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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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금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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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지휘자, 경희대 교수이다.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라벤슈타인을 사사했다.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한 후 프라하 방송 교향악단, 도이치 캄머오케스트라,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했으며, 유러피안 마스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거쳐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등을 지휘했다. 1998년부터는 ‘벤처 오케스트라’인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창단 당시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를 시작한 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아울러 기업과 예술의 만남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노하우를 벤처 오케스트라 경영에 접목시켜 삼성전자, 포스코, CJ, 삼성테스코 등과 함께 활발한 연주를 이어 오고 있다. 2007년에는 용인시의 후원으로 연간 12회의 음악회를 성황리에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국내의 아름다운 휴양지를 무대로 한 다채로운 음악축제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2003년부터 개최해온 ‘제주뮤직아일 페스티벌’은 해외 유명 연주자들을 초청하여 기업과 문화의 만남을 국제음악축제로 승격시키며 매해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2007년 첫선을 보인 ‘무주페스티벌&아카데미’는 국내 최초의 오케스트라 마스터클래스로, 마스터클래스와 콘서트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음악축제로, 실력 있는 어린 연주자를 육성, 발굴하는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로서 명실 공히 자리매김했다.

지휘자, CEO뿐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활발한 행보를 하고 있는 그는 현재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6년부터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여 경기도 문화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2015년부터 국내 신문사 최초로 창단된 한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대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교육자로서도 활발한 행보를 하고 있는 그는 경희대 음대 교수를 거쳐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인 바 있다. 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지휘자 금난새는 현재 성남시립교향악단 음악 감독으로 새로운 무대와 청중을 찾아 정력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 한편 서울예고 명예교장으로 젊은 예술인들을 육성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작은 새 금난새』 『마에스트로 금난새 열정과 도전』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 『금난새의 교향곡 여행』 『모든 가능성을 지휘하라』 『CEO 금난새』 『금난새의 내가 사랑하는 교향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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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금수현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저 : 금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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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남 김해군 대저면(현재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제2공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음악학교(도쿄음악대학교의 전신) 본과에서 성악(바리톤)을 전공했다. 1942년 동래고등여학교 음악 교사가 된 그는 소설가 김말봉의 딸 전혜금을 만나 결혼했다. 경상남도 도립극장장, 경남여자고등학교 교감, 부산사범학교 교감, 경남여자중학교장, 통영여자고등학교장 등을 거치는 동안 지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그는 1957년부터 6년간 문교부 편수관으로 근무하면서 음악 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데 공헌했다. 1963년 [국제신보] 고문을 맡아 칼럼을 썼고, 1965년 ‘영 필하모닉 관현악단’ 이사장직을 맡았으며, 1972년 음악저작권협회장, 1982년 한국작곡가협회장과 한성로터리클럽 회장 등을 지냈다. 또한 말년에 필생의 작품인 오페라 「장보고」를 완성했다. 그 뒤 1992년 73세를 일기로 「그네」의 노랫말처럼 구름 속으로 홀연히 떠났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표준음악사전』 『음악의 문』 『거리의 심리학』 『음악 멋말 500)』 『나의 시대 70』 등이 있으며, 발간된 두 권의 가곡집에는 「그네」 「파랑새」 「구름」 등 24편의 가곡이 수록돼 있다. 작품으로는 오페라 「심봉사의 슬픔」 「피리와 칼」 「장보고」 기악곡으로 오페라서곡 「새벽의 바다」, 기타 독주곡 「가락」 등이 있다. 그는 원래 김(金)씨인데, 해방 후 금씨로 성을 바꿨으며, 자녀들의 한글 이름 짓기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 금난새, 금내리, 금누리, 금노상 같은 이름을 남겼고, 이로 인해 1981년 제10회 외솔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