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삶을 뒤로 하고 이방인의 삶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그저 이대로도 괜찮다 싶던 어느 날, 병이 도졌다. 아니 중병이 시작됐다. 가슴이 먹먹한 병. 그리운 게 많아서 죽을 것 같은 병. 보고픈 이들이 많아서 마음이 터질 것 같은 병. 코로나 때문에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이 먼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나,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글을 써야 한다면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친구, 나의 한옥집에 대해.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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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블로그 닉네임은 ‘밤호수’다. 이웃들은 모두 나를 ‘밤호수 님’이라 칭하고, 언제부터인지 나도 내 이름만큼이나 ‘밤호수’라는 닉네임을 편안히 여기고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실제 내 이름보다도 더. 그렇지 않은가. 내 이름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만, 닉네임은 스스로 선택하여 만든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사실 ‘밤호수’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차분함이나 고즈넉함은 내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이지만, 그 이미지는 누군가가 나에게서 떠올려주길 바라는 그림이기도 하다. 나의 글을 읽을 때 깊고 푸른 보랏빛 밤하늘, 달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호수를 떠올려 준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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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던 집. 나의 유년의 삶과 추억이 가득한 집. 나의 유년과 가장 찬란한 시간을 꽃피우고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해주며 스스로를 지켜온 집은 우리가 그 집을, 장독대와 그 오래된 나무를 버리고 나왔을 때, 스스로의 생애를 이미 마감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집이, 나와 옛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그리움의 색을 입기를 바란다. 사라진 옛집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살아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나의 옛집이 지금 그 집에서 사는 이들과 함께 그의 새로운 생의 주기를 아름답게 가꾸어나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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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세월이 흐르며 내가 그리워하게 된 건, 이젠 맛보기 힘들어진 할머니의 잔치국수와 계란 노른자를 얹은 흰죽, 애기만 한 나무도마 위에 하얗게 밀가루 칠을 하고 만들어지던 쫄깃한 칼국수, 그 위에 얹은 삭힌 고추의 맛이었다. 상상의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공주님의 생일파티와 도시락 반찬은 우리를 그토록 부러워하게 만들었지만, 그 파티의 아이들이 지금 그들의 파티를 추억하듯 나 또한 이제는 한옥집의 생일잔치를 추억한다. 언니와 오빠들 사이에 끼어 열심히도 놀았던 봄날의 생일잔치를 추억한다. 꽃잎을 따서 반지를 만들고, 토끼풀을 간지럽히며 ‘우리 집에 왜 왔니’를 목청 터지게 외치던 따스한 그날의 생일잔치를.
--- p.264
나는 오늘도 제일 좋은 집을 꿈꾼다. 만나 뵌 적 없는 나의 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셨고,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가 오랜 세월 지키셨으며, 나의 아빠와 그 남매들이 자랐고, 나와 나의 자매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 그 집이 지금도 나에게 ‘공주에서, 아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으로 기억되듯, 나와 나의 아이들 또한 어딘가의 집에서 우리만의, 그들만의 역사와 이야기를 만들어 제일 좋은 집을 만들어나가기를 나는 오늘도 꿈꾼다.
--- p.291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나는 수없이 많은 ‘어린 나’를 만났다. 작은 나를 찾아내서 그 아이를 한옥집 대문을 열고 들여보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저절로 그 아이가 집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하나하나 문을 열고, 빼꼼히 쳐다보고, 대문 밖을 나와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이가 가는 길은 나의 기억이 되었고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때론 눈을 감고 있어도 눈물이 났고, 눈을 뜨고 있어도 그곳이 보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실제 만나는 듯도 했다. 꿈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되살려내면서 나는 정말로 꿈 가운데, 환상 가운데 있었다. 돌아갈 수 없을 줄 알았던 유년의 시절 가운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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