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현대화의 작업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외곽의 디자인에 관한 의미만은 아닐 터, 시간의 공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의 문제’ 속에서 우리는 ‘단절’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단절의 경계에 걸려 있는 마지막을 추억한다. 유난히 유행에 민감한 한국, 새것으로 출시가 되자마자 헌것으로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세태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은….
--- p.32
백록담의 봄을 배경으로 찍으려 했으면서도 백록담을 가려 버린 2학년 5반 모두가 웃고 있다. 지금 저들은 모두 웃으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저 몇 페이지의 추억으로 남아 버린 웃음들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뒤돌아
보고 있지는 않을까? 백록담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우리 모두 웃고 있었다.
--- p.47
영원히 18살에서 멈춰서 있는 녀석의 얼굴,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엔 우리들만 너무 늙어 있겠지? 후까시 가득한 똥폼의 매무새로 기대어 있었던 학교 담벼락에 두고 온 많은 기억들을, 어른의 시간으로 떠나온 뒤로는 잘 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그것들을 찾으러 가는 길, 이런저런 기획을 거쳐, 다시 녀석과 함께 했던 날들에 닿아 가고 있다.
--- p.81
내게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기억을, 풍경들이 대신 기억하는 경우들이 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실려 있기도, 그 바람에 부대껴 우는 나뭇잎이 털어 내기도, 빗물과 함께 창가로 찾아들기도, 저 담장 뒤에 혹은 저 골목 뒤에 숨겨져 있기도, 어두운 거리의 가로등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기도….
--- p.101
작고 허름한 샷시문 사이로 피어나던 청춘의 이야기들. 늘 똑같은 안주에, 똑같은 사람들과의 기쁨, 슬픔, 반목, 화해의 기억들. 가스불 위에서 끓어 넘치던 닭도리탕 냄새와 함께, 식당 구석구석으로 찌들던 시간의 기록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던 공간마저도,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사라진다.
--- p.108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멋들어진 수사 이상의 가치로 곱씹어 보는 어떤 순간, 정말 내일 끝날 수도 있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건들마다.
--- p.117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언덕 밑 정동에, 광화문 네거리에 아직 남아 있다. 사랑하는 만큼이나 아파해야 했고, 그 아픔만큼이나 옹졸했던 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대만큼이나 사랑하는 세상을 발견한 나의 이야기.
--- p.197
늘 가까이 있었던 것을 찾지 못해 다른 곳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파랑새를 곁에 두고 그것이 파랑새인지를 몰라 엉뚱한 곳을 헤매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이미 내 곁에 다가와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리라. 내게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깨닫기 전까지는 ‘현재’가 되지 않는 것들. 그 모두가 아직 미지의 미래일 뿐이다.
--- p.201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가 기억하는 신해철의 표상은 언제나 이 시점이 아닐까? 스무 살 시절의 앳된 얼굴로 신화가 된 그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청춘들이여, 신화가 되어라! 그 마지막 페이지에는,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알고 있는 많은 청춘들의 이야기도 함께 적혀 있을 것이다. 먼 훗날에 돌아보니, 파릇파릇한 신해철이 목 놓아 부르던 「그대에게」는, 가장 아름다웠던 날들의 ‘우리에게’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 p.213
그 아름다움이 아쉬워도 그 자리에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닌 이상은 가져갈 수도 없는….
--- p.226
어린 시절에 보았던 장국영이 왜 그리도 아련한 기억인가 하면,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런 홍콩 영화 같은 사랑을 하는 건 줄 알았거든. 어린 시절의 상상 속에선, 사랑은 언제나 행복하고 완벽했는데….
--- p.229
누구나 영화와 소설 같은 사랑과 삶을 꿈꾼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영화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하지도 살아가지도 못한다. 우리의 이 감동 없는 현실은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 p.256
그렇듯 쉽게 가고자 했던 길이 되레 어렵게 가는 길이 될 때가 있다. 어린 시절에 내가 많이 저질러 봐서 아는데, 스스로를 미치게 만드는 원인이 자신의 쓸데없는 ‘기지’일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효율성의 기치도 가치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진득하니 행하는 사람들은, 언제고 그 속도에 대한 맹신들을 추월한다.
--- p.242
지금의 나이에는 뭘 또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는데? 먼저 그 시간을 지나온 이들은, 또 다른 시간 속을 헤매고 있을 뿐이다. 그저 조금 더 앞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꽤나 어른인 줄 알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도, 지금에서 돌아보면 얼마나 어린 날들이었던가.
--- p.258
영화처럼 살고 싶었다. 어쩌면 이미 영화처럼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원하는 장르와 내가 원하는 배역이 아니었을 뿐. 누구나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 그러나 누구나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살아가는 건 아니다. 영화 밖으로 잘려 나간, 감독과 배우만이 알고 있는 숱한 NG 컷들로 완성된 영화라는 사실까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까지가 영화의 일부일 텐데….
--- p.265
우리의 영광의 시절은 언제였을까? 이미 지나간 것일까?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일까? 한 번도 영광의 시절을
살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면, 차라리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고 믿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영광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쪽에 도박을 걸어 볼, 열망의 불씨가 조그맣게라도 살아 있다면, 지금은 그렇게 가만히 늙어 갈 때가 아니다.
--- p.283
그렇게 틀린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때론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반복의 와중에 제대로 찾아가는 경우가 있고…. 그렇듯 어제의 파편들이 모여 이룬 오늘, 오늘의 오류에서 찾아내는 내일. 부서진 삶의 조각들을 갈아 다시 서로의 이를 맞추며 한 장의 퍼즐을 완성하듯 나아가는 삶.
--- p.289
그렇듯 무엇을 좋아한다는 건, 약간의 광기도 섞인 증상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증상도 그렇잖아. 미칠 듯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약간은 미쳐 있는 거야. 그러나 또한 미쳐야 미친다고 했던가.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하지 못할 일들.
--- p.292
뭔가를 좋아한다는 데에는, 또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는 ‘그냥’이라는 이유밖에 없지 않나? 좋아할 만한 인과가 명확해서, 논리적으로 명증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 것 보면 ‘그냥’이란 단어만큼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수식어도 없다.
--- 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