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출연진 소개(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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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 론 채니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주연 : 론 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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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 Chaney
콜로라도, 콜로라도 스프링스 태생
본명 : 레오니다스 프랭크 채니
대표작 : 1923년 <노틀담이 곱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 론 채니는 영화배우로서 숭배 받을 여건은 갖추지 못했지만 사후에 그가 남겨놓은 강한 카리스마와 자신을 학대하며 이룬 대단한 업적은 많은 후배들에게 의미있는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1920년대에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사의 주요한 스타이기도 했던 그는 어렸을 때 청각 장애자인 양친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애써가면서 마임 기술을 몸에 익혔다. 하지만 1920년대,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는 체니식 연극스타일 양식이 사라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로테스크한 스펙터컬 영화의 한정된 영역에서 그의 얼굴과 육체의 활용도는 놀라울 정도로 신의 가치를 이어 받았다. 지방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12년 유니버설의 단역배우로 헐리우드에 발을 디뎠다. 5년 동안 75년의 다작에서 무시무시한 분장을 하고 신체를 뒤틀어 외모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증명하였다. 그에게 결정적인 연기자로서의 기회를 부여한 작품은 <기적의 사나이>였다. 그 작품은 흥행과 비평 면에서 두루 성공을 거두며 이어지는 많은 공포물에서 그의 가치를 입증해 주었다. 1923년 <노틀담의 곱추>, 1925년 <오페라의 유령>은 그의 역량을 한층 더 성숙시켜주는 걸작이 되었다. 그는 명장 '토드 브라우닝'과 <불결스런 3인조, 1925>을 시작으로 <검은새, 1927>, <자정 이후의 런던, 1927>, <무명인, 1927>, <대도시, 1928>, <잔지바의 서쪽, 1928>에서 함께 작업을 하며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적인 협력파트너로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그의 그로테스크한 행동 양식은 점차 그의 고정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남성 팬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았고 1930년 리메이크작 <불경스런 3인조>의 유성영화 데뷔를 끝으로 침대에 드러누워야 했다. 후두암으로 타계한 그는 마임으로 자신의 마지막 유언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