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불교방송을 통하여 방송된 불교강좌 ‘12연기와 위빠사나’의 녹취록이 ‘12연기’라는 책으로 선보이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간 12연기 법문은 매일 18분씩 모두 144회가 방송되었습니다. 이 방송내용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출판될 수 있어서 큰 영광이며 책과 함께 MP3 CD까지 제작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책은 12연기에 대한 전반적인 주석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연기는 부처님께서 고행 끝에, 고행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후 발견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통하여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진행된다는 사물의 이치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의심에서 해방되는 청정을 이루신 뒤에 위빠사나 수행을 하셔서 궁극의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연기를 이해하고 나서 수행을 해야 해탈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연기는 매우 심오합니다. 12가지 요소들이 기계적으로 원인과 결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조건들이 함께 작용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는 오직 한 인간의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연기는 우주적인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관점이며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방송에서 사용한 12연기 교재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미얀마 모곡 사야도의 12연기 법문집인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행복한 숲)’를 주 교재로 삼았습니다. 모곡 사야도께서는 논장의 대가로서, 특히 12연기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하셔서 후학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모곡 사야도의 제자들이 전국 곳곳에 모곡센터를 설립하고 12연기의 가르침을 전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곡 사야도의 가르침이 미얀마가 아닌 외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는 사실 또한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곡 사야도께서는 난해한 12연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12연기 도표를 만들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12연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여 연기의 심오한 뜻을 잘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곡 사야도의 12연기 법문은 연기를 총체적 관점에서 분석하신 내용입니다.
다음으로 마하시 사야도의 ‘12연기’를 부 교재로 삼았습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는 관계를 소상히 밝히셨으며, 마찬가지로 행을 원인으로 식이 일어날 때의 관계를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12가지 요소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완벽하게 분석하셨습니다. 이런 분석은 삼장을 모두 통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곡 사야도의 12연기 법문과 마하시 사야도께서 분석하신 12가지 요소의 원인과 결과, 이외에도 아비담마를 참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모곡 사야도의 12연기와 마하시 사야도의 12연기를 결합하여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 12연기 주석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의 가장 대표적인 두 분 스승님의 12연기 가르침을 하나로 엮을 수 있어서 큰 행운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방대한 책이 되었습니다.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부족한 저의 설명을 보태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위빠사나 수행자의 입장에서 12연기를 새롭게 조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분 스승의 말씀에 제 견해가 포함되어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잘못이 있다면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상좌불교 한국명상원 원장 묘원 --- 책을 펴내며 중에서
이러한 12연기를 공부하면, 첫째 수행자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일반적으로 개아, 남자, 여자로 불리는 다양한 육체적 정신적 현상들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떤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의해서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셋째, 태어남과 죽음은 조건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넷째, 이 조건들이 제거되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섯째, 고제와 집제를 일반적인 순서로, 그리고 집제와 멸제를 역으로 하여 그 철학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 제1회 법문에서
연기법을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은 오온 즉, 정신과 물질적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됩니다. 단지 정신과 물질일 뿐이지, 이것이 나의 몸이고, 나의 소유라고 알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연기를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과보로, 자신의 원인과 결과로 지속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제3회 법문에서
그래서 수행은 좋고 싫고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있는 것이면 모두 우리가 알아차려야 될 대상입니다. 이렇게 찾아온 손님을 내쳐서는 안 됩니다. 찾아온 손님을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찾아온 손님에게 무엇을 바라서도 안 됩니다. 그냥 단지 손님으로 맞이하면 됩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입니다. 이때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단지 주인으로서 손님을 지켜보는 그런 과정을 수행이라고 말합니다.
--제22회 법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