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출연진 소개(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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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 Martha Argerich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연주 : Martha Arge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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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아르헤리치
1941년 6월 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세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며, 음악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빼어나 신동 소리를 들었다. 열한 살에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극장 테아트로 콜론에 데뷔했다. 1955년 가족과 함께 빈으로 이주해 프리드리히 굴다의 제자가 되었고, 1957년 부조니 콩쿠르와 제네바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0년 연주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슬럼프를 겪던 아르헤리치는 1965년 제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녀의 연주는 쇼팽 해석을 혁신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음반과 공연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며 숱한 명반과 명연을 남겼다. 현란한 테크닉과 파워풀한 타건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그녀는 〈BBC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9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그녀는 독주 무대 대신 실내악 협연 위주로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과 협연을 이어오고 있다. 또 루가노 페스티벌,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 등을 조직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녀에게는 성姓이 다른 세 딸, 1964년 중국 출신 지휘자 첸량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리다 첸, 1970년 두 번째 남편이었던 지휘자 샤를 뒤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니 뒤투아, 1975년 연인이었던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세비치와의 사이에서 낳은 스테파니 아르헤리치가 있다. 엄마로서 아르헤리치의 모습은 스테파니가 감독한 다큐멘터리영화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세 딸들Bloody daughter〉에 담겨 있다.

1992년 암(악성 흑색종)을 진단받은 그녀는 1997년 병이 재발했지만 회복해 완치되었다. 여든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주 : Evgeny Kissin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연주 : Evgeny Ki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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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프게니 키신
197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항공 우주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여섯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 영재 학교에 입학하여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에게 배웠으며 그녀는 그의 평생 유일한 스승으로 남아 있다. 1984년 열두 살의 나이에 드미트리 키타옌코의 지휘로 모스크바 음악원 대극장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으며 이 유명한 콘서트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인 연주회로 기억된다. 그는 그날 저녁까지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고 다음날 아침 그는 이후 시작되는 전설의 주인공이 된다. 1985년 동유럽 무대 데뷔 후 1987년 베를린 페스티벌을 통해 서유럽 무대에 데뷔했고, 1988년 12월 신년 음악회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연주가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각인된다. 1990년 런던의 BBC 프롬스 콘서트에 처음으로 출연했으며, 같은 해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면서 북미 에 데뷔했다. 1997년 그는 러시아 공화국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문화 훈장인 트리움프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BBC 프롬스 역사상 최초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다. 1991년 러시아 시민 혁명 직후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2002년 영국 국적을, 2013년에는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자신도 신동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피아니스트 레오폴트 고도프스키의 ‘놀라움이 사라지고 나면 어린 아이만 남을 뿐’이라는 경구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신동을 뛰어넘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피아니스트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주 : Renaud Capucon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연주 : Renaud Capu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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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카퓌송
20대의 젊은 나이로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동시에 21세기의 가장 촉망받는 아티스트인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Renaud Capucon)은 솔리스트,그리고 실내악 주자로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1976년 1월 27일,프랑스 샹베리(Chambery)에서 태어난 르노 카퓌송은 14세 때부터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1995년 그는 베를린 예술대학에 입학했으며,토마스 브란디스,아이작 스턴,슐로모 민츠,오귀스탱 뒤메이를 사사하였다. 1997년 르노 카퓌송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특별 초청을 받아 '구스타프 말러 유겐트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고,이 때 피에르 불레즈,세이지 오자와,다니엘 바렌보임,프란즈 벨저-뫼스트,클라우디오 아바도와 같은 명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했다.

2000년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상인 'Victoires de la Musique'(음악의 승리)는 르노 카퓌송을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하고 그를 'Rising Star 2000'으로 지목했다. 솔리스트로서 르노 카퓌송은 베를린 필하모닉,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보스턴 심포니,NHK 심포니와 같은 유럽,미국,일본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이때 함께한 지휘자로는 버나드 하이팅크,정명훈,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샤를 뒤투아,세미욘 비취코프,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이반 피셔, 다니엘 하딩,볼프강 자발리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