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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들께 드리는 글
시작하며 작가노트 1. 운전면허 시험 보던 날 2. 벽화 앞의 소년 3. 광장 4. 중국으로 가는 길 5. 미사일 6. 집회 7. 사격 연습장 8. 식당 9. 발표 10. 열병식 11. 기차에서 있었던 일 12. 점원 13. 밀레니얼 세대 14. 평양의 콘서트 15. 아기 16. 향기로운 산에서 감사의 말 |
저린지 밀러
관심작가 알림신청Lindsey Miller
역송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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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행을 결정한지 4개월 후, 나는 덥고 눅눅한 여름 공기를 맞으며 북한에 첫발을 내디뎠다. 작고 불안정한 비행기 탑승 계단 꼭대기에서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소나무 냄새와 비행기 기름 냄새, 그리고 조종실에서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 냄새가 났다. 황량한 콘크리트 활주로를 응시하면서, 수화물 취급소 직원들에게 이유 모를 고함을 지르는 군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늘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앞으로 2년 동안 내 안에서 완전히 무너지리라는 것을.
--- p.14 북한은 그곳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이상한 마법을 건다. 나는 그것을 ‘평양 효과’라고 부른다. 특수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 지내다 보면 많은 외국인들이 행동의 변화를 보이는데, 그 변화는 특히 정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두드러졌다. 평상시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현지 소식이나 정보에 대해서만은 이상하리만치 서로 공개하기를 꺼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알게 된 정보를 마치 통화처럼 거래하거나,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며 특혜를 누리는 기분을 만끽했다. --- p.39 영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마치 허공을 떠도는 기분이었다. 고향과 친구를 잃어버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상적인 사회에 재적응하면서 느끼는 혼란 속에서 그 사진들은 내가 너무나 필요로 했던, 내가 두고 온 세계를 향한 창문이 되어 주었다. 사진을 보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이 보였다. 배경에 있는 사람들이나 건물 옥상의 모습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통해 당시에는 온전히 누리지 못한 순간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 p.57 |
한국 독자들께 드리는 글
『North Korea: Like Nowhere Else』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들 가운데 첫 작업이 된 언어가 한국어라는 사실이 저를 무척 흥분시킵니다. 이 한국어판이 한국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아 제 인생을 바꿔 놓은 2년간의 경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되길 소망합니다. 누군가의 인생에 심오한 충격을 남기는 경험은 그리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북한에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곳에서 마주친 모든 것(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야말로 저의 온 마음을 강타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북한에서의 제 삶이 어떠했는지 모든 감각을 되살리길 바랐습니다. 묘향산의 소나무 향, 연기 가득한 평양 맥줏집의 소란함과 달그락거리는 소리, 동틀녘 원산 해변의 거울 같은 잔잔함. 아마도 이런 것들은 북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제가 매일매일 마주쳤던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함께 경험하길 바랍니다. 이릍테면 진실과 거짓을 인식하려 애쓰는 마음과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소중한 순간에 찾아오는 따듯한 소박함 사이에서 절망적으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혼돈을 말이죠. 또한 저는 설명이 덧붙여진 이 책 속의 사진들을 당신이 즐길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사진은 과거 경험의 짧은 순간을 포착할 뿐이지만 그 속의 얼굴과 장소들, 그리고 시간 속에 멈춰진 사물들을 깊게 들여다 봄으로써 우리가 그 순간 속에 영원히 머물도록 해줍니다. 여러 면에서 단순히 기억하는 것보다 이 사진들을 통해 저는 북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반추하게 됩니다. 북한은 결코 제가 떨쳐낼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은 영원히 저에게 남을 겁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 생각할 때에도 계속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이 한국어판은 저에게 큰 의미입니다. 당신과 이 경험을 나누길 간절히 기다립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을 향한 기묘한 노스탤지아 이 책 『비슷한 곳조차 없는』의 저자 린지 밀러는 자신이 결코 다시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아마도 그녀의 예감은 정확할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주민들을 핍박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를 숨지기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그런 “반체제” 인사를 다시 입국시켜 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린지 밀러는 여전히 북한이 그립다고 말한다. “북한을 떠나면서 나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북한 같은 곳에 이렇게 애착을 느끼는 이유를 스스로 이해할 수 없어 죄책감을 느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슬픈 생각에 빠져있을 때면, 북한 주민과 맺었던 모든 인간관계가 가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린지 밀러는 자신이 북한에서 촬영했던 12,000여 장의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마치 허공을 떠도는 기분이었다. 고향과 친구를 잃어버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상적인 사회에 재적응하면서 느끼는 혼란 속에서 그 사진들은 내가 너무나 필요로 했던, 내가 두고 온 세계를 향한 창문이 되어 주었다. 사진을 보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이 보였다. 배경에 있는 사람들이나 건물 옥상의 모습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통해 당시에는 온전히 누리지 못한 순간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답이 사진 안에 모두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더 벌어 주었다. 나는 그 잃어버린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린지 밀러는 사진을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한 감각과 감정들을 전달하려 한다. 눈길을 끄는 건물이나 동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광경 등이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비슷한 곳조차 없는』이 되었다. 아주 기본적인 사실조차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곳, 직접 보고 느낀 것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고, 무엇이 현실이고 상상인지 언제나 불명확한 북한에서 느꼈고, 또 각인된 감정은 그야말로 “비슷한 곳조차 없는”이라는 탄성이 흘러나오게 한다. 더불어 현지 생활에 젖어들어 엉뚱한 경쟁심에 빠져드는 평양 거주 외교관들의 이야기, 2018년 남북 및 북미 화해 당시 평양의 실제 분위기 등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은밀한 이야기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북한에서 사는 건 어떤 느낌인지 실제로 경험하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