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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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무라사키 시키부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무라사키 시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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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asaki Shikibu,むらさき しきぶ,紫式部,이즈미 시키부
헤이안(平安) 시대 중기에 활약한 여류작가로, 일본의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완전한 장편소설로 일컫는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의 저자다. 여관으로서의 이름은 후지 시키부(藤式部)이며 작가로서의 이름은 무라사키 시키부다. 진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몇몇 연구자들은 그녀의 본명이 후지와라 다카코였으리라 짐작하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무라사키'는 『겐지 이야기』의 등장인물 이름인 무라사키노 우에(紫の上)에서, 시키부는 아버지의 관직명에서 딴 것으로 전해진다.

서기 973년경 지금의 교토(京都)에서 후지와라 북가(北家) 계열의 하급귀족이자 한학자인 후지와라노 다메토키와, 후지와라 다메노부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두 살 때 생모와 사별하고 아버지 다메토키의 훈도를 받으며 자랐다. 남편이 지방의 태수로 임명될 경우 보통 부부가 헤어져 살면서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던 헤이안 시대에서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재능과 총명함을 알아보고, 여느 남자들처럼 한문 교육을 받게 했다.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에 따르면, 아버지가 아들 노부노리(惟規)에게 한학을 가르칠 때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무라사키시키부가 항상 먼저 해독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무라사키시키부의 뛰어난 재능과 지식은 훗날 『겐지 모노가타리』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998년 당시로서는 만혼인 29세(998)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는 사촌인 후지와라노 노부타카와 결혼했다. 당시 노부타카는 45세였으며, 무라사키 시키부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었다. 999년, 노부타카와의 사이에서 카타코(賢子)라는 딸을 얻었으나 결혼 생활은 사실상 얼마 안가 파국을 맞았고, 1001년 남편인 노부타카는 병으로 사망했다. 이후부터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소설과 일기를 쓰는 일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무렵부터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겐지 모노가타리』 속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그녀는 당시의 권세가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1005년경 이치조(986∼1011) 천황의 중궁인 아키코(彰子, 미치나가의 딸)의 뇨보(女房, 궁중에서 시중을 드는 궁녀)로 입궐했으며, 황후 데이시의 뇨보인 세이 쇼나곤과 라이벌로 대립하며 여러 편의 와카와 소설을 남긴다. 1013년 가을까지는 궐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이후로는 행적 불명이며, 1014년 정도에 사망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당시의 궁중생활은 '히카루 겐지'를 주인공으로 한, 『겐지 이야기』를 집필하는데 많은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겐지 이야기』는 당시의 궁정생활을 묘사하고 이상화한 것으로 이른바 헤이안조(朝) 미의식(美意識)을 선명하게 표현하였는데, 지극히 세련되고 우아한 귀족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사회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주로 궁정귀족의 영화와 유미적(唯美的) 연애생활에 대한 찬미로 채워졌는데, 그 외에도 당시 중·하층 귀족계급 사이에서 서서히 제고되기 시작하였던 불교의 정토흔구(淨土欣求) 사상이 잘 나타나 있고, 연애와 도심(道心)의 상극의 묘사가 돋보인다. 히카루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인 무라사키노우에는 자신을 원형으로 한 인물로 그 당시 중류층에 머물러있었던 신분적 한계나 모자란 사랑 등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겐지 이야기』의 집필시기를 무라사키 시키부의 남편인 후지와라노 노부타카(藤原宣孝)가 죽은 1001년부터 그녀가 궁정에서 시녀로 일하기 시작한 1005년까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길고 복잡한 작품을 쓰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세월이 걸려 1010년 무렵에도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다. 또, 히카루 겐지가 죽은 뒤의 이야기는 다른 작가가 썼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 책을 현대어로 옮긴 세토우치 자쿠초는 무라사키 시키부가 오랜 세월을 두고 이 소설을 완성했을 것이란 설을 내세우고 있다.

이후 1010년경에는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1013년경에는 가집 『무라사키시키부집(紫式部集)』 등을 편찬하였고, 그 외에 『고슈이 와카집[後拾遺和歌集]』을 비롯한 『칙선집(勅選集)』에 60수 가까운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가마쿠라(鎌倉) 초기에 나온 이야기 평론집 『무묘조시(無名草子)』에는 '『겐지 이야기』가 쓰인 것은 부처님의 영험이며, 범부가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겐지 이야기』는 작자 무라사키시키부의 와카(和歌) 및 한시문에 대한 조예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 등이 삼위일체가 되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하여 새로 발행된 일본 화폐 2000엔 권의 뒷면에는 『겐지 이야기』 청귀뚜라미 권의 그림과 작자의 초상이 실리기도 했으며, 아서 웨일리가 번역한 『겐지의 이야기 The Tale of Genji』 (1935)는 영국 문학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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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요사노 아키코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요사노 아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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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iko Yosano,よさの あきこ,輿謝野 晶子
요사노 아키코는 일본의 가인이자 시인, 작가, 사상가이다. 잡지 『묘조明星』에 단카를 발표하고 낭만주의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평론 『정조를 파괴하는 자는 남자』, 가집 『흐트러진 머리칼』, 시 「너 죽는 일 부디 없기를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남편과 함께 남긴 기행문 『파리에서巴里より』 등이 있다.

요사노 아키코는 사카이(堺)의 전통 과자점 스루가야(駿河屋)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12세 무렵부터 가업을 도와 장부를 기록하거나 대나무 껍질로 단팥묵을 포장하는 등 일에 쫓기는 생활을 해야 했다. 후일 유년 시절을 회상한 글에서 그녀는 “밤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밤 12시에 꺼지는 전등 아래서 겨우 1시간 또는 30분 부모의 눈을 피해가며 내가 읽은 책들은 여러 가지 공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어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다”고 술회했는데, 답답한 일상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벗은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었다. 부친의 장서였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마쿠라노소시(枕草子)』, 『영화 이야기(榮華物語)』 등 고전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동경하며 소녀 아키코는 암울한 현실의 저편에 있는 감미로운 사랑의 세계를 꿈꾸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독서 목록에는 제국대학에 재학 중이던 오빠가 보내오는 당시의 최신 문예 잡지와 신소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학교 졸업 후 진학한 사카이 여학교는 현모양처를 양성하는 봉건적 여성 교육을 주로 하는 학교였으나, 아키코는 독서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사조를 체감하고 가부장적 구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의식을 키워갔다. 그녀의 재기는 1899년 서일본 지방 문학청년들의 모임인 관서청년문학회 입회를 통해 싹트기 시작해, 요사노 뎃칸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함께 일시에 분출되었다. 그 첫 번째 결실인 『헝클어진 머리칼』은 근대적 자아에 눈뜬 새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대담하고 분방하게 표현한 것으로, 단숨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초기 일본 낭만주의의 거점이었던 문예지 「묘조」의 여왕으로 활약하며 일본 문학사상 ‘정열의 가인’으로 기록된다. 결혼 후에는 소설, 시, 평론, 고전 연구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한편, 11명의 자녀를 키우며 가계를 꾸려가는 정력적인 삶을 영위했다. 그사이 작풍은 초기의 격정적인 어조는 퇴색되었으나 낭만적 미질을 유지하는 가운데 점차 내면적인 깊이를 더해 고요한 자기 관조와 사색적 서정을 내포해 가게 되었다. 1912년 뎃칸과 함께한 유럽 여행 이후에는 여권 신장 운동 체험을 바탕으로 넓은 사회적 시야를 갖고 부인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문화학원(文化學院)을 창립(1921)해 초대 학감에 취임하는 등 문학은 물론 교육 활동에 있어서도 폭넓은 족적을 남겼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함께 널리 회자되는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반전시로 일컬어지는 장시 「너는 죽지 말거라(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1904)를 들 수 있다. 아키코는 무엇보다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는 시의 가치를 믿었으며 전 생애를 다해 사랑을 노래한 작가로 기억된다. 1942년 뇌일혈 투병 중 사망하기까지 그녀가 남긴 가집은 20권, 약 5만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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