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3월 03일 |
---|---|
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129*198*30mm |
ISBN13 | 9780571364909 |
ISBN10 | 057136490X |
발행일 | 2022년 03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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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129*198*30mm |
ISBN13 | 9780571364909 |
ISBN10 | 057136490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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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명지회 모임에서 챗GPT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같이 읽은 터라 청소년소설인 ‘클라라와 태양’을 읽기로 했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 소설가로 분류된다. 아버지의 외교 직무를 따라 아주 어렸을 때 이민 갔고, 사회복지사 아내와 결혼했다. ‘클라라와 태양’은 작가인 딸이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교육용 과학소설 집필을 권해 썼다고 한다.
이시구로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딘가 회색분자로 비춰지는 구석이 있고, 영국 현대 소설가들의 계층 구분과 사회적 선(철망)을 체화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복제 클론을 다룬 ‘나를 보내지 마’와 ‘클라라와 태양’은 원서로 읽으면 좋겠다. 번역에서 흐릿해진 용어와 공식, 누락된 덩어리 표현들, 건조한 문체 왜곡이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안드로이드 입장에서 ‘기계적으로 응답’(누구는 정치인의 회피형 뻔한 말이라)하고 찍어내는 어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중립적인 인간 언어 모방 사이로 야릇한 감정이 흐른다. 인간의 두뇌와 심장과 손끝의 협력 작업에만 깃드는 기운이자 무드가 아닐까.
뇌 과학자나 이과생들이 보는 관점은 확실히 인문학적 사유와 다르다. 미래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 할 때 에스에프만한 것이 없다고들 한다. ‘책읽어주는 나의서재’에서 물리학자 김상욱이 ‘프랑켄슈타인’을 말할 때도 책을 읽는 기준과 주목하는 사항들에 있어 차이가 났다. 주제나 서사의 흐름이나 사회적 논쟁거리와 접촉되는 부분이 확실히 덜했다. 그래서 융합 학습과 사고 언어화가 중요한 것 같다.
부모(양육자)와 다름없는 창조주로부터 냉담하게 버림 받은 괴물은, 숨어 인간 사회를 관찰하며 한 가정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흉측한 시각적 이미지를 보완할 인간 언어 습득에 힘써야 함을 깨닫는다. 혼자 글을 깨치고 고전문학을 섭렵하며 웅변술을 통달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출생신고와 주민등록번호 없이 보이는 존재visible man가 되기는 어렵다. 심지어 아이도 시각적 차이와 차별에 물들어 모욕 주는 말을 내뱉고, 희망이던 장님의 가족을 위해 우렁각시 노동을 제공하지만 자기발언이나 이해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 생김새로 인해 배척되어 마땅한 존재로 낙인찍힌다. 그리하여 절망의 복수 끝에, 창조주에게 여자 괴물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짝의 완성과 함께 인간 사회를 떠나겠다고 약속한다.
반면 번민에 쌓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작업을 중단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파기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자 괴물이 지적 능력과 미적 감각을 지녀 인간 남성을 넘보고, 생식과 짝짓기 교란에 나설 경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 내용은 복제 인간이 등장하는 소설들에 공통적으로 깔린 휴머노이드(의 항변과 반란)를 향한 공포이기도 하다. 이들은 인간 사회의 질서와 정해진 규범과 관습을 따르지 않고, 쳐둔 울타리를 넘는 이탈과 도전장을 내민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 인간 양성 기관들을 주요무대로 한다. 의학 개발(장기 제공)과 수명 연장의 야망에서 시작한 일종의 교육 의료사업 프로젝트(식민 기획)였다. 당연히 일반적인 사회 공간으로부터 분리된 폐쇄 공간에 아이들은 머물며 자기들끼리 어울린다. 유럽 상류층의 유모 양육과 기숙학교 의탁 관례 같다.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복제인간의 제조 과정과 과학적인 논의는 생략된다.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으나, 원래 이상적이던 이론도 실천과 실현 경로를 거치며 변질되거나 엉뚱하게 흐른다. 인간이 하는 일의 함정이란. 전체 맥락에서 다양한 입장들이 의제로 건의되거나 충분히 숙의와 검토되지 않는 까닭이다. 게다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가치가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권력을 움켜쥔 채 담론을 형성하는 자들의 눈과 입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고유한 개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대상이나 오브제나 실험용 도구로만 쓰고 버린다. 투자와 사업이 원활할 때는 각광받고 비대해지다 흐름이 꺾이면서 사양 산업의 수순을 밟는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듯이.
복제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출처와 다름을 경험하거나 대적할 기회가 없다. 김상욱 교수는 로봇 시대의 인간 노동의 위기를, 획기적인 미술 판의 변환에 주목해 주의를 환기시킨다. 뒤샹의 ‘샘’이 불러 온 미술 작품의 범위와 패러다임 변화를 설명한다. 이렇듯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과 창의성이 있다는 주장이 사실인지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나를 보내지 마’는 복제 아이들에게 그림과 시 쓰기 등의 예술 활동을 장려한다. 심지어 인간 감정이 삼각관계의 우정을 타고 교묘하게 신경전을 벌인다. 정해진 틀과 기준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사랑이 생명 연장의 거래로 테스트되기도 한다. 인간이 하는 고차원적 예술 활동과 감정(감화 감동)이 복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도되지만, 그 중심 의도가 돈과 자본의 이기심에 근거한다. 복제 아이들을 제작한 조직과 기존의 인간 사회는, 이들의 욕구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외면한다. 사회적 필요와 요구사항만 이들의 몸에 쓰인다. 한낱 용기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쓰임이 다한 소모품과 유행 지난 재고나 폐품은 씁쓸하게도 쓰레기장, 매립지 행이다. ‘클라라와 태양’의 결말은 ‘나를 떠나지 마’의 숙명주의를, 뚜렷한 저항이나 연맹 운동의 기미 없이 수용된다. 문제를 제기하되 기존의 어떤 것도 흩뜨리거나 방해하지 않는 물과 기름 띠 같은 것이 형성된다. 김대식 교수를 비롯한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질문하는 능력(‘질문 기술’)과 정확한 검색어 입력을 강조하며, 이제 중간단계의 지난한 노동 단축에 따른 여유 시간을 어떻게 쓰고, 또 어떤 꿈을 꿀 지 모색하자고 제안한다(좀 한가한^^;).
ChatGPT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실행해보지 않고서 떠들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미 겪고 있는 거짓 뉴스 범람과 표절의 비윤리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에 의해 완성된 ‘글쓰기’ 결과물이 과연 독창적일지 미지수다. 티 없이 완벽한 객관적인 글(아티클)은 덜 인간적이고 울림이 없지 않나ㅋ. 슈퍼컴퓨터의 정보와 망, 거대 자본을 따라 뻗어나간 끝에 수렴된다면 유사한 답안지를 찍어내지 않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깨작대는 표절과 눈속임이 인간의 지식 생산과 양심을 가로막지 않을지 걱정이다. 어디까지나 기계와 친하지 않은 러다이트의 불안이자 불만일지 모르겠지만.
도나 해러웨이가 오래 전 예고한 사이보그‘화’가 전면화 될 것이다. 인간이 컴퓨터와 각종 기계나 보철, 가죽의 일부와 연결돼 한 몸으로 인식될 확률이 높다. 그럴 때 이러한 구성물은 인간인가, 아니면 기계인가, 구성성분 표를 마련해 따질지도 모르겠고, 그도 아니면 자기규정의 순수 범위로 열어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의 대치 상황과 변이 형태와 파벌 싸움도 볼만해질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십대일 때, 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하고 하늘을 나는 차를 타는 미래상을 그렸다는 데에 생각이 멈춘다. 물론 모든 것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전으로 치러진다지만 지금 요란하게 각광 받는 챗GPT가 모두의 환희와 자유를 보장하는 긍정적인 엔딩일지 확신할 수 없다. 토머스 무어가 제시했듯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한끗 차이의 역발상에서 생긴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이야기하기와 의미 찾기를 기계가 전부 충족시키진 못할 게다, 그래야.
샘프레 레카토 ~ 샘프레 리베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