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구성, 가벼운 미스터리와 따스한 가족애.
이민정(ladyinred@yes24.com)
올해 국내에 소개되어 새롭게 떠오른 일본 작가를 꼽으라면 미야베 미유키를 빼놓을 수가 없다. 미야베 미유키는 나오키 상 수장작인 『이유』를 비롯하여 일본 사회의 현실과 세태을 지적하는 추리소설을 써온 작가로 유명하다. 치밀한 구성과 사회에 동떨어져 있지 않은 글쓰기는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스텝파더스텝』은 미야베 미유키 다른 소설과 달리, 가볍고 경쾌한 느낌의 소설이다. 부모가 유기한 쌍둥이의 집에 벼락 맞아 떨어진 프로도둑이란 설정 자체가 주는 가벼움도 있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유머와 낙관적인 시선, 가족애가 더욱 작품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미야베 미유키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로 꼽히기도 하였다.
몇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소설은 만담을 하듯 한 문장을 나누어 말하는 쌍둥이와 의붓아버지는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서서히 쌍둥이에게 아버지로 길들어지는 프로도둑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쌍둥이와 프로도둑은 '어, 좀 이상하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을 통해 이면의 살인, 외도, 뺑소니, 대출 등 사회문제로 인한 가벼운 미스터리의 진실을 풀어나간다.
여기서 탐정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프로 도둑인 아버지. 그러나 이 프로도둑의 사건해결은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건 이면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관계자에게 돈을 받아 또는 훔쳐서 이를 재분배 하기 위한 것이다.
강도와 강력범죄가 난무하는 시대에 '도둑'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정겹기도 하지만, 이 프로 도둑은 화폐와 자본주의에 대한 나름의 개똥철학을 보이며, 사회를 비꼰다. 그에게 도둑이란 부를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사회에 재분배하는 '직업'인 것이며, 그를 통해 수수료(임금)를 받는다는 것.
이 소설을 더욱 매력적이게 하는 데는 낙관적인 시선의 가족애를 빼놓을 수 없다. '가족 해체 시대의 새로운 관계 맺기'라고 말하기는 좀 거창하지만, 도둑 아버지는 혈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쌍둥이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며 아버지의 역할에 길들여진다. 지문까지 채취해놓고 맹랑한 협박을 하는 쌍둥이들은 새로운 상대와 떠난 친부모가 아닌 도둑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부양과 사회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며,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간다.
쌍둥이와 작별인사 하기가 아쉬워, 아끼고 아껴 읽었던 책. 아직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하시라. 단언컨대, 어느덧 작가의 매력에 푹 빠져 또 다른 작품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