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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6
나는 태어났다 13 가출의 장소들 20 낙하산 강하 40 클레버 크롬 54 모리스 나도에게 보낸 편지 58 가을의 뇨키 혹은 나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78 꿈과 텍스트 88 기억의 작업 93 ‘엘리스 섬’ 프로젝트 설명 111 어쨌든 죽기 전에 해야만 할 것 같은 몇 가지 121 옮긴이의 말 128 미주 142 수록지면 158 |
Georges Per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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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6년 3월 7일에 태어났다.
--- 첫 문장 문제는 ‘왜 계속하나?’도 아니고, ‘왜 나는 계속 할 수 없나?’도 아니라, ‘어떻게 계속하나?’이다. (세 번째 질문을 통해서 나는 앞의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다.) --- p.15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싫증이 나거나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로 곱씹은 내 기억들로 이루어진 닫힌 세계 속에 나를 가두는 것. --- p.19 그는 그 사람에게 말을 할까, 설명해볼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온종일 이 순간을 기다려왔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어주길, 그를 보길, 그를 찾으러 와주길. --- p.25 20년이 지나, 그가 떠올려보려 했을 때(20년이 지나, 내가 떠올려보려 했을 때),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세세한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 p.38 바로 그 순간 선택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정확하게 삶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게는 거의 낯선 것들을 신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바로 그때 알게 됩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 상황을 완전하게 책임져야만 하는 순간임을 알게 되지요. --- p.46 우리 앞에는 허공이 있고, 단숨에 뛰어내려야만 합니다. 단번에 두려움과, 포기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러고 나서 감행해야 합니다. --- p.51 이 책은 헛된 추적의 흔적이고, 그런 추적에는 진실을 찾으려는 글쓰기의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게임의 규칙은 아주 단순하지만, 실제 시합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더 복잡하다. --- p.56-57 사실 그 계획에서 무엇보다 욕망을 알아봐야만 합니다. 제가 처해 있는 위치를 조금 더 잘 알아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제 과거 작업들이 그저 일련의 단계 역할을 하며, 마침내 조금 더 야심찬 무언가에 도달하게 해준다는 전체적인 기본 방향에 따라 제 계획들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 p.66-67 그 작업을 통해 장소들의 나이 듦과 내 글쓰기의 나이 듦, 내 추억의 나이 듦을 동시에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과 뒤섞이는 셈이죠. 시간은 이 계획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이 프로젝트의 구조와 제약을 이룹니다. 책은 이제 지나간 시간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 p.69 나는 지나온 길을 따져볼 수 있나? 언젠가 내가 실제로 목표를 세우기라도 했다면, 나는 몇 가지를 완수했는가? 지금 나는 예전에 내가 되고 싶어 했던 나라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내 열망에 부응하는지 묻지는 않겠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순간, 더 앞으로 나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기에.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서 끌어가는 삶은 내가 원했던 것에, 내가 기대했던 것에 부합하는가? --- p.81-82 나는 (글 쓰는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것을 제외하고) 글쓰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것을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다른 것을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쓰기 위해서 산다. --- p.83 글쓰기는 나를 보호한다. 내 단어들과 문장들, 능숙하게 연결한 문단들, 교묘하게 계획했던 장들로 쌓아 올린 성벽 아래서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재간이 부족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보호받길 바라나? 그런데 만일 방패가 굴레가 된다면? --- p.86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은 의도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일을 거치며 유일한 글쓰기의 경험이 된다. 그러니까 새롭게 드러난 상징도, 의미가 넘쳐나는 것도, 진실의 조명도 아니다. 오히려 단어를 배열하는 일은 현기증이 나며, 알아서 만들어진 듯 보이는 텍스트는 매력적이다. --- p.90 결국 인쇄되고 고정된 그 단어들은 이제 모호하면서도 동시에 명백한 흔적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으리라. --- p.92 저는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억지로라도 기억해냅니다. --- p.94-95 기억의 작업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하겠네요. 첫 번째는 일상성을 철저하고 면밀하게 검토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제 자신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이고, 마지막은 허구화된 기억입니다. 그러고 보니 네 번째도 있네요. ‘암호화’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어요, 완벽하게 암호화해서 집어넣는 거죠. --- p.100 사실 제가 글쓰기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 시절이 제게 되돌려 주었던 방식입니다. 모든 글쓰기 작업은 매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흔적처럼 글쓰기의 순간 속에 고정될 수 있지만, 사라졌던 무엇과 관련해서 이루어집니다. 저는 어떻게 현재에 개입하는지 모르겠어요. --- p.108 저는 일체주의 작가라 부르고 싶어요. 대단한 것을 주지 않지만, 그 명칭만은 제게 큰 기쁨을 주는 문학 운동이지요. 개인에서 출발해서 다른 이들에게로 이동하는 움직임요. 저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투영이자, 동시에 호소하는 거죠! --- p.110 내게 엘리스섬은 바로 유배의 장소, 말하자면 장소가 부재하는 장소, 흩어지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장소는 나와 관련이 있고, 나를 매혹하고, 나를 끌어들이고, 내게 질문한다. --- p.115 미미하지만 집요하고, 은밀하며,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은 이런 식의 사소한 불일치에 집착한다. 내 안의 무엇인가와 관련해 어딘가 낯설다는 감정, 그것은 ‘다르다’는 감정인데,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보다 ‘나의 가족’과 훨씬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나는 내 부모가 말했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 p.117 내가 엘리스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라는 이미지, 극단적인 단절의 자각이다. 내가 검토하고, 문제 삼고,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 부재, 그리고 흔적과 말, 타자를 추적하는 근간인 균열 속에 나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 p.119 분명 또 다른 많은 일이 있겠지만. 나는 37번에서 의도적으로 멈춘다. --- p.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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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인 『사물들』 이후로 국내에 대표작이 꾸준히 소개되어 온 조르주 페렉의 자전 산문집인 『나는 태어났다』가 출간되었다. 『나는 태어났다』는 짧은 작품 활동 기간 동안 다양한 양상의 글쓰기를 선보인 페렉의 작품 세계의 핵심인 자전적 글쓰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텍스트이다.
조르주 페렉은 자신을 각기 다른 네 개의 밭을 가는 농부에 비유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사회학적’, ‘자전적’, ‘유희적’ 그리고 ‘소설적’ 글쓰기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가 자의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작가는 ‘자전적 요소’와 ‘제약contrainte’이 자신의 글쓰기에서 주요한 토대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자전적인 요소들과 형식적인 제약은 페렉의 거의 모든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태어났다』는 조르주 페렉의 작품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자전적 글쓰기와 관련해서 작가 사후에 흩어져 있던 원고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자전적 글쓰기라는 하나의 주제로 메모, 단편, 연설, 비평, 편지, 자화상, 신문 기사, 인터뷰, 서평, 라디오 방송 등 다양한 성격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태어났다』에는 총 1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고, 수록된 글의 대부분이 페렉 작품들의 기원이 되거나, 그 기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특히 기억과 망각의 작업, 그리고 더 나아가 정체성 탐색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글쓰기의 핵심을 드러낸다. 가령 「나는 태어났다」나 「모리스 나도에게 보내는 편지」, 작가의 대담을 기록한 「기억의 작업」은 조르주 페렉의 독특한 형식의 자서전인 『W 또는 유년의 기억』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무엇보다 『나는 태어났다』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 조르주 페렉의 작품에서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 어떻게 기억이 글쓰기로 형상화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태어났다』는 조르주 페렉의 글쓰기에 매료되어 있는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고, 아직 그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조르주 페렉만의 독창적인 글쓰기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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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났다』는 일견 건조한 사실명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이 단순한 문장은 일종의 기록이자 선언, 그리고 주장으로 읽힌다. 이름이 바뀌고, 국적이 바뀐다. 장소들이 낯설어진다. 삶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하찮은 기억들이 드문드문 부재하는 자리에 망각이 끼어든다. 그러나 나는 태어났다는 사실은 불변한다. 세계의 인명부에 여느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기입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조르주 페렉은 이 작은 책에서 자신의 출처를 허구화해온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든지 맞닥뜨릴 수 있었을 가능성들, 변화들. 우리는 이 책에서 페렉의 삶과 작업뿐만 아니라 허구의 무한한 변주를 보게 된다.
- 한유주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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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모은 글들은 기억과 망각의 작업을, 정체성의 탐색을, 자서전 글쓰기의 새로운 전략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 필리프 르죈 (문학비평가, 자서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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