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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장창은 만든이 코멘트 보이기/감추기

  역 : 장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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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났다.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서 강의하였다. 2015년 9월부터 제주대학교 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북악사학회 회장과 신라사학회 편집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고구려발해학회·신라사학회·한국고대학회·한국고대사탐구학회 등에서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삼국의 상호 관계와 영역사에 대한 연구논문 30여 편을 발표하였다. 지금도 삼국의 전쟁과 영역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고대 탐라국 연구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들과 공유할 때 그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개인 저서로는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2008)와 『고구려 남방 진출사』(2014)가 있고, 편역서로 『삼국사기』(2009)와 『동경잡기』(2009)를 출간하였다. 함께 지은 책은 『신라 속의 사랑, 사랑 속의 신라』(2006·2008), 『고대 안동의 역사와 문화』(2009), 『서울 2천년사⑥-삼국의 각축과 한강』(2015),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12-신라의 대외관계와 국제교류』(2016), 『쉽게 읽는 서울사-고대편』(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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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周冕
1629년(인조 7)에 수령(守令)을 지낸 아버지 민진량(閔晉亮)과 첨정(僉正)을 지낸 유대이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장오(章五)며, 호는 수월당(水月堂)이다.

1648년(인조 26)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해 진사(進士)가 되었고, 1653년(효종 4) 알성 문과(謁聖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이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종6품)과 육조(六曹) 중 공조(工曹)·예조(禮曹)·병조(兵曹)의 좌랑(佐郞: 정6품)을 거쳐서 춘추관기사(春秋館記事: 정6품)·
황해도도사(黃海道都事: 종5품)·
병조정랑(兵曹正郞: 정5품)·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정5품)·
장흥현감(長興縣監: 종6품)·
충청도도사(忠淸道都事: 종5품)·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정6품)·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정6품)·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정5품)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승진 가도를 이어 나갔다.

민주면은 1660년(현종 1) 인천부사(仁川府使: 종3품)로 임명된 후 그곳에 있는 자연도(紫燕島)의 국방 시설을 엄중히 감시했다. 1661년(현종 2)에는 경기 지방에 기근이 크게 들자 왕에게 상평청 곡식을 내어 고을 규모에 따라 차등 있게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성사하기도 했다. 같은 해 다시 중앙으로 올라와 사헌부장령(掌令: 정4품)을 맡아 몇 번의 체직(遞職)이 있기는 했으나 1665년(현종 6)까지 장령 소임을 유지했다.

이후 1665년 4월 길주목사(吉州牧使: 정3품)를 거쳐, 같은 해 5월 광주부윤(廣州府尹: 종2품)으로 부임하면서 지방관으로서 관직 경력을 보태어갔다. 1667∼1668년(현종 8∼9)에 서울로 잠시 돌아와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승정원승지(承旨: 정3품)를 역임하기도 했지만, 1669년(현종 10) 다시 경주부윤(慶州府尹: 종2품)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동경잡기』를 편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민주면은 경주부윤으로 재직하던 1670년 4월 근친(覲親)으로 휴가를 얻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부재한 가운데 같은 해 6월 18일 경주부에서 진상(眞祥)이란 여자가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의 책임 소재를 놓고 한 달여 동안의 논란 끝에 7월 17일 민주면의 파직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그해 민주면은 40여 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