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소개(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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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 Evgeny Kissin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연주 : Evgeny Ki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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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프게니 키신
197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항공 우주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여섯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 영재 학교에 입학하여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에게 배웠으며 그녀는 그의 평생 유일한 스승으로 남아 있다. 1984년 열두 살의 나이에 드미트리 키타옌코의 지휘로 모스크바 음악원 대극장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으며 이 유명한 콘서트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인 연주회로 기억된다. 그는 그날 저녁까지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고 다음날 아침 그는 이후 시작되는 전설의 주인공이 된다. 1985년 동유럽 무대 데뷔 후 1987년 베를린 페스티벌을 통해 서유럽 무대에 데뷔했고, 1988년 12월 신년 음악회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연주가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각인된다. 1990년 런던의 BBC 프롬스 콘서트에 처음으로 출연했으며, 같은 해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면서 북미 에 데뷔했다. 1997년 그는 러시아 공화국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문화 훈장인 트리움프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BBC 프롬스 역사상 최초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다. 1991년 러시아 시민 혁명 직후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2002년 영국 국적을, 2013년에는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자신도 신동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피아니스트 레오폴트 고도프스키의 ‘놀라움이 사라지고 나면 어린 아이만 남을 뿐’이라는 경구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신동을 뛰어넘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피아니스트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주 : Gidon Kremer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연주 : Gidon Kre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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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돈 크레머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 리가에서 태어났다. 조부이자 바이올린의 대가였던 카를 브뤼크너(1893-1963)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양부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일곱 살에 리가 음악 학교에 들어갔고, 열여덟 살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전설적 연주자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걷는다. 1967년,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했고, 1969년 몬트리올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가 마침내 같은 해 열린 파가니니 콩쿠르와 1970년 차이콥스 키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다. 1975년 독일 안스바흐의 바흐주간 페스티벌과 베를린 필하모니를 통해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80년에는 소련을 떠나 독일에 정착했다. 다음 해, 오스트리아 로켄하우스에서 실내악 페스티벌(후에 ‘크레메라타 무지카’로 명칭 변경)을 창설해 새롭고 독특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2011년까지 장장 30년 동안 예술감독을 지냈다. 1997년에는 발트 해 지역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인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만들어 지금도 전 세계로 활발히 초청 공연을 다니고 있다. 2002년에는 이 실내악단과 함께 논서치에서 발매한 음반 〈애프터 모차르트After
Mozart〉로 그래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016년 영국 음악전문지 〈BBC 뮤직 매거진〉이 백 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첫손에 꼽히기도 했으며, 현대 음악의 저변과 바이올린 음악 레퍼토리를 넓히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 책을 비롯하여 《유년기의
파편Kindheitssplitter》 등 네 권의 음악 관련 서적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