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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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최찬식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최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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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瓚植
1881년 경기도 광주에서 친일단체 일진회의 총무원 최영년(崔永年)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세운 사립 시흥학교를 거쳐 관립 한성중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발간된 잡지 『신문계(新文界)』와 『반도시론(半島時論)』의 주요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친일 성향의 글들을 발표하였다. 말년에는 구한말의 지사 최익현의 실기(實記)를 집필하다 6·25전쟁 중 1·4후퇴 때 사망하였다. 1907년 중국의 소설집 『설부총서(說部叢書)』 번역을 계기로 신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1912년에 발표한 「추월색」은 봉건적인 인습을 타파하고 개화기의 새로운 애정윤리를 제시한 작품으로 당시에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읽힌 대표작이다. 이밖에 『안의 성』, 『금강문』(1914), 『능라도』(1919) 등을 썼는데, 그의 작품들은 주로 남녀의 애정문제나 풍속적 윤리, 도덕문제를 벗어나지 못하여 당시 신소설의 한계와 통속화 현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인직과 더불어 한국 신문학 개척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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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이해조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이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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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海朝, 동농東濃, 열재悅齋
이해조(李海朝, 1869∼1927)는 친일 개화 노선을 지향한 이인직(李人稙, 1862∼1916)과 달리 애국 계몽 노선을 표방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의 10대 손으로, 이철용(李哲鎔)의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열재(悅齋), 이열재(怡悅齋), 동농(東濃)이며, 필명은 선음자(善飮子), 하관생(遐觀生), 석춘자(惜春子), 신안생(神眼生), 해관자(解觀子), 우산거사(牛山居士) 등을 사용했다.

1906년 11월부터 잡지 《소년한반도(少年韓半島)》에 소설 《잠상태(岑上苔)》를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목되는 작품인 《자유종(自由鐘)》(1910)은 봉건 제도에 비판을 가한 정치적 개혁 의식이 뚜렷한 작품이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신교육의 고취, 사회 풍속의 개량 등 계몽 의식이 두드러진다.

처첩 문제, 계모의 박해 등을 보여 주는 《빈상설(?上雪)》(1908)·《춘외춘(春外春)》(1912)·《구의산(九疑山)》(1912)이나 미신 타파를 내세운 《구마검(驅魔劍)》(1908), 일반적인 젊은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사연에 중점을 둔 《화세계(花世界)》(1911), 《원앙도(鴛鴦圖)》(1911), 《봉선화(鳳仙花)》(1913) 등 36편의 작품을 발표해 신소설 최고의 작가로 평가된다. 모두 봉건 부패 관료에 대한 비판, 여권 신장, 신교육, 개가 문제, 미신 타파 등의 새로운 근대 의식과 계몽 의식을 담고 있다.
특히 1912년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 등의 판소리를 명창 박기홍(朴起弘) 조(調)나, 심정순(沈正淳)의 창(唱)을 듣고 각각 《옥중화(獄中花)》, 《강상련(江上蓮)》, 《연의 각(燕의 脚)》, 《토의 간(兎의 肝)》 등으로 산정(刪正)해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고 단행본으로도 출판해 ‘활자본 고소설(이야기책)’의 유행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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