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출연진 소개(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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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조지 쿠커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감독 : 조지 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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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쿠커 George Cukor
여배우의 연기력을 끌어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감독이다. 그는 그레타 가르보가 나온 <까미유>와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가 나온 <아담의 갈비뼈>, 주디 갤런드가 나온 <스타 탄생>,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온 스릴러 <개스등> 과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이것은 그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황금기를 풍미했던 감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후기의 대표작은 오드리 헵번이 나온 <마이 페어 레이디>이다. 그의 영화들은 모두 여주인공의 낭만적 환상이 현실로 실현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었고 조지 쿠거는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미국 대중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출연 : Anthony Quinn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출연 : Anthony Qu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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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퀸
1915년 멕시코 북부 치와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안토니오 루돌포 옥사카 퀸(Antonio Rudolfo Oaxaca Quinn). 10세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 소년 가장으로 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서 들어간 배우학원에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18세에 연극 <깨끗한 침대>로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고, 1936년 <패롤>을 통해 영화에 대뷔했다. 40년대에는 주목받는 배우가 되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에 혐오를 느끼고 할리우드를 떠나 뉴욕의 연극무대로 향하기도 한다. 150여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 영화사에 한 획을 그으며, 20년 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다시 그 역할을 연기하기도 한 「그리스인 조르바(1964)」의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스 역할과 「비바 사파타!(1952)」에서 말론 브랜도의 단짝 역 그리고 전기 영화 「열정의 랩소디(1956)」의 화가 폴 고갱 역할이다.

그는 1930년대에 악당이나 악당 졸개 그리고 「장렬 제7 기병대(1941)」의 크레이지 호스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 역할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대에 이르면 유명한 스타급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명성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예컨대 「워락(1959)」에서 헨리 폰다가 연기한 정신병적인 총잡이를 헌신적으로 따르는 단짝으로서 주연급의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그는 해외로도 진출하여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1954)」에서 떠돌이 장사 역의 잠파노로 열연했고, 「아틸라(1954)」에서는 유럽을 누비며 약탈하는 역을 해냈으며 「노트르담의 꼽추(1956)」에서는 흉측한 콰지모도 역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그 후에는 영어권 영화에서 다양한 '외국인' 역할을 맡으며 세계를 석권했다. 특히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 보여준 베두인족 족장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퀸의 개인적 삶 역시 다사다난했다. 그는 세 번 결혼했는데, 첫 상대는 세실 B. 드밀 감독의 양딸인 배우 캐서린 드밀이었다. 그러나 이 부부의 첫 아이가 세 살 때 W. C. 필즈의 집 수영장에서 익사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는 여러 아내들에게서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았고 전체 자식 수는 열세 명이다. 1980년대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세계적으로 전시되었다. 또 그는 『원죄(1972)』와 『원 맨 탱고(1997)』라는 두 권의 회고록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