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서 자신에 대한 무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을 홍보하고 선전했던 천재가 남긴 자화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존재의 증명은 타인의 시선과 ‘좋아요’보다 자신에 대한 존중과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실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믿어야 한다.”라고 말이야. ‘남이 규정한 만들어진 너’로 살지, ‘네가 살고 싶은 실재의 너 자신으로 살지’는 네가 선택하는 거란다. 네가 허락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널 열등하게 만들 순 없어.
느루야, 턱을 깎고 볼을 세운 보정으로 얼굴이 조막만 해진 셀피도 예뻐. 작은 눈이 너무 고민이라면 외과적인 도움을 받아도 괜찮아. 음식에 약간의 다시다는 풍미를 돋워주는 것처럼 그건 존재의 여분에 뿌리는 환상의 금가루지. 다만 빛나는 그 알맹이에 지치지 않는 생명력이, 작은 재능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자부심이, 뻔뻔하리만치 세상에 대해 저돌적인 당당함이 있는 ‘자아’가 옹골차게 들어있도록 노력하자.
셀피보다 아름다운 자화상을 그려보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주문을 외워보자.
Abracadabra(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아브라카다브라)!
--- p.93~94
느루야, 배낭에 담겨 구겨진 엄마의 그림자를 가만 펴본다. 관아재가 치밀하고 꼼꼼한 눈으로 일상을 살펴 자신을 바로 세웠듯, 엄만 사천왕의 부리부리한 눈을 빌려 나를 찾아 먼 곳을 걸어온 나의 그림자를 살펴보고 있어. 엄마의 그림자엔 ‘원망’이 있더구나. 상반기에 예정된 모든 강의들이 취소되었었어. 엄만 자기 계발이라든가 자아성취라든가 그도 아니면 인문학의 확대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일해본 적이 없잖아. 늘 생활형 강사였지. 당장의 강의료로 웃고 우는데 오랜 기간 수입이 없어 내심 걱정이 되었단다. 마침 아는 선배가 강의를 주선해 감사히 시작했어. 그런데 국가에서 재난지원금을 내보내며 지금 일하고 있는 강사들은 제외시킨 거야.
그런 맘 있잖아.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난 왜 이리 운이 없을까? 남들도 삶에서 우연히 얻어걸리는 인센티브가 있듯 내게도 작은 행운쯤은 하나 줄 수 있잖아!” 하는 한탄인지 원망인지 모르는 푸념이 잔뜩 걸려 있더라. 아마 그래서 다문천왕의 발밑에 으스러지던 악귀가 엄말 보고 부처님께 오면서 배짱도 좋다고 느꼈을 거야.
나 자신을 살핀다는 관아재 조영석의 작품을 보고, 오는 분마다 새롭게 소생한다는 내소사의 안뜰을 보고, 부처님의 웃는 미소를 보고 엄마의 숯검댕이 같은 그림자를 다독였단다.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더 좋은 강의를 하겠다고 다짐했지. 덕분에 엄마 스스로를 잘 돌아보게 되었단다. 엄만 누군가의 마음을 만지는 글을 쓰고,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강의를 할 거야. 내일은 옛 그림 속 소박한 짚신을 신고 가볍고 단순한 일상을 기품 있게 걸어보고 싶구나.
--- p.182~183
역사적으로 바이러스가 퍼트린 가장 큰 위협은 ‘단절’이야. 바이러스가 퍼지는 순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대화할 수 없지. 그건 인간의 연대를 무너뜨려 창조적인 지혜를 모을 수 없게 해. 오히려 서로의 존재를 기피하고 혐오하게 만들지. 예로부터 인간이 서로 대화하려 할 때는 먼저 악수를 했어. 창과 칼, 총을 내려놓고 빈손을 보여주었지. 내가 너와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였고 어떤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징표였어. 하지만 지금 진화된 이 바이러스는 이웃을 밀어내. 주먹을 쥐고 서로 밀어내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인사가 되었으니까. 바이러스는 우리를 이간질시켜 기어코 인간을 이기고 싶은 모양이야.
느루가 어제 “어둠은 어둠을 밀어낼 수 없다.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혐오도 혐오를 밀어낼 수 없다.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구절을 보내주었지. 바이러스가 퍼트린 단절과 불안으로 인해 사회가 어려울 때, 시비(是非)를 가려 책임을 지우는 것보다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것, 곤란과 궁핍한 시기를 겪고 있는 이가 있을 때,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를 먼저 살피는 것,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에게 혐오와 질시보다 이해와 공감을 하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간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단다.
느루야, 엄마는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비로소 인간으로 죽는 것 같아. 생태계 안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존중과 깨달음을 통해 인간이 되기도 하고, 그냥 생명체 중의 하나로 생을 마치기도 한다고 말이야. 자연이 인간을 향해 도전할 때, 인간의 치열한 응전(應戰)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다움’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그 과정에서 나를 정확히 바라보게 되고,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이 싹트고, 타인을 위한 희생과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바이러스의 가장 강력한 백신은 인간과 인간의 뜨거운 연대일지도 몰라.
--- p.262~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