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들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식료품 가게에 데리고 가고 음식을 만들었다. 부담 없이 그리고 따스하게, “와서 이것 좀 먹어 봐(come and eat)”라고 말하면서 주고받은 세계 여러 나라의 가정 음식들. 아직도 혀끝에 그 음식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들과 나눈 작은 삶과 요리를 책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참 엉뚱한 꿈이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요리를 하고, 나는 각 나라 요리법을 받아 적었다. 길거리에서 산 5달러짜리 사진기로 세계 여러 나라 아줌마들의 요리를 갈무리했다.
직접 요리를 해보이며 도와준 지구 곳곳에서 온 친구들과 가족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훌쩍 자란 아이들이 나 대신 이 책을 들고 요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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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그녀는 현관문을 빠끔히 열었다. 같은 날, 북쪽으로 창문이 난 집으로 새로 이사 온 나도 문을 빠끔히 열었다.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거울을 보듯 서로를 마주보았다. 우리는 눈물 닦던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적어도 앞으로 6개월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두 여자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음 날 아침, 햇볕이 잘 드는 남쪽 창문 집의 케이시는 피아노 건반을 다루듯이 깔끔한 식탁을 준비했다.
그해 겨울부터 다음해 봄이 올 때까지, 케이시는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내게 그림을 그리고 글로 쓰고 표정을 살펴가면서 뉴질랜드 음식을 만들고 먹는 법을 이야기해주었다. 뉴질랜드의 질 좋은 버터와 우유, 꿀 이야기를 할 때면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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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주전자에서 찻물이 끓을 동안, 따뜻한 홍차에서 김이 날아 갈 동안, 유리창 밖 계절을 보며 에피와 나는 함께 차를 마셨다. 깨끗하게 정돈된 식탁과 가지런히 담긴 자카르타 전통 과자와 간식, 아름다운 찻잔들이 이야기해준다. 에피가 얼마나 세심하게 이 시간을 준비했는지를.
에피는 요리책을 보면서 자카르타 음식을 만든다. 국수를 삶아 담고, 쇠고기 육수를 부은 다음 깍두기 모양으로 잘게 썬 토마토와 숙주와 파를 국수 위에 웃기로 얹는다. 자주 먹는 국수요리지만, 전혀 색다르게 이국적으로 보인다. “소토미.”
겸손의 앞치마를 조용히 두른 베이비시터 에피. 소박하고 단순한 즐거움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구멍 난 시린 하늘을 열두 달로 꿰매 입는 가난하고 자유로운 영혼들은 공기처럼 가벼워서 하늘 저 높은 곳까지 갈 수 있는 특권을 선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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