼1588)은 자가 언침(彦沈), 호는 양포(楊浦)이며 본관은 해주(海州)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신동으로 불렸으며 당나라 최고의 시인 이백에 견주어지기도 했다. 6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9세에 형 최서(崔?)와 최준(崔濬)을 따라 율곡 이이를 찾아가 수학했는데, 그의 뛰어난 시적 재능을 본 율곡이 천부적인 재주와 덕업을 지녔다고 칭찬했으며 나이 많은 문생들도 사귐을 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14세에는 사마 회시를 보았는데 이때 스승 이이가 시험 감독관인 것을 알고는 사제지간이라 혐의를 받을까 봐 답안지를 쓰고도 내지 않았을 만큼 평범치 않은 면모를 보였다. 그 후 1585년 18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문경의 양산사(陽山寺)에 가서 칩거하며 ≪주역≫을 읽다 병이 들어 1588년, 22세의 나이로 안타깝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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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황윤석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황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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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영조 5) 4월 28일 전라도 흥덕현 구수동(현 고창군 성내면 조동)에서 황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5∼6세의 나이 때부터 할머니 김씨 부인에게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고, 7세에 《소학》을 배우면서 《사기》와 사서오경을 두루 읽게 되고 제자백가까지 열람했다. 6세에 쉬운 글자를 맞추어 시를 짓는 법을 할머니로부터 배웠고, 9세 때에는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그의 뛰어난 재주가 알려졌다.

황윤석의 자(字)는 영수(永?)이며, 호(號)는 이재(?齋)·이재려인·실재·서명산인·운포주인·산뢰·산뢰노인·산뢰려인·산뢰산인·산뢰수·순양자·월송외사 등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주역》의 산뢰이괘(山雷?卦)를 인용해 서실에 이(?) 자를 크게 써 붙여 놓고 ‘말을 조심하고, 음식을 절제한다’는 뜻을 명심하게 해 주로 ‘이재[?齋, 《주역》 이괘(?卦)의 내용을 실천하겠다는 뜻]’를 사용했다.

14세에 임영(林泳, 1649∼1696)의 《창계집(滄溪集)》을 읽고 세상의 시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6세에 그의 책 중 하나인 《이수신편(理藪新編)》을 쓰기 시작했다.

황윤석은 24세 무렵을 시작으로 평생 동안 26차례에 걸쳐서 한양의 과거에 응시했고 이를 위해 22차례나 서행(西行, 한양행)을 했다.

어려서는 집에서 수업을 받았고 성장해서는 양응수와 김원행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학문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31세에 비로소 진사시에 합격했고, 여러 번 대과(大科)에 응시했지만 운이 없었던 탓인지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 학문이 호남 인물 중 최고라고 알려져 1766년(영조 42) 그의 나이 38세에 장릉참봉의 벼슬을 받았다.

3년간 장릉참봉을 지내고, 40세에는 의영고 봉사, 41세에는 사포서와 종부사 직장, 43세에는 6품직으로 올라 사포서 별제가 되었다. 48세 되던 1776년(영조 52)에는 익위사 익찬, 50세에 사복시 주부, 그해 12월에 장릉령이 되었고, 51세가 되었을 때 드디어 평소의 꿈이었던 현감이 되었다. 목천현감의 직함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늘 꿈꾸었던 현감의 직위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재와 함께 일하던 아전들이 창고의 곡식을 도적질해 유용한 것을 차마 법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독촉해서 반납시키려다가 도리어 모함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세금을 함부로 처리했다는 죄로 인사고과 성적이 하(下)가 되었고, 결국 파직되고 말았다.

56세에는 장악원 주부와 창릉령의 벼슬을 받았으나 어머니의 장례 기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임하지 않았다. 58세에는 전생서 주부에 이어 전의현감의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에 암행어사가 전의에 출두해 황윤석이 전년도에 처리했던 일을 사적인 감정에 따라 처리한 것으로 여기고 이재를 파직시켰다. 파직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집안의 일들을 정리하며 한양의 정치에도 늘 귀를 기울였다. 그 후 63세에 자신의 집 만은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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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이근오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이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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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오(竹塢) 이근오(李覲吾)는 1760년(영조 36)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중오(中吾)였는데 어느 날 꿈에 임금이 이름을 바꾸라고 해서 근오로 개명했다고 한다. 자는 성응(聖應), 호는 죽오(竹塢)·석천(石川)·남간(南磵) 등을 썼으며 본관은 학성(鶴城)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자질을 보였던 이근오는 10대 중반에 경주 보문의 활산 남용만 문하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출사의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1790년(정조 14) 대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중앙의 동향을 전달하고 지역의 현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세가 약했던 영남 남인의 고충을 겪기도 했다.
결국 ‘지역’과 ‘문벌’이란 두 가지 점에서 한계를 느낀 이근오는 병조정랑을 끝으로 1804년(순조 4) 45세 때 낙향했고 이후 독서와 후진 양성에 매진하는 한편 울산, 언양, 경주, 양산, 밀양 등 동남 지역의 인사들과 교유하며 지역의 여론 주도층으로 활약했다.
조정에서 몇 차례 사헌부지평과 부사직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더 이상 출사하지 않았고 1834년(순조 34)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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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하겸진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하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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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은 1870년 진주(晋州)의 사곡리(士谷里)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적전 면우(?宇) 곽종석(郭鍾錫, 1864∼1919)의 고제(高弟)이며, 남명이 ‘설중한매(雪中寒梅)’라고 기상을 격찬했던 각재(覺齋) 하항(河沆, 1538∼1590)의 문인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 1553∼1612)의 11대손이다. 학맥으로는 퇴계의 학풍을 계승한 고제이며, 가학으로는 남명의 학풍을 계승한 적전이라는 점은 회봉의 학문적 성격과 위상을 대변한다.
그는 조선과 대한 제국,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이한 다음 해인 1946년까지 역사상 가장 큰 격변기를 유학자, 독립운동가, 문학가의 모습으로 살았다. 그의 생은 낙수재(落水齋)에서 보낸 학문 수학기(1870∼1917)와 귀강 정사(龜岡精舍)에서 보낸 애국 계몽기(1917∼1930), 덕곡 서당(德谷書堂)에서 보낸 창작 저술기(1931∼1946)로 나눌 수 있다.
학문 수학기에는 낙수재를 중심으로 향리의 동학(同學) 및 집안의 자제들과 함께 학업에 매진하고, 1896년 27세 되는 해인 가을에 거창의 다전(茶田)에서 면우를 알현하고 사사했으며, 후산(后山) 허유(許愈, 1833∼1904),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 1815∼1900), 물천(勿川) 김진호(金鎭祜, 1845∼1908),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 1847∼1916), 송산(松山) 권재규(權載奎, 1870∼1952) 등 당대의 명유(名儒)들과 교유했다.
귀강 정사에서의 애국 계몽기에는 1919년 파리 장서에 서명해 진주와 성주를 오가며 옥중 생활을 했고, 1921년에는 <국성론>을 지어 유학의 가치인 ‘예의(禮義)’를 ‘국시(國是)’로 국민 의식을 고취했다. 1926년에는 독립 운동 기지 건설 자금을 마련하고자 국내에 잠입한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을 도운 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함으로써 다시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1929년에는 을지문덕·김유신·강감찬·이순신을 대상으로 <명장열전(名將列傳)>, 남이(南怡)와 김덕령(金德齡)을 대상으로 <용장열전(勇將列傳)>을 지어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덕곡 서당의 창작 저술기에는 1934년 <화도시> 120수를 완성하고, 다시 1937년 <수미음> 134수를 완성했다. <화도시>는 망국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갈등과 고뇌의 산물로, 소동파가 그랬던 것처럼 도연명의 시에 모두 화운함으로써 자신의 시재(詩才)도 나타내고, 격변 속에서도 꼿꼿한 절개를 지켜 갈 것임을 밝힌 시다. 그는 또 우리나라 시화사(詩話史)의 마지막 비평집인 ≪동시화(東詩話)≫를 저술했고, 1943년에는 생애 마지막 역작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학안인 ≪동유학안(東儒學案)≫을 저술했다. 1945년 8월 노쇠해진 몸으로 조국의 광복을 지켜보고, 다음 해인 1946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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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화(鄭在華, 1905∼1978)는 자가 자실(子實), 호는 후산(厚山)으로 정복용(鄭福容)과 서흥 김씨(瑞興金氏)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민할 뿐만 아니라 뜻이 견고했다고 한다. 족형 정재기의 문하에 나아가 ≪한사(漢史)≫를 읽었으며, 이후 정종호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 가학 및 근기학적 전통을 이었다. 일제의 단발령에 따라 경찰이 그의 상투를 자르려 하자 일경(日警)을 벼루로 타격하고, 두 차례나 만주로 피신해 자정(自靖)의 장소로 삼고자 했다. 정종호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여기동(呂箕東)은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세속를 초극한 자질과 꺾을 수 없는 기절을 들어 그의 인품을 ‘강개(剛介)’와 ‘인영(人英)’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독서와 양성(養性)으로 소일했으며 1978년 음력 1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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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 김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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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식인, 고전학, 지역학, 동아시아학 등을 시야에 두고 『묵자』 『사기』 등을 비롯해 한시와 시화를 가르치며 고전지식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동아시아 한문고전의 미래가치를 환기하여 청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는 것이나 한문교육이 인성을 증진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저서로 『한국한문학 연구의 새 지평』(공저, 2005), 『새 민족문학사 강좌』(공저, 2009), 『고려후기 한문학과 지식인』(2013), 『한국학의 학술사적 전망』, 『청춘문답』(모두 공저, 2014), 『동아시아 지식인문학의 지평을 탐색하다』, 『남명학파의 지역적 전개』(모두 공저, 2019), 『이재 황윤석 연구의 새로운 모색』(공저, 2020) 등이 있고, 역서로 『송도인물지』(2000), 『악기집석』(2003), 『우붕잡억』(공역, 2005), 『유미유동』(공역, 2006)을 비롯해 근래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공역, 2015) 『능운집』(공역, 2016) 『문화수려집』(공역, 2017) 등이 있으며, 2018년 이후 치유인문학에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같이 『시민의 인성』을 매년 내오고 있다.(2022년 현재 총4권 발간) 『악기집석』으로 제5회 가담학술상(2003)을 수상했고, 베이징대 초빙교수를 두 차례(1997, 2008)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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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최금자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최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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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자는 동국대학교에서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주로 17세기 중·후반 상주, 문경 지역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1차적으로 목재 홍여하를 비롯해서 그 주변 인물들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경북 포항에서 <시우(時羽) 고전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역서로 ≪목재 시선≫(2022)이 있고, 논문으로 <목재 홍여하의 한시 연구>, <목재 홍여하의 <술회(述懷)> 시에 반영된 사회 현실>, <조선 시대 시화집 소재 퇴계 시 비평 연구>, <목재 홍여하의 교유 양상 연구> <가암 전익구의 삶과 시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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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 노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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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盧炫姃)은 1993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성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한 후 부산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같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관복암 김숭겸에 대한 공부를 계기로 조선 후기의 한시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시 형식 가운데 ‘차운시(次韻詩)’를 주목하고 있다. 한시가 주는 아름다운 마음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 근래 공부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한시 속의 마음을 세상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 지금은 두시 역주(杜詩譯註) 모임에 참여해 두보의 시와 그 비평서를 공부하고 있다. 논문에 <관복암(觀復菴) 김숭겸(金崇謙)의 한시 연구 : 고적(孤寂)을 중심으로>(2019), <관복암(觀復菴) 김숭겸(金崇謙)의 차운시(次韻詩) 작법과 운용의 실제>(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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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 최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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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헌(崔斗憲)은 아호가 역시(亦時), 시현(時現)이고, 법명은 보탁(寶鐸)이다. 1976년 경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한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한문학과에서 〈경봉 정석의 한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경봉 정석의 한시 연구》(2018), 《시민의 인성 2?인문학은 힘이 세다》(2019, 공저), 《금강산 관상록》(2022), 《영축산의 구하 천보와 오대산의 한암 중원》(2023, 공저) 등이 있다. 2020년에는 박물관 발전 공로로 문화 체육 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또한 서예·전각가로서 대한민국 미술 대전 초대 작가, 경기도·경인·경북 서예 대전 초대 작가, 전국 휘호 대회(국제 서법 예술 연합) 초대 작가이자 한국 서예가 협회·한국 전각가 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을 3회 열었으며, 현재 경주에서 전각 연구실 〈석가(石家)〉를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며 불교시의 시각화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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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전설련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전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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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련(全雪蓮)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종가연구팀 연구원으로 있다. 논문으로는 <백하일기(白下日記)의 서술 방식(敍述方式)과 그 문학적(文學的) 성격(性格)>, <서천 조정규의 중국 체험의 시적 구현과 그 의의>, <대눌(大訥) 노상직(盧相稷) 도강록(渡江錄) 소재 잡저(雜著)의 서술 특징과 만주 인식> 등이 있고, 역서로는 ≪안자(晏子)≫(바닷바람, 201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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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나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박사 통합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의 연수 과정을 졸업하고 현재는 조선 중기 한시 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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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이상봉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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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은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석사 과정 중에 이재난고 역주사업단에서 일하면서 호남 지식인 황윤석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황윤석의 한시를 대상으로 석·박사 논문을 썼다. 이후에도 황윤석을 비롯해 부산 지역 한시·《시경》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저역서에 《역주 이재난고》(전20권, 공저, 2015), 《이재난고의 풍경과 서정》(2022), 《이재 시선 1》(2022) 등이 있고, 주요 논문에 〈청년 황윤석의 한시에 나타난 경세(經世) 포부와 자기반성〉(2014), 〈황윤석 한시에 나타난 가족애의 양상?〈월주가〉를 중심으로〉(2015), 〈황윤석과 민어(民魚), 그 수수(授受)의 의미〉(2015), 〈이재 황윤석 한시의 두보 시어 활용 양상〉(2015), 〈이재 황윤석의 아내와 소실(小室)에 대한 사랑〉(2016), 〈이재 황윤석 한시의 ‘사(絲)’ 의상(意象) 운용 양상〉(2017), 〈흥상(興象)의 구체적 의미에 대한 연구〉(2018), 〈‘풍신(風神)’의 용례에 대한 일고(一考)〉(2020), 〈〈관저(關雎)〉의 수용 양상과 주요 논의에 관하여〉(2020), 〈〈녹명(鹿鳴)〉의 수용 양상과 주요 논의에 관하여〉(2020), 〈해운대의 추억?한시에 형상화된 해운대〉(2021), 〈현감직에 대한 황윤석의 갈망과 소회〉(2022), 〈부산 동래의 기억?정추의 동래 회고(東萊懷古)에 대하여〉(2022), 〈《시경(詩經)》·〈종사(?斯)〉의 활용 양상에 대해서〉(2023) 등이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과 한문학과에서 교양과 전공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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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엄형섭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엄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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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형섭(嚴亨燮)은 1968년 울산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석박사통합과정을 수료했다. 조선 후기 한시의 보편성과 지역성의 변주, 영남 학맥을 공부하면서 울산 지역 문헌을 수집, 정리하고 있다. ≪울산금석문≫, ≪울산지리지≫, ≪경상좌병영 관련 문헌 집성≫, ≪용재총화≫ 등을 공역했고 ≪동남창수록≫, ≪보인계시첩≫, ≪영계유고≫를 번역 출간했다. 지금 부산대 강사, 울산대 강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자문위원, 울산광역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 <울산 지역 문집의 현황과 과제사적 위상>, <동남창수록 연구>, <죽오 이근오의 시에 보이는 안분의 의미>, <포은의 언양 유배가 언양 지역에 끼친 영향과 그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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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은 경상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옥계 노진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회봉 하겸진의 화도시와 수미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학들과 함께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1∼5를 공역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토대 연구 사업인 ‘금강산 유람록 번역 및 주해’ 사업에 전임 연구원으로 참여해 ≪금강산 유람록≫ 1∼10을 번역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안동의 역사 인물 문집 100선 사업에 참여해 ≪북애 선생 문집≫을 번역했다.
19∼20세기 한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회봉 하겸진의 작품에 대한 번역과 연구는 그 관심의 방향이다. 연구 논문으로 <경로를 통한 금강산 유람의 변천 고찰>과 <17세기 이전 금강산 유람의 경로 및 특징> 등 금강산 관련 논문과 근대 전환기 영남 지역의 유림에 대한 연구로 <면우(?宇) 곽종석(郭鍾錫)의 영물시(詠物詩) 일고찰(一考察)>,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한시 창작 양상과 함의(含意)> 등이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공동 연구 과제로 진행한 연구 논문 <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의 현실 인식과 단성 농민 항쟁>,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현실 대응 양상에 대한 고찰> 등이 있다.
고문헌과 문집에 전하는 문학을 연구하며,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정서는 시공간을 초월해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과거의 인물에 대한 이해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되고,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는 해법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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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羽洛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북경대학교 방문학자를 지낸 바 있으며,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하고 있다. 주로 한국문학사상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으며, 최근 문화공간으로서의 영남이 갖는 의미에 주목하며 관련 글을 발표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영남의 큰집, 안동 퇴계 이황 종가』, 『조선의 서정시인 퇴계 이황』, 『남명과 퇴계사이』, 『남명문학의 철학적 접근』, 『남명학파의 문학적 상상력』, 『삼국유사 원시와 문명 사이』,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모순의 힘, 한국문학과 물에 관한 사상력』, 『국역 흑산일록』, 『후산졸언 시문선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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