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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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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맹견(孟堅)이며 32년(광무제 8년) 부풍군(扶風郡) 안릉현(安陵縣)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반표(班彪)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기 후전』을 집필하던 중 사사로이 국사를 찬술한다는 중상모략으로 투옥되었다가, 동생 반초(班超)의 상소로 풀려나 후한 명제(明帝) 휘하에서 국사를 편찬하게 되었다.
전한의 왕조사를 편찬하라는 명에 따라 가업 『사기 후전』을 국사로 개편하여 본기 12편과 열전 70편을 완성했고, 이어서 지(志) 10편과 표(表) 8편을 더하여 『사기』의 기전체를 보완함으로써 이후 동아시아 정사의 모범이 된 체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조서와 상소문, 문학 작품 등 일차 사료를 대거 보전했고, 「지리지(地理志)」로 인문 지리적 기틀을 세웠으며, 「예문지(藝文志)」를 통해 도서 분류 체계를 마련했다. 「예문지」 춘추(春秋)류에 『태사공(太史公)』 130편이 수록됨으로써 사마천 개인의 저작물이었던 『사기』가 사서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반고는 부흥한 제국의 질서 수립을 위해 새로운 유학 이념을 가다듬은 유학자이자, 『문선(文選)』 첫머리에 실려 있는 『양도부(兩都賦)』 2수와 『답빈희(答賓戱)』 등을 남긴 한부사대가(漢賦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한서』 편찬 중에 낙양 황궁인 백호관에서 열린 토론 내용을 선제(宣帝)의 명으로 기록한 내용이 『백호통의(白虎通義)』로 남아 있다. 흉노 전쟁에 참전했다가 반역에 연좌되어 옥사할 무렵 지은 『영사(詠史)』는 현존하는 오언시 중 가장 이른 작품으로 꼽힌다. 92년, 『한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반고가 남긴 유업은 누이동생 반소(班昭)에 의해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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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범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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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 송宋의 역사가. 순양順陽출신의 강남江南사족士族명가名家에서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송宋이 건국된 뒤 벼슬길에 올라 상서외병랑尙書外兵郞, 신채태수新蔡太守,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원가9년(432년), 팽성왕 유의강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조문을 갔다가 만가를 듣고 흥을 돋우어 선성 태수로 강등되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이 쓴 『후한서』를 다듬어 『후한서』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그 후 다시 진급하여 좌위장군左衛將軍, 태자첨사太子詹事 등을 역임하면서 10여 년 동안 집필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원가 22년(445년)에 모반에 가담했다가 주살당했다. 범엽은 자신이 평생 심혈을 기울여 쓴 『후한서』에 대해 그 내용이 심오하고, 표현 양식이 다양하며, 사상이 뛰어난 작품으로, 그중 「서」와 「논찬」부분은 『한서』와 비교해도 전혀 부끄러울 게 없다고 자평했다. 그는 『후한서』외에도 「쌍학시서雙鶴詩序」, 「락유응조시樂游應詔詩」, 「화향방和香方」, 「잡향고방雜香膏方」, 「백관계차百官階次」등의 시문詩文을 남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쌍학시서」와 「락유응조시」외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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