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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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후지시마 가이지로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후지시마 가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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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마는 전후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고건축학자다. 1922년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공대 전신)에 건축학과가 개설되면서 조교수로 부임한 그는 조선총독부 기사(技師·일종의 건축사)를 겸했고, 도쿄(東京)제국대학 공학부 건축학과 스승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지도 아래 조선건축사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1930년, 후지시마가 『조선건축사론』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고, 일본과 한국의 학계는 그의 이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실린 조선건축에 관한 여러 논문 중에서도 경주의 시가배치도를 나름의 토대로 상상해 복원한 '신라왕경복원도'는 8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가장 완벽한 신라 왕경지도로서 불후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1929년 5월 후지시마는 모교인 도쿄제국대학 조교수에 임명돼 196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한반도 고건축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퇴임 뒤에는 시바우라(芝浦)공업대학 교수로 다시 10년을 더 일했다. 도쿄제국대학 교수 시절인 1936년부터 1980년까지 44년 동안이나 한국의 문화재위원에 해당하는 문부성 국보보존회 위원을 지냈다.

후지시마는 오사카의 유서 깊은 사찰 시텐노지(四天王寺) 오중탑(五重塔)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을 나라(奈良)식으로 복원설계함으로써 1968년 일본예술원이 수여하는 은사상(恩賜賞)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일본건축학회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02년 7월 15일 향년 103세 때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1899년 모리오카에서 태어나 2002년에 타계했으니 3세기에 걸친 삶을 산 셈이다. 한국건축사를 논할 때 후지시마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고, 실제 그의 각종 연구성과가 이곳저곳에서 무수히 인용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인물연구를 국내에서는 단 한 편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후지시마 가이지로는 신라사와 관련된 역사학, 고건축 및 고고학계를 망라해 가장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을 한국인들에게 기억돼야만 할 것이다.

역 : 이광노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이광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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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한 이광노는 경복중학을 거쳐 1945년 4월,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공대 전신)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이광노는 1955년 그의 아호를 딴 무애(無涯)건축연구소를 설립해 한국 현대건축을 이끈 한국 건축학계의 원로다. 1949년, 이광노는 21세의 나이에 대구시청사 현상설계를 시작으로, 6·25전쟁 기간 동안 국군충혼탑, 유엔전우탑 등을 설계하는 등 청년건축가로서 촉망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교통부·서울시 연구원, 한미재단 주택건설 실무자로 6·25 직후 건축계의 부흥을 이끌었고, 1954년 도미(渡美)해 세계적 명성의 건축사무소 ‘아이엠페이(I.M.PEI)’에서 세계적 건축가 이오밍 페이(Ieoh Ming Pei)에게 세계 수준의 건축기법을 전수했다. 28세 때 서울공대 건축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30여 년 동안 교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한편, 건설부 건축위원, 문화재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건축위원, 대한건축학회장으로 일했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있다. 이광노 서울대 명예교수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현역’ 시절 남긴 작품은 남산 어린이회관, 국회의사당, 서울대 캠퍼스, 삼성빌딩, 서울대학병원, 주한중국대사관, 아산재단 중앙병원 등 170여 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