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1879.8.29 ~ 1944.6.29)은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만해(萬海·卍海)이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입산하여 불교의 기초 지식을 배우면서 선(禪)을 닦았으며 1905년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은사로 하여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승려가 된 후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불교의 대중화 작업에 힘을 쏟았다. 1910년 국권을 잃자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다니면서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심어주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1918년 월간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고, 1919년 3·1독립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20년 만세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3년 동안 복역했다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사랑의 노래로 표현하였다.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1927년 신간회(新幹會)를 결성하는 주도적 소임을 맡았으며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의 자리를 겸직하였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이듬해에는 《후회》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여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城北洞)의 심우장(尋牛莊)에서에서 중풍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박명(薄命)》,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