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대통령 영부인이 되었던 푸랜시스카(1900~1992, 한국호적 명: 푸랜시스카또나, 여권명: Francesca Rhee)가 촬영되었거나 관련된 사진들을 발굴, 정리, 고증, 분석하여 그녀가 경험했던 시공간과 인간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한국사인 동시에 국제관계사이다.
1900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비엔나 인근에서 출생, 193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승만과 만나 1934년 뉴욕 에서 결혼 후 하와이와 워싱턴 D.C.에서 대한독립운동에 동참했던 푸랜시스카가 1946년 해방된 서울로 이주하는 과정,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독립촉성운동에 동참하여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영부인이 되는 과정,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국가 재 건 과정에 동참하다가 6.25전쟁을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6.25전쟁 중 모친의 별세소식을 듣고도 오스트리아에 가지 못 하고, 부산 부민동의 임시 대통령 관저에 기거하며 전난 극복, 전방시찰, 전재민 구호, 대외교섭, 그리고 대통령 보좌 및 경호 등을 위해 노력하다가 1952년 8월 제2대 대통령 영부인이 되는 과정 등이 사진들을 통해 드러난다.
사진정치학적으로 푸랜시스카 사진들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관계를 잘 드러내준다. 법 으로 규정된 대통령 영부인의 권리나 의무는 없었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작지 않았고, 국민적 기대와 애증도 컸다. 대통 령 중심제 국가에서 사진에서 보여지는 대통령과의 지리적 거리는 권력의 크기를 표현하곤 한다. 아직 사진 변조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촬영된 사진들은 “있었던 그대로”의 많은 진실들을 전달해준다. 이 사진들은 기존의 역사적 서술을 뒷받침 해주기도 하지만 기존의 선입견과 다른 사실들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푸랜시스카는 대한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지만 합당한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 스스로 그 정신을 칭찬하고 하야했던 4.19이후 푸랜시스카는 잊혀져 왔다. 6.25전쟁 주범들 중 한 명이었던 박헌영과 함께 활동했 던 전 부인 주세죽의 이름은 대한민국 공훈록에 존재하지만 푸랜시스카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 것, 대한민국 국립여성사 전시관 인물연구 DB에도 조선시대 박어우동이나 황진이는 있어도 푸랜시스카는 없는 것이 푸랜시스카에 대한 망각의 현 실을 반증한다.
푸랜시스카는 대한독립운동에 동참했고, 대한민국 독립 이후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국가 건설과 호국을 위해서도 헌 신했다. 그녀가 오스트리아와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며 취득한 영어 통역 자격증, 유럽식 매너, 아버지의 사업을 돕기 위 해 익혔던 회계 능력 등은 모두 이를 위해 활용되었다. 국제적 지원과 원조에 의존하던 시절 그녀는 국제통으로서의 역할 을 톡톡히 담당했다. 초창기 대한민국 외교의 역사(history)에 미처 기록되지 못한 여성들의 숨은 역사(her story)가
속히 기록되어야 하겠지만, 그 앞자리에 푸랜시스카의 자리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이승만혐오자들은 물론 이승만옹호자들 사이에서도 이주민 여성이었던 푸랜시스카에 대해서는 왜곡과 망각의 경향이 강했다. 간혹 푸랜시스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에도 그녀를 영웅 이승만에 부속된 존재로 취급하곤 했다. 푸 랜시스카의 삶은 그녀가 사랑했던 이승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떠나 독립운동가의 아 내가 되기로 작정했던 푸랜시스카라는 독립된 개인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 개인으로서 친척 한 명 없던 한국땅에 도착했을 때, 윤보선, 이기붕 등과 함께 그녀를 맞이했던 박마리아에 대한 밀착과 의존에 따른 책임을 그녀는 걸머져야 했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연령, 인종, 빈부, 그리고 국적의 장벽을 넘어 이 승만과 결혼했던 것, 처음 한인들에게 받았던 냉대에도 불구하고 하와이 한인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했던 것, 이승 만의 Japan Inside Out 발간을 돕고, 한미협회 등을 통해 대한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것, 모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에서 분리되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좌우합작 정부가 결국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는 과정을 반면교사로 삼고 독립촉 성운동에 동참했던 것, 6.25전쟁 발발 직후 대통령의 피신을 주도하고, 때로는 몸을 던져 남편 이승만을 여러 차례의 암 살시도들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것, 결혼 이후 한번도 만날 수 없었던 모친의 별세 소식을 듣고도 6.25전쟁 중의 대한 민국을 떠나지 않았던 것 또한 모두 그녀의 독립적 선택들이었다. 이 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푸랜시스카의 생애를 통해 세계사 속의 한국사, 그리고 한국사 속의 세계사에 접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모든 인간은 그가 태어난 시간과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미국을 거쳐 한반도로 왔던 푸랜시스카라는 인물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고착된 고전적 지정학 보다 시공간의 초 월을 지향하는 비판지정학이 필요하다. 비판지정학은 각자의 처지에 고착되기 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다른 인물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맹목적 마녀만들기나 선녀만들기에서 벗어나서 이부란(李富蘭)이라고도 불렸던 한 인간과의 진솔한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푸랜시스카는 달리는 호랑이의 등 위에서 끝까지 버틴 여인이었다. 그 호랑이는 이승만 또는 대한독립운동이기도 했 지만, 그녀의 모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까지도 해체시켰던 독립운동의 세계사적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