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운 화상(1839-1959)은 근현대 중국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고승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럽의 인도차이나반도 침공, 일제의 침략, 대륙의 공산화 등 중국의 격변기 속에서도 계율의 정립, 사찰 복원 등을 위해 헌신하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9세 때 고산(鼓山) 용천사(湧泉寺)에서 출가, 토굴에서 고행을 자처했으며 43세에는 중국 보타산에서 오대산까지 2년여에 걸친 삼보일배 수행으로 민중으로부터 부처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다. 그 후 은둔 생활을 하다가 남방불교를 체험하기 위해 미얀마, 티베트, 스리랑카를 오직 도보로 순례했으며 56세 때 화두를 타파, 오도를 성취했다. 이후 사찰복원에 힘써 조계산의 남화사, 운문산의 대각선사, 운거산의 진여사 등을 중창하였다. 1951년 세수 112세가 되던 해, 중국 공산주의자들에게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고도 살아나 오늘날의 중국불교협회 창립에도 힘을 실었다. 운거산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58년 세수 120세 법랍 101세로 입적했다. 그의 계율사상과 참선의 가르침 그리고 수행담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종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56년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부산 범어사에서 하동산 스님을 계사로 각각 비구계를 수지했다. 법주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1972년 동국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경주 분황사, 조계사, 불국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제 4대, 5대, 6대, 10대, 12대 중앙종회 의원, 1984년 조계종 8대 중앙종회 의장과 1999년 조계종 호계원장을 맡은 바 있다. 현재 금오사상연구소 소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조계종 봉국사 주지로 있으며, 저서로는 『월서선사원경록 月棲禪師圓鏡錄』, 『거울 속 성불의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