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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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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58g | 134*186*21mm
ISBN13 9791155813935
ISBN10 115581393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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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점차 그런 확신을 금지당하고, 나도 곧 뛰어들 예정이었던 비밀과 모험을 알레고리로 읽으라는 권유를 받는다. 한때 그토록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베일 너머에서 빛나던 이야기는 죽은 요정처럼 불빛이 꺼져 책갈피 속에 갇힌다. 판타지에 빠져드는 건 현실 도피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불만스러워 한때는 환상의 실용적 가치를 옹호해보려 애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이런 기분이 든다. 내가 도망가겠다는데 어쩔 거야?
--- p.8

어린 시절 나를 ‘세 걸음 위’로 날아오르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들은 내 기억처럼 보편적이지 않았다. 오늘날 쉽사리 떠올리는 환상 세계의 이미지는 많은 부분 영화에서 왔을 텐데, 그런 영화의 원전이었을 고전 동화들 또한 익숙한 이미지의 재탕이려니 섣불리 예단했다가는 흠칫 놀라게 된다. 원액답게 개성이 넘치고, 각 시대의 특수한 무늬가 새겨지고, 재치 있는 디테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다. 뭉근한 단맛이 아닌 칼칼하고 또렷한 맛이다.
--- p.9

피터와 웬디의 섬은 독립된 환상계인 척 등장했다가 금세 현실과의 분리점을 멋대로 깨뜨리며 독자를 슬쩍 놀리고 갈팡질팡 헷갈리게 한다. 달콤하기만 한 게 아니라 씁쓸하기도 하고 때로는 냉담하기도 하다. 천연덕스럽게 건방을 떨고 변덕을 부리지만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냥 믿어주고 싶어지는 피터처럼, 어딘가 혼란스러운 이 이야기 속 세계는 이름부터가 네버랜드다. 작가는 이곳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 p.10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난 피터와 웬디는 오늘날의 아이들과 꽤 비슷하지만 또 제법 다르다. 사랑스럽고 멋진가 하면 당혹스럽고 뜻밖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답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읽히는 지점들도 있지만 동시에 빈티지 찻잔 같은 매력을 품고 있다.
--- p.11

오래전 이미 읽은 동화를 왜 굳이 다시 읽어야 할까? 그러고 싶다면 일차적으로는 그립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다시 읽고 보면 이 이야기가 어린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결, 그리고 다시 읽는 성인 독자에게 보여주는 결이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요리의 황홀함도 특별하지만, 접시 한구석의 완두콩도 남기지 않는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맛도 있기 때문이다.
--- p.12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 아이도 때가 되면 자기가 커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웬디 달링이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연은 이렇다. 웬디가 두 살 때 정원에서 놀다 꽃 한 송이를 꺾어선 엄마에게 달려간 날이었다. 짐작컨대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여웠을 것이고, 그런 딸을 바라보며 달링 부인은 가슴에 손을 얹고선 큰 소리로 외쳤다.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영영 멈출 방법이 없다니!” 어른이 되는 문제로 웬디와 엄마 사이에 일어난 일은 이게 전부지만, 그날부터 웬디는 어른이 되는 건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여러분도 두 살이 되면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게 된다. 두 살은 종말에 눈을 뜨는 나이인 것이다.
--- p.19

세상의 온갖 매력적인 섬 중에서도 네버랜드는 가장 아늑하고 작지만 모든 것을 갖춘 섬이다. 크고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섬은 한 곳에서 모험이 끝나면 다른 곳의 모험을 찾아 지루하게 이동해야 하지만, 네버랜드는 한곳에 복작복작 모여 있는 모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이 섬에서 낮에 의자와 테이블보를 가지고 놀 때는 놀라거나 무서울 일이 전혀 없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 2분 전이 되면 진짜 무서워진다. 그래서 밤에는 불을 켜두어야 한다.
--- p.28

“나는 절대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피터가 격하게 외쳤다. “나는 늘 어린아이이고 싶고 놀고 싶어. 그래서 켄싱턴 공원으로 도망쳤어. 그리고 오랫동안 요정들과 함께 살았어.”
웬디는 감탄과 경의가 가득한 눈으로 피터를 보았다. 집에서 도망쳤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피터는 생각했지만, 실은 피터가 요정들을 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웬디는 이제껏 집에서만 지내서 그런지 요정들과 알고 지낸다는 게 정말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요정들에 대해 온갖 질문들을 퍼부었고, 요정들을 귀찮아하던 피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요정은 훼방이나 놓는 존재였고, 가끔이지만 호되게 때릴 때마저 있었다. 그래도 요정들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웬디에게 요정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그게 말이지, 웬디, 갓난아기가 태어나 처음 웃으면, 그 웃음소리가 천 개의 조각으로 쪼개져서 사방으로 튀어다니거든. 그게 요정이 되는 거야.”
--- p.62

이토록 흉악하게 가공된 보석 중에서도 가장 시커멓고 가장 크게 가공된 보석이 있었으니 단연코 제임스 후크였다. (…) 이 잔악한 사내는 부하들을 개처럼 부렸고, 부하들도 개처럼 그에게 복종했다. 실제로도 시체처럼 창백하고 가무잡잡한 얼굴에 긴 곱슬머리는 조금 떨어져서 보면 검정색 양초 다발처럼 보여서 잘생긴 외모에도 방심할 수 없는 위협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두 눈은 물망초 같은 파란 색으로, 깊은 우수가 어려 있었지만, 갈고리로 사람의 몸을 쑤실 때만큼은 두 개의 빨간 불꽃이 피어올라 무시무시하게 이글거렸다. (…) 물론 그에게서 가장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쇠갈고리 손이었다.
--- pp.100-101

피터 같은 꼬마를 다 큰 어른이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궁금한 친구도 있을 것이다. 피터가 후크의 팔을 잘라 악어 밥으로 던져준 건 맞지만, 그 일, 그리고 이후에 그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악어로 인해 죽을 확률이 커졌다는 불안감만으로는 후크가 그토록 냉혹하고 악에 받친 복수심을 품게 된 이유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진짜 이유는 이 해적 선장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피터의 어떤 면모에 있었다. 그건 피터의 용기도 아니었고, 매력적인 용모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아, 빙빙 돌리지 말자. 여러분도 나도 그게 뭔지 잘 알고 있으니, 속 시원히 밝혀 마땅하다. 그건 바로 피터의 건들건들한 매력이었다.
--- pp.205-206

그런데 날이 갈수록 웬디가 떠나온 사랑하는 아빠 엄마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았느냐고? 어려운 질문이군. 네버랜드에서 시간이 흐르는 방식을 여러분에게 어떻게 설명한다? 네버랜드에선 달과 해를 가지고 시간을 계산하는데 그 수가 본토보다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려니 유감이지만 웬디는 부모님에 대해선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늘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고, 그래서 마음을 푹 놓았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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