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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류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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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u Wei,劉偉
작곡가. 세계 유일의 발가락 피아니스트. 피나는 노력을 통해 손가락으로도 어려운 피아노를 발가락으로 연주해 중국 최대 오디션 프로그램 〈차이나 갓 탤런트(China's Got Talent)〉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감동실화의 주인공. 국내에는 2012년 11월 방송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을 통해 가슴 뭉클한 감동의 무대를 재현한 바 있다.
1987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열 살 때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 피복이 벗겨진 변압기 전선을 잘못 건드려 10만 볼트의 고압전류에 감전된다. 1만 분의 1도 안 되는 확률로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었으나 두 팔은 이미 새까맣게 타 바스러진 상태였다. 절단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퇴원 후 재활훈련을 하면서 악착같이 연습한 끝에 2개월 후 발가락으로 밥을 먹고 6개월 후에는 글씨를 쓸 수 있게 된다. 1997년에서 1999년까지 재활센터에서 수중 치료를 하는 2년 동안 마구잡이식으로 수영을 배워 결국 정식 선수 자격을 획득하고, 열네 살이 되던 2002년 전국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수상한다.
이후 수영선수로서 2008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고 이즈음 컴퓨터 키보드를 능숙하게 타이핑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을 2년 앞둔 2006년 열아홉 살 때 원인 모를 악성 홍반(紅斑)이 온몸에 퍼져 선수생활을 접고 만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평소 관심이 많던 음악으로 눈을 돌려 공부를 시작한다.
부모의 끈질긴 설득에도 대학 진학 대신 음악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을 위해 결국 어머니가 인근 음악학교를 찾아가 입학 상담을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댁의 아들이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면 나는 대통력이 될 수 있겠다”는 비아냥거림뿐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발가락 사이가 찢어지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 6개월 동안 하루 7시간씩 피아노에 매달려 이듬해인 스무 살 때 〈꿈속의 결혼식(Wedding in the Dream)〉 연주에 성공한다. 그 뒤 계속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면서 베이징 장애인무용단에 곡을 제공하는 등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
스물세 살이 되던 2010년, 한 친구의 집요한 권유와 설득으로 〈차이나 갓 탤런트〉 시즌 1에 참가하게 되는데, 그의 모습과 사연이 전국으로 방송되자 대륙이 들썩였고 급기야 최종 우승의 영예가 그에게 돌아간다. 2011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홀에서 열린 ‘중국·오스트리아 수교 40주년 경축 음악회’에 초청돼 명곡 〈양축(梁祝)〉을 연주하고 기립박수를 받는다. 같은 해 그가 직접 출연한 자신의 이야기가 드라마 〈나의 찬란한 인생(我的燦爛人生)〉 및 영화 〈가장 긴 포옹(最長的擁抱)〉으로 방영된다. 〈가장 긴 포옹〉은 이듬해인 2012년 제36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혁신상을 수상한다.
유명인사가 되고 후원사도 생겼지만 그는 스케줄 대부분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파하는 데 쓰고 있다. “반드시 세상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채 오늘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1987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열 살 때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 피복이 벗겨진 변압기 전선을 잘못 건드려 10만 볼트의 고압전류에 감전된다. 1만 분의 1도 안 되는 확률로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었으나 두 팔은 이미 새까맣게 타 바스러진 상태였다. 절단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퇴원 후 재활훈련을 하면서 악착같이 연습한 끝에 2개월 후 발가락으로 밥을 먹고 6개월 후에는 글씨를 쓸 수 있게 된다. 1997년에서 1999년까지 재활센터에서 수중 치료를 하는 2년 동안 마구잡이식으로 수영을 배워 결국 정식 선수 자격을 획득하고, 열네 살이 되던 2002년 전국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수상한다.
이후 수영선수로서 2008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고 이즈음 컴퓨터 키보드를 능숙하게 타이핑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을 2년 앞둔 2006년 열아홉 살 때 원인 모를 악성 홍반(紅斑)이 온몸에 퍼져 선수생활을 접고 만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평소 관심이 많던 음악으로 눈을 돌려 공부를 시작한다.
부모의 끈질긴 설득에도 대학 진학 대신 음악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을 위해 결국 어머니가 인근 음악학교를 찾아가 입학 상담을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댁의 아들이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면 나는 대통력이 될 수 있겠다”는 비아냥거림뿐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발가락 사이가 찢어지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 6개월 동안 하루 7시간씩 피아노에 매달려 이듬해인 스무 살 때 〈꿈속의 결혼식(Wedding in the Dream)〉 연주에 성공한다. 그 뒤 계속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면서 베이징 장애인무용단에 곡을 제공하는 등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
스물세 살이 되던 2010년, 한 친구의 집요한 권유와 설득으로 〈차이나 갓 탤런트〉 시즌 1에 참가하게 되는데, 그의 모습과 사연이 전국으로 방송되자 대륙이 들썩였고 급기야 최종 우승의 영예가 그에게 돌아간다. 2011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홀에서 열린 ‘중국·오스트리아 수교 40주년 경축 음악회’에 초청돼 명곡 〈양축(梁祝)〉을 연주하고 기립박수를 받는다. 같은 해 그가 직접 출연한 자신의 이야기가 드라마 〈나의 찬란한 인생(我的燦爛人生)〉 및 영화 〈가장 긴 포옹(最長的擁抱)〉으로 방영된다. 〈가장 긴 포옹〉은 이듬해인 2012년 제36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혁신상을 수상한다.
유명인사가 되고 후원사도 생겼지만 그는 스케줄 대부분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파하는 데 쓰고 있다. “반드시 세상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채 오늘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