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를 처음 배우는 초심자의 경우 맨 처음 접근하게 되는 자료는 대부분 단편적인 키워드가 된다. 예를 들어 라이더 웨이트 덱의 메이저 아르카나 중 첫번째 카드인 I. THE MAGICIAN(이하 마법사)의 뜻에 대해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 유능, 다재다능, 의지, 지능, 지성 등의 키워드가 쓰여 있으며, 마이너 아르카나의 컵 수트에 속한 King of Cups 카드에는 냉정, 침착, 감정 컨트롤, 성공한 상업적 재능, 예술성 등의 뜻이 있다고들 한다.
타로카드 덱에 동봉된 매뉴얼이나 타로 관련 서적들 중 많은 수가 이런 키워드 위주로 카드의 뜻을 전하고 있다. 때문에 초심자들이 이를 그대로 적용해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키워드라는 것이 초심자를 해석의 문턱에서 헤매게 하는 가장 큰 함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로카드 낱장의 의미는 단어 몇 가지로 온전히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키워드는 수많은 뉘앙스를 품고 있는 카드 한 장의 의미를 요약한 것이다. 하나의 글을 읽고 나서 그 주제를 단어 하나로 압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원문을 읽지 않은 사람이 주제어 하나를 보고 글 전체를 그대로 재구성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키워드만 보고 카드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행위가 마치 이와 같다. 소설을 전부 읽은 사람이 한 단어로 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과, 소설 원문을 모른 채 단어 하나를 듣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간혹 낱장의 카드에 대해 계속해서 더 많은 키워드를 수집하는 방법으로 카드의 이해도를 높이려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키워드가 이름과 직책 뿐이라면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그 사람을 표현하는 키워드 수십개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람에게는 맥락을 연결짓는 추리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추리일 뿐이다. 심지어 출판된 서적이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키워드들은 대부분 덱을 만든 작가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그 덱을 사용하는 타인들이 자기의 의견을 써둔 것일 뿐이다. 이런 키워드를 모아 카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겠다는 것은 어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보지 않고 리뷰만 잔뜩 보겠다는 것과 같다.
영화의 감상이란 등장인물과 배경과 사건이 서로 얽히며 이야기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에 심상을 불러일으키며, 독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치관이라는 필터를 거쳐 생겨나는 것이다. 키워드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이와 같다. 누군가가 어떤 카드에 대해 “내 경험에 의하면 이 카드는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잘 맞더라.”하고 키워드를 제시했다면, 그 배경에는 카드의 의미를 이해한 다음 자신만의 필터를 거친 과정이 있는 법이다. 가공이 끝난 최종 결과인 키워드만을 듣고 이런 배경을 전부 알 수는 없다. 타인의 키워드를 무조건 많이 수집한다고 해서 카드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왜곡과 오해가 뒤따르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오해한 의미로도 적당히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굳이 긴 시간동안 집중하여 영화를 본 후 직접 생각하며 감상을 정리하기 귀찮은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이 책을 보는 대부분의 독자는 거기에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이런 길고 복잡한 잔소리가 가득한 책을 읽기보다 연애운, 금전운, 사업운 등의 카테고리별로 키워드를 잔뜩 나열해둔 책을 읽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pp.150-153 「키워드에서 벗어나라」중에서
카드 한 장의 추상적인 의미를 자유자재로 적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어떻게 구체화된 모습이 가장 현실에 맞는 해석인지를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질문과 사전정보를 고려하면 조금은 범위를 좁힐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런 벽을 느낄 때가 오히려 카드의 의미를 잘 모를 때 보다도 더 막막하다. 이 단계에 와서 필요한 것이 바로 연계 해석이다.
웬만큼 잘 본다는 타로리더들에게 “이 배열에서 어떻게 그런 해석을 하셨어요?”라고 물어보기만 하면 “카드 간의 연계 해석을 통해서 도출된 결과입니다.”라고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곤 한다. 따지고 보면 그저 여러 장의 카드를 연결해서 본다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키워드를 파악하고 질문에 대입하기에도 벅찬 초심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묘기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딱히 특별한 능력이나 비전 같은 것이 아니다. 단지 카드 사이의 맥락을 읽어내는 작업일 뿐이다.
해석에 능숙한 타로리더라면 표현은 달라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연계 해석을 사용하고 있다. 단지 이런 사고과정을 명확하게 언어화해서 설명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혹은 자기도 모르게 사용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간혹 몇몇 타로리더들이 오히려 “원카드로 보는 것이 제일 어렵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카드 간의 맥락이 발생하려면 여러 장의 카드가 필요하다.배열에 등장한 카드들은 모두 서로의 단서가 된다. 카드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맥락을 통해 해석을 좁혀나가고 빈 곳을 메꾸며 행간을 읽어내는 것이 바로 연계 해석이다.
물론 이는 앞에서 말한 기본적인 준비 학습이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축구로 예를 들자면, 공을 다루기에도 벅찬 초심자가 경기장을 넓게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드리블 정도는 의식하지 않고 할 수 있어야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경기의 흐름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시야가 트일 수 있다. 연계 해석도 이와 같다. 78장의 카드의 의미 정도는 무난하게 드리블을 할 수 있어야 시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배열을 보자. 배열의 가운데에 등장한 XXI. THE WORLD 카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완성이자 영원을 뜻한다. 변하지 않을 성취나 결과를 원한다면 좋게 해석될 수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아 변화를 꾀하려는 경우에는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이 배열에서는 어떤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현재 상황을 뜻하는 자리에 XXI. THE WORLD가 등장하고 미래를 뜻하는 자리에 8 of Cups가 나왔다. 8 of Cups는 기존에 성취했던 것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는 뜻이 있으며, 라이더 웨이트 기준으로 다소 회한의 뉘앙스가 있는 카드이다. 이런 카드가 미래에 드러났다는 것은 현재 상태에 실망하여 마음을 내려놓고 떠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의 XXI. THE WORLD는 질문자가 바라는 긍정적인 상태의 완성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없어서 좌절을 주는 상황이나 조건으로 드러났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7 of Swords를 보면 더 확실해지는데, 이 카드는 무언가 이익을 얻기 위해 시도하는 능동적인 카드이기 때문이다. 이런 카드 뒤에 온 결과가 XXI. THE WORLD라면 결국 그 시도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는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바로 기초적인 연계 해석이다. 좋은 구조의 스프레드 위에서 벌어지는 연계 해석은 카드 한 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보여주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카드를 펼 때마다 다르게 펼쳐지기 때문에 세상에 똑같은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7장의 카드를 뽑는 스프레드를 사용한다면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3,315,186,684,800가지가 된다. 만약 더 많은 장수의 스프레드를 사용한다면 셀 수도 없는 경우의 수가 나타날 것이다. 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일괄적으로 연산하는 규칙 같은 것은 없다. 모든 타로 배열 매순간의 역동성에 따라 재창조되는 하나뿐인 이야기가 되는 이유다.
---pp.186-189 「고수들의 해석 비급 - 연계 해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