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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 : 헤럴드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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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old Bloom
인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예일 대학의 인문학 교수다. 1930년 뉴욕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블룸은 1947년에 코넬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학사 학위를 받고, 1955년에 예일 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넬 대학에서 『노튼 영문학사』의 대표 편집자이자 낭만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M. H. 에이브러햄 교수를 만나 영향을 받았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하버드 대학의 시학 교수였고,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 대학 대학원의 영문학 교수였다. 로마 대학과 볼로냐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다. 1999년에 미국 예술문예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비평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1985년에 일명 ‘천재상’이라 불리는 맥아더 재단 펠로십을 받았다. 2002년 카탈로니아 인터내셔널 상, 2003년 국제 알폰소 레예스 상 등을 받았다.
찰스 디킨스의 『피크윅 페이퍼스』를 1년에 두 번씩 읽어 책장이 해질 정도로 이 작품을 좋아하는 블룸은 열 살 때 만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 시인 하트 크레인의 시 ?무너진 탑?을 생애 내내 뇌리에 깊이 새길 정도로 일찍이 문학적 소질을 보였다. 벌써 10대 시절에 블룸은 윌리엄 블레이크부터 셰익스피어까지, 『맥베스』에서 『모비딕』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문학 세계를 넓혀간 조숙한 천재였다. “열한 살 무렵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은 시를 읽고 논하는 것이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를 옹호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의 영향력 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블룸은 문학에 대한 유미주의적 입장을 견지했으며, 역사주의, 페미니즘, 해체론, 마르크스주의 등 서구의 근대적 주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비평 조류를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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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저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등저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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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ksandr Sergeevich Pushkin,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러시아 시인. 모스크바 출생. 러시아 국민문학의 창시자이다. 러시아 국민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받아온 최고의 국민 시인 푸쉬킨.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은 1799년 6월 6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근교에서 600년 전통의 유서 깊은 귀족 혈통으로 출생했다. 1811년 차르스코에셀로(지금의 푸슈킨시)에 개설된 귀족학교 리체이에 입학, 이 시절 자유주의 의식이 싹트고 야만적인 농노제로 신음하던 러시아 현실에 대해 깊은 각성을 하게 된다. 자유주의적 교풍 속에서 1814년 『나의 친구, 시인에게』를 발표하여 문학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처음엔 선배이자 낭만주의 시인인 K.N.바튜슈코프, V.A.주코프스키 등 17.18세기 프랑스 시인들의 시풍을 따랐다. 1817년 리체이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근무하며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혁명적 사상가 P.Y.차다예프와 사귀고, 러시아 전제정치를 타도하려 한 무장봉기단체 데카브리스트의 그룹에 참여하는 등, 농노제 타도 정치사상이 확고해졌다. 데카브리스트의 사상에 공명하여 자유를 사랑하는 내용의 송시 「자유」(1817), 농노제 붕괴를 예언한 「농촌」(1819) 등 일련의 과격한 정치적 시를 써서 남러시아로 추방되었다.

G.G.바이런의 영향을 받고, 그곳에서 『카프카스의 포로』(1822), 『도둑 형제』(1821∼22), 『바흐치사라이의 샘』(1821∼23) 등의 작품 소재를 얻었다. 1820년 러시아 민간전승에서 취재한 동화풍 담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발표하여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후 비밀 결사와의 친교, 보론쏘프 장군의 아내와의 사랑, 아버지와의 불화, 나탈리야와의 열애와 결혼 등 1833년 가을 페테르부르그로 돌아오기까지 개인적인 불운과 고난 속에서 유명한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1823~1831)을 비롯, 서사시 『집시들』『청동의 기사』 중편소설『벨킨의 이야기』『스페이드 여왕』과 비극『모차르트와 살리에리』등 많은 작품들을 발표한다.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 작품인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기 시작한 1823년 무렵에는 낭만주의 한계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집시』(1824)에서 바이런적 주인공에 대한 비판의 눈길로 개인과 사회, 자유와 운명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24년 무신론을 긍정한 편지가 압수되면서 미하일로프스코에 마을에 연금된 동안, 비극시 「보리스 고두노프」(1825), 풍자적 서사시 「누손백작」(1825) 등을 완성하였다. 고독하고 불우한 유폐생활을 통해서 사상적.예술적 성장을 하게 되고 러시아 국민시인으로 성숙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26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특사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그뒤 만년까지 관헌의 엄중한 감시와 검열을 받았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 니제고르드주에 갔을 때 콜레라로 발이 묶인 3개월이 창작의 정점을 이루는 시기가 되었는데, 단편소설집 『벨킨 이야기』, 4편의 작은 비극 『돌의 손님』,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질병 때의 주연(酒宴)』 등 50편의 작품을 썼으며, 『예브게니 오네긴』의 기본적 부분도 이때 완성되었다.

나탈리야와의 결혼은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궁정행사에 그녀가 참석하기를 바라는 황제에 의하여 푸슈킨은 시종보로 임명되었다. 이는 창작하는 시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나, 세속권력과의 충돌 속에서 역사적 시야를 확대해 가며, 표트르대제의 공적을 기리면서 그 희생이 된 페테르부르크 소시민의 비극을 묘사한 서사시 『청동의 기사』(1833), 소설 『스페이드 여왕』(1834), 역사소설 『대위의 딸』 등을 발표했다. 1837년에 자신의 아내와 염문을 일으킨 프랑스인과의 결투 도중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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