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거기 가본 적 있어?”
“우리 나중에 여기 다시 와보자. 눈 녹고 할미꽃 필 무렵에…….”
……
“내 사랑이 커지는 게 느껴지니?”
“아니야 나를 믿지 마.”
연희는 그 아침의 행위가 지난 이틀 동안의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지난 이틀 동안의 행동이 긴장, 공포, 불안, 발작 같은 감정들과 관련이 있었다면 그 아침의 행위는 안정감, 친밀감, 애착, 배려 같은 감정들과 관계있었다. 오래도록 그와 성을 나누어온 듯 자연스럽고 익숙한 동작, 그의 몸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듯 편안하고 스스럼없는 태도…….
그것은 나흘째 되던 날부터 연희가 계속 느껴온 욕망이었다. 이글거리며 타는 장작불을 보고 있으면 그 아궁이 불길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고,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아래 묻히고 싶었다. 한 번씩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허공에 흩뿌리면 자신의 육체도 그렇게 분해되어 허공으로 날아올랐으면 싶었다. 절망도, 무력감도, 허무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고 간질거리는 느낌, 가슴을 가로질러 거미줄 같은 금이 가는 파괴의 조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연희는 그럴 때마다 고개 돌려 세중을 찾았고 세중은 연희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그럴 때의 성은 손쉽게 자학과 가학의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치닫고 했다.
세중과 입을 맞추다가 문득 그를 머리부터 삼키고 싶다는 느낌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때 연희는 암컷 사마귀가 왜 교미 중에 수컷을 머리부터 삼키는지, 어떤 기생충이 왜 숙주의 몸에 들어가는지, 전갈이 짝짓기 할 때 왜 그토록 상처투성이가 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몸이 산산이 부서져 터져나가려 할 때 연희는 실제로 울음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애원했다.
순순히 연희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줄 때 세중의 낯빛에도 틀림없이 자멸과 파괴의 열망이 가득했다. 그 상황에서도 연희는 세중을 배려해 자신의 충동을 절반쯤만 표현했을 것이다. 세중은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뺐고 그가 진짜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며 연희는 또 호들갑스럽게 사과했다. 그렇지만 가슴에 깃들어 퍼덕이는 충동은 너무나 생생하여 금방이라도 그의 손가락을 뭉텅 베어버릴 정도였다.
연희는 그 아침의 행위가 지난 이틀 동안의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지난 이틀 동안의 행동이 긴장, 공포, 불안, 발작 같은 감정들과 관련이 있었다면 그 아침의 행위는 안정감, 친밀감, 애착, 배려 같은 감정들과 관계있었다. …… 오래도록 그와 성을 나누어온 듯 자연스럽고 익숙한 동작, 그의 몸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듯 편안하고 스스럼없는 태도…….
저 한심하고 바보퉁이 같은 인간 같으니라구……. 산속의 모든 생물들은 서로에게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이고, 생물들이 내는 소리는 한가한 노래가 아니라 간절한 종족 보존의 욕망이고, 생물들이 산속을 오가는 것은 유람이 아니라 먹을거리를 얻기 위한 노동이고, 먹이는 주워 먹는 게 아니라 무서운 투쟁 끝에 얻는 거라는 점을 말해줘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
사실 박새는 인간들이 자신과 기러기를 한데 묶어 암수의 금술이 좋고 죽을 때까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추앙할 때부터 그 사실이 우습고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은 태도를 바꾸어 자신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박새와 기러기 새끼들의 유전자를 검사해서 절반 이상이 아버지와 다른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했다. …… 그런 때 박새는 인간들이 안쓰러웠다. 어떤 생물의 본성에도 맞지 않는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를 만들어놓고 야생의 생물들에게 그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는 일종의 보상심리나 히스테리처럼 보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