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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정해종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정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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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편집자, 아프리카미술 전문 기획자로 살았다. 어려서는 앉은뱅이책상에 머리 파묻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착한 아들이었다. 학용품의 대부분을 상품으로 충당하는 효자이기도 했다. 딱 그때까지만 그랬다. 고등학생이 되어 사제의 부친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꿈과 집안의 기대를 배반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순교 성인의 자손으로 평생 종교적 소명의식 속에 살았던 아버지의 자존심이 심각히 훼손되었다. 이후 줄곧 불효의 길을 걸었으며, 나 또한 스스로 불행해졌다. 사제도 화가도 될 수 없었다. 일찌감치 집을 나와 거리에서 모든 걸 배웠다. 시는 그 불행의 날들 속에서 마음 누이던 안식처였다.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인생은 삐거덕거렸다. 늘 이곳이 아닌 저곳에 마음을 두고 살았다. 엉겁결에 시인이 되었고 문학잡지 기자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뜻했던 바도 없었으므로 출판편집자 생활에 순응했다. 피할 수 없는 것들을 철저하게 즐겼다. 고려원, 문학사상사, 해냄 등의 출판사에서 편집장과 주간 일을 보는 사이에 10년이 후딱 지나갔다. 어느 날, 아무런 연고도 경험도 없이 아프리카 열병에 걸렸다. 쇼나 조각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멀쩡한 직장과 강의를 때려치우고 퇴직금만 챙겨 생면부지의 땅으로 날아가는 도발적 증세가 이어졌다. 발이 팅팅 붓도록 작가들을 찾아다니고 작품을 수집했으며, 수많은 국내 전시들을 기획했다. 쇼나 조각에 이어 부시먼 미술과 웨야 아트를 처음으로 이 땅에 소개했다. 아프리카의 전통적 미의식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부족, 또는 지역 단위의 독특한 현대미술 운동이 나의 관심사였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미답지를 헤치고 나가 길을 만들었고, 그 일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아프리카와 살림을 차리고 싶어 끝없이 추파를 던지며 수작질을 벌이는 사이에 또 10년이 지나갔다.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산문집 『거품』 『터치 아프리카』를 출판했다. 앞으로 10년을 어떤 일로 채울 것인가를 궁리하며 여전히 시인, 편집자, 아프리카미술 전문 기획자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