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출연진 소개(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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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Anthony Qu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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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퀸
1915년 멕시코 북부 치와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안토니오 루돌포 옥사카 퀸(Antonio Rudolfo Oaxaca Quinn). 10세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 소년 가장으로 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서 들어간 배우학원에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18세에 연극 <깨끗한 침대>로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고, 1936년 <패롤>을 통해 영화에 대뷔했다. 40년대에는 주목받는 배우가 되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에 혐오를 느끼고 할리우드를 떠나 뉴욕의 연극무대로 향하기도 한다. 150여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 영화사에 한 획을 그으며, 20년 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다시 그 역할을 연기하기도 한 「그리스인 조르바(1964)」의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스 역할과 「비바 사파타!(1952)」에서 말론 브랜도의 단짝 역 그리고 전기 영화 「열정의 랩소디(1956)」의 화가 폴 고갱 역할이다.

그는 1930년대에 악당이나 악당 졸개 그리고 「장렬 제7 기병대(1941)」의 크레이지 호스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 역할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대에 이르면 유명한 스타급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명성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예컨대 「워락(1959)」에서 헨리 폰다가 연기한 정신병적인 총잡이를 헌신적으로 따르는 단짝으로서 주연급의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그는 해외로도 진출하여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1954)」에서 떠돌이 장사 역의 잠파노로 열연했고, 「아틸라(1954)」에서는 유럽을 누비며 약탈하는 역을 해냈으며 「노트르담의 꼽추(1956)」에서는 흉측한 콰지모도 역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그 후에는 영어권 영화에서 다양한 '외국인' 역할을 맡으며 세계를 석권했다. 특히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 보여준 베두인족 족장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퀸의 개인적 삶 역시 다사다난했다. 그는 세 번 결혼했는데, 첫 상대는 세실 B. 드밀 감독의 양딸인 배우 캐서린 드밀이었다. 그러나 이 부부의 첫 아이가 세 살 때 W. C. 필즈의 집 수영장에서 익사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는 여러 아내들에게서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았고 전체 자식 수는 열세 명이다. 1980년대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세계적으로 전시되었다. 또 그는 『원죄(1972)』와 『원 맨 탱고(1997)』라는 두 권의 회고록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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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Yul Bry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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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 브리너
러시아 태생의 율 브리너는 실제 삶도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음에도, 때로 자신이 스위스인과 일본인의 피가 반반 섞인 '타이디에 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연주자와 곡예사, 텔레비전 토크쇼 호스트와 텔레비전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1951년에 브로드웨이에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뮤지컬 「왕과 나」에 샴의 몽쿠트 왕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는 1956년에 만들어진 영화 버전에서도 같은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남은 생애 동안 계속해서 무대에서 그 역을 연기했다. 브리너의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그와 그의 누이를 데리고 만주로 갔고 남매는 거기서 YMCA 학교에 다녔다. 가족은 후에 파리로 갔는데 거기서 브리너는 학교를 그만두고 뮤지션이 되었다. 1941년에 그는 연기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같은 해 「십이야」의 파비안 역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대머리에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위압적인 존재감을 지닌 그는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은 배우였다. 그는 「십계(1956)」와 「솔로몬과 시바 여왕(1959)」에서 고대의 왕을 연기했고, 「아나스타샤(1956)」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1958)」에서 러시아인 역할을 맡았다. 「돌아와요, 내 사랑!(1960)」에서 오만한 지휘자로 재미난 모습을 보여 주었고 오랜 친구 장 콕토의 「오르페의 유언(1960)」에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황야의 7인(1960)」에서 7인 중 가장 대단한 인물인 크리스 애덤스 역으로 대중문화에서 불멸의 위치를 획득했고 두 편의 속편에도 계속 출연했다. 그 후로는 「대장 불리바(1962)」에서처럼 이국적인 야만인 역할이나, 「복수범죄(1972)」의 귀머거리 같은 지독한 악당 역이나 카우보이 역을 번갈아 가며 연기했다. 그러나 「태양의 왕(1963)」에서 마야인들 틈의 아파치라거나, SF 서부극 「이색지대(1973)」의 로봇처럼 서부극에서조차 그가 맡는 역할들은 기이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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