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고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인 엄연한‘한국 사람’이지만 세 살 때 해외로 이주해 살면서 자연스레 정체성에 관한 의문을 지니고 살게 되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검은 머리 외국인, 외국인 사이에서는 아무리 오래 함께 지내고 영어를 잘해도 그저 한국인이었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글이라는 것을 써 보았는데, 쓰면 쓸수록 내 대부분의 글에는 이 고민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우호텔에는 국적에 대한 정체성 고민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정체성 문제가 담겨 있다. 만약 인간이 그저 창조주의 우연한 실험, 그것도 실패한 실험의 결과일 뿐이라면 우리는 어떤 존재들인가? 유일하게 자연과 공존하지 못하는 인간은 생태계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인가, 아니면 많은 태생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명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존재인가? 그리고 한편으로, 결함이 많아도 사랑 받아 마땅한 인간 존재를 고찰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