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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월트 휘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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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Walt" Whitman
미국의 국민시인으로 불리우는 월트 휘트먼은 스스로를 ‘미국인, 한 야성적 사나이, 하나의 우주’라고 정의하였다. 미국의 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다. 1819년 5월 31일 미국 롱아일랜드의 헌팅턴타운 근교의 웨스트힐스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아버지와 퀘이커 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민중의 대변인으로, 형식을 깬 자유시를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표현한 시인이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5∼6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하고, 11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심부름꾼, 인쇄소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지식을 깨우쳤는데, 그 덕분에 미국 작가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심이나 영국 작가들에 대한 모방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교육의 영향에서 벗어나 민중시인, 자유시인, 혁명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세울 수 있었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교사가 되었으며, 5년간 학교에서 일한 뒤 언론사에서 활동하며 시와 소설을 썼다.

저널리즘에 몸을 담아 뉴욕에서 활약했는데, 1838년에는 주간지 [롱아일랜더]를 창간했다. 1841년 『프랭클린 에반스』, 1842년 『한 아이의 챔피언』 등 소설을 발표하며 [뉴욕 오로라]의 편집자로 일하던 시기에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강연에 감명받아 자유시 형식의 시 쓰기에 전념한다. 그리고 1842년 봄에 갑자기 편집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욕 오로라]를 그만둔 후, [이브닝 태틀러], [롱아일랜드 스타],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과 같은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 자유 기고가, 편집인 등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마침내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 신문사 [브루클린 프리맨]의 편집 일을 맡았다.

1848년에 휘트먼은 뉴올리언스에서 발행되는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의 편집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뉴올리언스로 떠난다. 이때 그는 여행을 통해 그는 미국의 광대함과 다양함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때 경험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폭 넓은 비전은 그의 시에 스며들어 그를 미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발돋움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855년 7월, 제목 없는 열두 편의 시를 실은 『풀잎』 초판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에머슨이 이 시집을 극찬하여 시인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풀잎』의 혁신적인 자유시 형식, 성에 대한 묘사, 민주주의적 감수성에 대한 찬미, 그리고 시인의 자아는 시, 우주, 독자와 하나라는 낭만주의적인 주장은 미국 시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휘트먼은 『풀잎』에 생명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을 담은 「아담의 아이들」, 「창포」, 남북 전쟁의 경험을 담은 「드럼-탭스」, 에이브러험 링컨에게 헌정한 「오, 캡틴! 마이 캡틴!」, 「나 자신의 노래」 등을 추가하며 ‘임종판Deadbed edition’이라 불리는 1891~1892년 판본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수정과 증보를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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