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읽으면서 바로 알아챘어요. 당신이 왠지 평소답지 않다는 걸요. 천국이며, 봄이며, 감도는 향기며, 지저귀는 새들이며. ‘이게 뭐지, 시를 쓰시려는 건가?’ 생각했어요. 정말 당신의 편지엔 시만 없었을 뿐이에요, 마카르 알렉세예비치! 포근한 기분에, 분홍빛 상상에 ― 다 있잖아요!
--- p.16
묘한 순간이었다. 난 왠지 지나치게 솔직하고 정직했으며, 열정과 묘한 감격에 사로잡혀서 그에게 모든 걸 고백하고 말았다…. 공부를 하고 싶었고, 무언가를 알고 싶었고, 날 소녀나 어린애로 여기는 게 속상했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고, 가슴은 포근하고 눈엔 눈물이 글썽였다. 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전부 다 말했다 ― 그를 향한 내 우정에 대해, 그를 사랑하고 싶고 그와 한마음으로 지내며 그를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에 대해.
--- p.67
나의 애정에, 나의 환희에, 그토록 갑작스럽고 불꽃처럼 뜨거운 우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처음엔 단지 흥미롭게 여겼을 수도 있지만, 이후 주저함은 사라지고 그도 나처럼 단순하고 솔직한 감정으로 나의 애정과 다정한 말들과 관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진정한 친구처럼, 친오빠처럼 이 모든 것에 동일한 관심과 다정함과 상냥함으로 응답해 주었다. 내 가슴은 정말 따뜻하고 포근했다…! 난 아무것도 숨기거나 감추지 않았고, 그도 이런 나를 보며 하루하루 내게 더욱 마음을 쏟았다.
--- pp.67~68
전 아주 좋았어요. 마음도 아주 가벼웠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좋은 순간에는 왠지 늘 슬퍼진답니다. 운 것도 별거 아니에요. 저도 제가 왜 그렇게 우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프도록 예민하게 느껴요. 제 감성은 병적이에요. 구름 없는 말간 하늘, 저무는 태양, 저녁의 고요함 ― 이 모든 게, 모르겠어요, 어젠 왠지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인상을 힘겹고 괴롭게 받아들여서 가슴이 벅차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 p.85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 당신을 사랑한 것이 무분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무분별한 게 전혀 아니에요. 당신은, 아기씨, 아무것도 몰라요. 이게 다 무슨 연유인지, 어째서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당신이 알았더라면 그런 말들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죄다 이치에 맞는 말만 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난 확신해요.
--- p.134
난 평온합니다. 아주 평온해요. 단지 가슴이 좀 저며요. 저 깊은 곳에서 내 영혼이 떨며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요. 당신한테 곧 갈게요. 지금은 이 모든 감정에 흠뻑 취해 있어요…. 하느님은 다 보고 계세요, 나의 아기씨, 더없이 귀한 내 비둘기!
--- p.208
당신께 모든 걸 알려드렸어요, 마카르 알렉세예비치. 제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제 결심을 무너뜨리려고 하진 마세요. 애쓰셔도 소용없어요. 제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정을 마음 깊이 헤아려주세요. 처음엔 정말 불안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제 앞에 무엇이 있을지 전 몰라요. 일어날 일은 일어나겠죠, 하느님이 정하시는 대로…!
--- p.227
이제 이 시절도 끝이 났네요! 지난날의 추억 중에서 즐거운 것들만 조금 새 삶으로 가져가렵니다. 그러면 당신에 대한 추억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고, 당신도 제 가슴속에 더욱 소중할 테니까요. 당신은 저의 유일한 친구세요. 이곳에서 저를 사랑해주신 분은 당신밖에 없었어요. 당신이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 제가 다 보았고, 다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제 미소 하나만으로도, 제 편지 한 줄만으로도 행복해하셨어요. 이젠 저를 떨쳐내셔야 해요! 이곳에 어떻게 혼자 남아 계실까요! 누굴 보며 여기서 지내실까요, 착하고 더없이 귀한, 하나뿐인 내 친구님! 당신께 제 책과 자수틀, 쓰다 만 편지를 남깁니다.
--- p.239
아아, 아기씨…! 안 돼요, 나한테 또 편지를 써요. 편지에 전부 다 써요. 그리고 떠나거든 거기서도 편지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 하늘 천사님,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되잖아요. 이게 마지막 편지였다니 절대 그럴 순 없어요. 이게 어떻게, 이리 갑자기, 확실히, 틀림없이 마지막이라니! 그렇지 않아요, 나도 쓸 테니까 당신도 써요…. 나도 이젠 문체가 좋아지고 있어요…. 아아, 내 친근한 사람, 문체가 다 무슨 소용이에요! 난 이제 모르겠어요.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고 다시 읽어보지도 않아요. 문장을 고치지도 않아요. 그저 쓰기 위해 쓰고 있어요, 그저 당신에게 더 많이 쓰기 위해… 내 비둘기, 내 친근한 사람, 내 아기씨!
---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