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출연진 소개(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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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존 포드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감독 : 존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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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Ford
1894년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자손으로 태어나 1973년 사망할 때까지 14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던 존 포드는 할리우드 서부극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간주되곤 한다. 실제로 “나는 서부극을 만들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한 그는, 유아기의 서부극으로부터 출발하여 장르의 고전적인 규칙들을 세우고 그것을 신화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렸으며 후기에 이르러서는 스스로가 확립한 세계를 반성적으로 재검토하는 데까지 나아갔던 인물이다.

그는 서부극 이외에도 전성기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수준의 품격 높은 작품들 또한 만들어내어 무려 여섯 차례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존 포드는 고전적인 짜임새를 갖춘 형식을 통해 지극히 복합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다룰 수 있었던 진정 드문 감독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당대의 비평가들과 대중들 모두에게서 사랑 받았을 뿐 아니라 후대의 많은 젊은 감독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필모그래피]

존 포드 걸작선-밀고자(1935)|감독
존 포드 걸작선-역마차(1939)|감독
존 포드 걸작선-기나긴 여정(1940)|감독
존 포드 걸작선-분노의 포도(1940)|감독
존 포드 걸작선-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감독
존 포드 걸작선-황야의 결투(1946)|감독
존 포드 걸작선-아파치 요새(1948)|감독
존 포드 걸작선-리오 그란데(1950)|감독
존 포드 걸작선-웨건 마스터(1950)|감독
존 포드 걸작선-조용한 사나이(1952)|감독
존 포드 걸작선-수색자(1956)|감독
존 포드 걸작선-라이징 오브 더 문(1957)|감독
존 포드 걸작선-말위의 두 사람(1961)|감독
존 포드 걸작선-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감독

출연 : 존 웨인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출연 : 존 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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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인 John Wayne
미국 아이오와 윈터셋 출생.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12살 때부터 닥치는 데로 일을 해야만 했던 존 웨이은 글렌데일 고등학교의 축구선수에서 써던 캘리포니아 대학의 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대학 재학당시 폭스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그는 그의 영화 경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존 포드 감독을 만난다. 몇 달 동안 다른 일들을 하다가 폭스 스튜디오에서 다시 일하게 된 존 웨인은 이번엔 비록 엑스트라지만 연기라는 걸 하게 된다. 이때 존 웨인의 스테이지 네임은 듀크 모리슨이었는데. 나중에 존 웨인으로 바꿨다고 한다. 1930년대에 들어서 존 웨인은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던 존 웨인은 존 포드 감독의 [스테이지코치/Stagecoach]에 출연하면서 빅 스타로 떠오르고. 이 영화를 기점으로 존 웨인의 경력은 계속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거의 250 여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한 가장 미국적인 우상인 존 웨인은 서부극과 강직한 보안관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데. 그는 영화계의 스타로서 뿐만이 아니라 반공산주의자로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편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이런 보수주의 경향은 배리 골드워터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베트남전의 미국 참전에 대한 공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 등 정치.사회적으로도 화제의 중심이었다. [트루 그리트]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1966년엔 골든글로브 세실 B. 드밀 상을 수상한 그는 폐암으로 1979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