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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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지율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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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에서 청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선방에서 지내다 1997년 구족계를 받고 1998년에 수행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에 공부하러 내원사에 왔다가 포클레인이 산을 뚫고 길을 내는 장면을 보고 마치 어린아이가 강간당하고 구타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때부터 천성산 지킴이로 나섰다. 2003년 5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무려 242일간 단식을 했지만 천성산 터널은 결국 개통됐다. 그 후 교통편조차 거의 닿지 않은 영덕의 두메에서 살며 하루 5000원짜리 손수건 한 장씩을 수놓아 판 돈 월 15만원으로 무소유적 삶을 살았다. 그러다 2009년 4대강 개발 현장인 낙동강에서 천성산보다 100배, 1000배나 더 많은 생명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현장을 지키며 생명의 고통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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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박기호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박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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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시절 방황기를 거쳐 나환자와 행려자 돕는 일을 하다가, 서른을 넘겨서야 신학교에 입학했다.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신부로서 나를 필요로 하는 부르심에는 기꺼이 응답하자!” 그 약속에 순종하여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활동을 비롯해, 지금껏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1998년 소비문화시대 예수 제자의 삶을 모색하다 동료 사제들과 ‘예수살이 공동체’를 설립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이라는 예수살이의 정신으로 안티소비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온전한 예수살이를 실천하는 공동체 마을이야말로 시대적 구원의 징표로서 ‘노아의 방주’라는 생각으로 2004년 소백산 자락에 무소유와 농업 노동의 ‘산 위의 마을’을 꾸렸다. 2006년 마을에 입촌하여 가족들과 함께 기도와 노동과 공생의 기쁨으로 살고 있다. ‘노동의 새벽’ 박노해 시인의 형이기도 하다. 저서에 사순절 묵상집 《십자가의 길》(1994년), 루가복음 묵상집 《못다부른 님의 노래》(1997년), 기고 모음집 《게는 옆으로 걷는 것이 정도다》(2005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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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이남곡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이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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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까지 함평에서 마치고, 1960년 서울 경기고에 입학하였다. 유학 첫해인 1960년에 겪은 4. 19 혁명으로 시대에 눈 뜨기 시작하였다. 196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였다. 대학에 가서도 사회적 부자유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변혁운동에 나섰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다 지하운동에 가담하였다. 1972년부터 농촌지역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농촌운동과 함께 교사운동을 하였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사건을 전후로 해서 그의 사상은 큰 전환을 하게 되는데, 그의 사상이나 운동론은 이 때 그 틀이 형성된다. 이런 바탕에서 출옥 후 정토회 법륜스님이 이끈 불교사회연구소에서 새로운 인간과 사회, 새로운 문명을 고민하고 설계하기도 했다. 그 즈음 무아집, 무소유, 일체의 이념으로 집약되는 야마기시(山岸) 사상을 만났다. 야마기시즘 특별연찬회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96년부터 8년간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야마기시 실현지에서 새 삶을 꾸렸다.

여기에서 그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향해온 새로운 사상, 즉 ‘자본주의와 아집(我執)’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여러 면에서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직은 일반화할 수 없는 무소유사회보다는 지금 사람들의 실태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인 실천을 해보고 싶어 전북 장수에 자리잡고 작은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이들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마을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어', '중용'을 ‘연찬’하고, 서로 자기성찰과 소통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내일을 함께 설계하고 있다. 마음과 물질이 함께 풍성한 사이좋은 마을 - 이것이 장수에서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마을이다. 또한 새로운 운동에 대한 그의 꿈은 익산의 ‘희망연대’에서 젊고 새로운 시민운동가들과 만나게 했고, 이 책에 실린 많은 내용들도 이 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일관되게 지향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현상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 자기변혁과 세계변혁이 둘이 아닌 하나로 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라 파악하며, 그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저서로 『진보를 연찬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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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임락경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임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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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洛京
임락경 목사는 스스로를 돌파리突破理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깎아내릴 때 쓰는 ‘돌팔이’라는 말을 슬쩍 비틀어 ‘이치를 돌파한 사람’이라는 뜻을 담았다. 1945년 순창에서 태어난 그는 17세에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수도 공동체인 동광원에 들어가 결핵 환자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했다. 이때 다석 유영모, 오방 최흥종 목사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1980년부터 강원도 화천에 시골교회를 열어 장애인들과 어울려 살며 농사를 지어 왔다. 유기농 콩을 심어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꿀벌을 친다. 크리스챤아카데미,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고 정농회 회장, 화천군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초대 회장, 상지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시대의 영성가들』 외에 『돌파리 잔소리』,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 『흥부처럼 먹어라 그래야 병 안 난다』 등이 있다. 나이 80에 이른 지금도 화천 시골교회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읍 사랑방교회에서 건강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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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칫다다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칫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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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박사 출신 ‘아난다마르가’ 수행자.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위티타대와 메릴랜드대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 산업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일하던 중 고혈압과 당뇨, 위염 등을 앓다가 아난다마르가를 만나 몸과 정신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고 수행자의 삶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자본주의 이후 새 시대의 경제모델 ‘프라우트’와 스승 사카르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저 : 서영남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서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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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부산 범내골에서 태어나 1976년 한국 순교 복자수도회에 입회, 1985년 종신서원을 하고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하였다.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를 다니며 장기수 면담활동을 했으며, 2000년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되어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형제들과 함께 지냈다.

수도원에서 25년간 수사 생활을 하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환속했다. 출소자 공동체 ‘겨자씨의 집’을 만들어 형제들과 지내던 중 2003년 만우절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을 차렸다. 그해 5월에 느슨한 공동체로서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민들레의 집’ 활동을 시작했고, 이어서 노숙인들이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민들레 쉼터’를 만들었다. 민들레 쉼터는 2009년 7월에 노숙인의 문화센터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로 발전해 국수집 손님들이 스스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민들레 국수집 5주년인 2008년 만우절에 어린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 공부방’을 오픈했으며, 2010년 2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을 열었다. 8년째 한결같이 매주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 달에 두 차례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아내 베로니카와 딸 모니카와 함께 사형수와 무기수를 비롯한 전국의 교도소 형제들을 방문한다.
2008년 MBC사회봉사대상 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