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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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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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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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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Orwell,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1903년 6월 25일, 영국령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세관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악마적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로 한다. 파리와 런던에서 노숙자, 접시닦이, 교사, 서점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속에서도 소설을 쓰고 서평과 에세이를 발표했다. 1933년에 파리와 런던에서 겪었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과 1935년 식민지 백인 관리의 잔혹상을 묘사한 소설 『버마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 그는 죽음의 원인이 된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사회 정의의 문제에 민감했고,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그는 첫 소설 『버마 시절』에 이어 『목사의 딸』, 『그 엽란을 날게 하라』를 출간했고,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의 가난한 삶을 그린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발표했다. 중·장년 시절에는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했지만, 식민지배의 불합리성을 목격한 후 사직을 하고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빈곤한 생활을 겪다가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 가담하여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BBC방송국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후 [트리뷴]의 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정치와 문학 분야의 논평을 정기적으로 썼다.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1946년 스코틀랜드 주라 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집필하였고, 1949년에 출간되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1984년』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과 더불어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후 많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장르에 상관없이 언제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글을 썼으며 소설, 에세이, 르포, 평론 등 70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의 47년간의 삶 중 시대적 배경은 전쟁으로 인한 평화가 무너지는 격변기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전체주의(집단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상이 다변화되면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대표 언론가로 상징된다. ‘조지 오웰’은 21세기 새 시대를 맞이하여 199년 영국 BBC 조사한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작가 3위’, 2008년 [더 타임스]가 선정한 영국 작가 50인의 2위로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 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버마의 나날』,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숨쉬러 올라오기』, 『고래 뱃속에서』, 『사자와 일각수』, 『동물 농장』, 『비판적 에세이』, 『영국 사람들』, 『1984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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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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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외판원으로 다시 입사한 후 틈틈이 비행 연습을 한다.

1929년 장편소설 『남방우편기(Ourrier sub)』로 작가로 데뷔하였다.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수상, 이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대지』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번역·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0년에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북부가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는 이 시기에 『어린 왕자』를 집필했고, 1943년 미국 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불문판과 영문판(캐서린 우즈 역)이 함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 Gallimard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35년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바탕으로 쓰였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 작품이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지냈다. 1944년 33비행정찰대가 이동하고 이미 5회의출격을 초과하여 8회 출격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격하기로 한 7월 31일 오전 8시 반, 정찰 비행에 출격한다.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중 행방불명 되었다. 1944년 7월 31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항하여 오는 길에 코르시카 수도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해 전사하였다고 한다. 유작 "성채I(tadelle)”는 이후에 친구들이 생텍쥐페리의 녹음본과 초벌 원고를 정리하여 1948년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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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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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 야스나야 폴랴나의 톨스토이 백작 집안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과 아홉 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카잔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캅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중편 자전소설 「유년 시절」을 발표해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두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를 열세 명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다.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창작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한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이 이때 쓰였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며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를 비판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써서 ‘톨스토이즘’이라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 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에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 저술하고 활동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직접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했으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으로 전향한 이후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 작가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에 있는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을 집필해 러시아 귀족들이 재산을 너무 많이 소유했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다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해 외국에서는 이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개인이 저작물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에 저작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1891), 1899년 종교를 바꾼 이후에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집필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아내와 불화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났으며 82세 때 현재 톨스토이역으로 바뀐 아스타포보역 역장의 관사에서 폐렴으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지 않겠다고 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톨스토이는 귀족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고귀한 인생 성찰로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미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걸작을 많이 남겨 지금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을 몸소 실천한 사상가였다. 톨스토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였던 그는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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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에드가 앨런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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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ar Allan Poe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 1809년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실종되고 어머니는 두 살 때 세상을 떠나자, 세 살 때 한 사업가 부부에게 입양되어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1826년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도박과 음주에 빠져 양부모로부터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으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했다. 그 후 1835년에는 잡지사 편집인으로 근무, 그 이듬해 5월 클렘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생활고와 결핵에 시달리다 결혼 생활 6년 만에 사망했다. 그러자 포는 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2년 후인 1849년 10월, 볼티모어의 길거리에서 쓰러져 마흔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어셔 가의 몰락』, 『황금 풍뎅이』 등의 단편과 『애너빌 리』, 『갈가마귀』, 『엘도라도』 등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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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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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lil Gibran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화가였던 칼릴 지브란은 수많은 예언자들을 배출한 땅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5세가 되던 해, 다시 고향을 돌아와 대학까지 학업을 마치고, 190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림 공부를 하며 뉴욕, 보스턴에서 여러 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작품 활동 초기에 그는 주로 아랍어로 된 글을 썼다.

아랍어 작품으로는『반항하는 영혼』(1908), 단편 『부러진 날개』(1912) 등이 있다. 그가 아랍어로 쓴 작품들은, 그를 아랍어를 사용하는 세계에서 당대의 문학적인 천재이자 영웅으로 추앙 받게 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과 영향력은 아랍어 세계를 뛰어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의 시는 20개 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조각가 로댕이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과 비교하기도 했던 그의 그림은 세계의 여러 대도시들에서 전시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20년을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예언자』는 1923년 40세의 칼릴 지브란이 쓴 대표작이다. 아랍어가 아닌 영어로 쓰였으며, 발표 당시에는 비평적으로 냉담한 평가를 받았지만 1957년 미국에서 100만 부, 1965년에는 250만 부, 1998년에는 900만 부가 팔리는 등 대중적으로는 널리 사랑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으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삶의 본질을 다룸으로써 지금까지도 읽는 이에게 인생에 대한 통찰과 따뜻함을 안겨준다.

『예언자』를 비롯해서 영어로 쓴 다른 여러 시집들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그림들은 수많은 미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깊은 영감을 고무시켰다. 『예언자』는 20세기에 영어로 출간된 책 중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책을 ‘20세기의 성서’라고까지 불렀다. 그의 저서에는 『눈물과 미소(A Tear and Smile)』, 『부러진 날개(Broken Wings)』, 『광인(The Madman』, 『선구자(The Forerunner)』, 『사람의 아들 예수(Jusus the Son of Man)』 등이 있다.

칼릴 지브란은 1931년 4월 10일 결핵과 간경화 증세의 악화로 인해 4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죽기 전 고향 레바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1932년 그의 시신은 레바논에 있는 마르 사르키스 수도원에 옮겨져 현재는 레바논에 안치되어 있다. 죽기 전에 그는 레바논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 소원은 1932년에 메리 하스켈과 그의 언니 마리아나가 레바논에 있는 마르 사르키스 수도원을 구입하여 그 곳에 지브란을 묻고, 지브란 박물관을 세우면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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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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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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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막스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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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Max Mu"ller
동양학, 비교언어학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막스 뮐러는 유명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겨울 나그네'의 노랫말을 쓴 독일의 낭만적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기도 하다. 베를린 대학에서 F.보프.F.셸링, 파리에서 E.뷔르노프 등을 사사한 그는 1950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인도-게르만어의 비교언어학, 비교종교학 및 비교신화학의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하였다. 막스 뮐러는 전 생애 동안 오직 한 편의 소설을 남겼는데, 그 작품이 바로 『독일인의 사랑』이다. 이기적 격정은 이미 사랑이 아님을 나직이 역설하는 이 철학적 사랑이야기 외에도 막스 뮐러는 『고대 산스크리트 문학가』, 『신비주의학』, 『종교의 기원과 생성』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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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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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라 평가받는 『이방인』에는 살인 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으로,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부조리에 대한 추론을 시작으로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인간, 철학과 소설, 키릴로프 등 철학적 에세이를 엮은 『시지프의 신화』는 권위에 도전하였다는 벌로 큰 돌을 산 정상에 올리는 행위를 무한정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의 죄를 모티브로 하여 일상생활과 예술작품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한 측면을 명쾌하게 분석한 철학 에세이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그 해의 비평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작품에서 페스트는 모든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 즉 감옥 속의 인간을 상징한다. 카뮈는 주인공인 의사 리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모순에 찬 삶 평온한 삶 위에 덮친 모순과 허망, 즉 부조리 속에서 그 상황을 직시하고, 낙관적 기대 없이 묵묵히 그 허망과 맞서서 대결하는 인간상을 그렸다.

이런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알베르 카뮈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책은 『반항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카뮈의 철학적·윤리적·정치적 성찰을 담은 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반항하는 인간』은 『시지프의 신화』와 함께 카뮈의 대표적인 시론(試論)이다. 1951년 출간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들끓게 했던 이 책에서 카뮈는, 폭력과 테러를 역사적·철학적·정치적 맥락에서 살피며,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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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헤르만 헤세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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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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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F. 스콧 피츠제럴드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F. 스콧 피츠제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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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Scott Key Fitzgerald
미국의 소설가이며 단편 작가이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그중에서도 1920년대 화려하고도 향락적인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무너져 가는 미국의 모습과 ‘로스트제너레이션’의 무절제와 환멸을 그린 작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등과 함께 20세기 초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작품과 생애,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된 인물이다. 1896년 9월 24일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자퇴 후, 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1919년 장편소설 『낙원의 이쪽』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25년 4월, 피츠제럴드는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완성했는데, 1920년대 대공황 이전 호황기를 누리던 미국의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전후의 공허와 환멸로부터 도피하고자 향락에 빠진 로스트제너레이션의 혼란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작품에서 청춘의 욕망과 절망이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고 있다.

헤밍웨이는 “이토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앞으로 이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라며 작품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T. S. 엘리엇은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내디딘 첫걸음”이라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로 동시대를 창조했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데뷔작 『낙원의 이쪽』의 절반도 팔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죽은 후 재조명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장편소설로 『밤은 부드러워』, 『마지막 거물의 사랑(미완)』, 『말괄량이와 철학자들』, 『낙원의 이쪽』,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 『재즈 시대의 이야기들』, 『위대한 개츠비』, 『얼음 궁전』, 『밤은 부드러워』, 『기상나팔 소리』등을 비롯해 중단편 160여 편을 남기고 1940년 12월 21일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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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루이스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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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wis Carroll,Charles Lutwidge Dodgson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로 자리매김한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전 세계적인 동화작가 된 루이스 캐롤은 1832년 1월 27일 영국 체셔 지방의 유복하지만 엄격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공회의 지역 교구 주임 사제였던 아버지 때문에 16년 동안 사제 사택에서 생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말장난, 체스 게임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립학교인 리치먼드 스쿨과 럭비 스쿨을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열일곱 살 때 백일해를 앓으면서 오른쪽 귀에 이상이 생겼으며 이후 말을 더듬게 되었다. 1851년 옥스퍼드대학교의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 입학했고 1855년부터 188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은 탓에 그리 인기 있는 강사라 할 수는 없었다. 말을 더듬는 버릇과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유일하게 아이들과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하는 등 창작과 편집에 소질을 보여, 1856년부터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여덞명의 어린 동생들을 위해 직접 삽화를 그린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은 이후 사진으로 옮겨갔고, 1856년 카메라를 산 캐럴은 주로 여자 아이들 사진을 찍으며 24년간 사진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실제로 캐럴은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특히 크라이스트처치대학 학장의 세 딸과 친하게 지냈고, 그중 각별했던 둘째 앨리스 리델을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 템스강에서 함께 피크닉을 갔던 열살 난 앨리스 리덜과 자매들(단과대 학장의 세 딸)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탄생했다. 바로 그 이야기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의 줄거리였던 것이다. 이 책은 『지하 세계의 앨리스』라는 이름의 자필로 쓴 이야기 책이었으나 후에 맥밀런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로 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제목이 변경되었다.

순종과 도덕을 가르치는 기존 동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신기하고 허무맹랑한 캐릭터들과 만나 모험을 하는 파격적인 동화였다. 1865년 출판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가 됐다. 그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환상문학의 효시가 된다. 하지만 생전 그는 자신이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된 앨리스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간 루이스 캐럴은 그의 어린소녀에 대한 집착 때문에 소아성애도착증 환자가 아니었는가 논쟁의 대상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은 수많은 나라에서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며 많은 이들의 창조적 영감에 불을 지핀 사랑스러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외에는 그 속편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1ice Found There』(1871) 등의 유머와 환상이 가득찬 일련의 작품으로써, 근대 아동문학 확립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난센스 문학의 고전이 된 이 두 작품 외에도 장편소설 『실비와 브루노』(전2권, 1889, 1893)를 비롯해, 난센스 시 『요술 환등 외』(1896), 『스나크 사냥』(1876), 『운율 그리고 이성』(1882)을 출간했고 『논리 게임』(1887)과 같은 퍼즐 및 게임에 관한 책들도 여러 권 집필했다.

옥스퍼드 대학 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어느 옥스퍼드 학생의 기록」(1874)을 비롯한 다양한 풍자 팸플릿을 쓰는가 하면, 『유클리드와 현대의 맞수들』과 『상징 논리』(1896) 같은 논리학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빅토리아 시대 유명 인사들과 아이들을 찍은 사진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성직자 서품을 받았지만 1881년 강단에서 물러난 뒤에도 설교단에 서지는 않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898년 『세 일몰』의 교정쇄와 『상징 논리』의 2부 원고를 마무리하던 중 길포드에서 숨을 거두었고, 조촐한 가족장 후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소설이나 시는 현대의 초현실주의 문학과 부조리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간주되며, 넌센스 문학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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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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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Shakespeare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564년 4월 23일 존(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영국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살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딸과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이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극작가로 성공했으며 희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후원자 사우샘프턴 백작의 도움으로 궁정에도 출입하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에게 후대를 받아 1594년에는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업적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재산 관리에도 능숙해 상당한 부동산을 구입하여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수많은 희곡 중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를 질투하고 살해하는 비극을 다룬 『오셀로』, 자신에 대한 딸들의 충성을 시험하다 비극을 맞는 『리어왕』,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맥베스』, 그리고 마지막이 이 4대 비극 중 가장 앞서 쓰였다는 『햄릿』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인간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시선은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에 길고긴 생명을 부여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이 그 방증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인물들을 파고들고 해석하는데, 문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가치를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1590년 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더해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했다. 1610년경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셰익스피어는 대저택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서거하여 성트리니티 교회에 안장되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대표 작품으로는 『공연한 소동』, 『12야(夜)』, 『자(尺)에는 자로』, 등의 희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의 비극을 비롯해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 등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의 시집 및 『소네트집』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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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man Frank Baum
아동과 청소년에게 널리 읽히는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쓴 작가이다. 1856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났다. 극작가, 극장 경영자, 신문기자, 영업사원, 심지어 닭을 기르는 일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아내의 격려로 좌절하지 않은 그는 밤마다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지었으며 장모 마틸다 게이지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프랭크 바움의 첫 책은 흥미롭게도 『함부르크 양육법』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결혼 후 한 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마더 구즈' 책들을 출간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잡지사의 편집장으로서의 자리도 탄탄히 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바움은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1899년 W. W. 덴슬로우와 함게 작업한 『파더 구즈 : 그의 책』은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듬해인 1900년, 평범한 시골 소녀의 독특한 모험담을 담은 『오즈의 마법사』를 출간하면서 잊혀지지 않을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후에 작가는 어른들을 위한 책도 여러 편 썼으나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오즈의 마법사』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편지에 파 묻혀 모두 14권에 이르는 '오즈' 시리즈 『오즈의 마법사 The Wonderful Wizard of Oz』, 『환상의 나라 오즈 The Marvelous Land of Oz 』, 『오즈의 오즈마 공주 Ozma of Oz』, 『도로시와 오즈의 마법사 Dorothy and the Wizard in Oz』, 『오즈로 가는 길 The Road to Oz』, 『오즈의 에메랄드 시 The Emerald City of Oz』, 『오즈의 누더기 소녀 The Patchwork Girl of Oz』, 『오즈의 작은 마법사 이야기 Little Wizard Stories of Oz』, 『오즈의 틱톡 Tik-Tok of Oz』, 『오즈의 허수아비 The Scarecrow of Oz』, 『오즈의 링키팅크 Rinkitink in Oz』, 『오즈의 사라진 공주 The Lost Princess of Oz』, 『오즈의 양철 나무꾼 The Tin Woodman of Oz』, 『오즈의 마법 The Magic of Oz』, 『오즈의 글린다 Glinda of Oz』 를 출간했다. 이 중 마지막 14권을 쓸 때 바움은 병원에서 그의 마지막 생을 보내고 있었고 끝내 그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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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hristian Andersen
덴마크 오덴세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대개는 혼자 집에서 공상하거나, 자기만의 작은 극장을 갖고 놀거나 인형 옷을 만들어 놀았다.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어 열네 살에 무작정 대도시 코펜하겐으로 가 여러 극단을 찾아다니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매번 퇴짜를 맞았다. 14세 때 코펜하겐의 덴마크 왕립 극장의 단원이 되어 배우의 꿈을 키우지만 변성기가 오면서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1822년 완성한 희곡 『알프솔』은 상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정치가 요나스 콜린과 국왕 프레데리크 6세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1827년에는 시 「죽어가는 아이」가 코펜하겐 신문에 실렸다. 여행을 즐긴 안데르센은 유럽 곳곳을 누비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1835년 서른 살에 첫 소설 『즉흥시인』을 발표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에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발간했으나, 처음엔 비난받기 일쑤였다. 교육적, 계몽적 측면보다 환상적 묘사에 힘을 실은 동화는 외면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잇달아 기발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창작 동화를 발표하며 명성을 떨쳤다.

오늘날 안데르센은 구전 민담의 원형을 넘어서서 ‘동화’ 장르를 개척한 ‘동화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못생긴 새끼 오리』, 『눈의 여왕』,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나이팅게일』 등 생전에 남긴 200여 편의 동화는 ‘불멸의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으며 100여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동화뿐만 아니라 소설, 시, 극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그는 자신이 관찰하고 상상한 모든 것을 현실로 불러들이고, 이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작가이자 예술가이다.

1875년 친구인 멜히오르가(家)의 별장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덴마크 국민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장례에는 국왕 내외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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