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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에이브러햄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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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2월 12일 켄터키 주 하딘 카운티의 한 통나무집에서 개척농 토머스 링컨과 낸시 행크스 링컨 부부의 1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816년 가족이 인디애나 주로 이주하고 2년 후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성년이 될 때까지 농사일을 돕거나 품삯을 받고 일했으며, 정규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학교에 다닌 게 학력의 전부이다. 1831년 가족이 일리노이 주로 이주할 때 가족을 따라 콜스 카운티로 가지 않고, 혼자 생거먼 카운티의 뉴세일럼으로 가서 독립했으며, 이후 일리노이 주는 링컨의 정치적 고향이 되었다.

1832년 블랙호크 전쟁이 일어나자 일리노이 민병대에 자원입대하여 중대장으로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뉴세일럼으로 돌아와 주의회 의원선거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하고, 같은 해에 잡화점을 인수하여 동업을 했는데 영업부진으로 빚만 지고 이듬해에 파산하였다. 이후 세일럼 우체국장과 측량기사로 일하며 생활하는 한편 이웃을 위해 증서나 계약서를 대필해주었다. 1834년 주의회 의원선거에 재도전해 당선되었고 독학으로 법률공부를 시작하였다. 1835년 잡화점의 동업자가 죽으면서 빚이 잔뜩 늘어났지지만, 여러 해에 걸쳐 이 빚을 다 갚았다.

1836년 주 하원의원에 재선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1837년 주도(州都) 스프링필드로 가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이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정치활동과 변호사 업무를 병행했다. 1842년 우여곡절 끝에 켄터키의 저명한 은행가의 딸 메리 토드와 결혼했다. 1846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858년 정치적 라이벌인 민주당의 더글러스 상원의원과 일명 '링컨-더글러스 논쟁'으로 알려진 7차례의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 이후 연방수호와 노예제 폐지에 대한 신념과 소신을 가진 공화당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급부상하였다. 해가 바뀌면서 점차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1860년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어 미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861년 남북전쟁 발발했고,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 최종선언 발표하고 11월 19일 게티즈버그 연설을 하였다. 1864년 예상 외로 길어진 전쟁 수행의 어려움과 수많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극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1865년 1월 31일 노예제 폐지를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13조의 비준을 각 주의회에 권고하는 결의안이 연방하원에서 가결되었다. 4월 9일에 남군 사령관 리 장군이 버지니아 주 애퍼매턱스 법원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같은 해 4월 14일 오후 10시경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중 암살자의 총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이튿날 오전 7시 22분 사망하였다. 장례를 치르고 5월 4일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 외곽에 위치한 오크리지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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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최상준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최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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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세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세대학교 영산신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국 기독교의 어제와 오늘』 (CLC, 2016) 및 역서 『복음주의의 환멸』 (CLC, 2018), 『링컨이 쓴 365 말씀 묵상』 (생명의말씀사, 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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