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1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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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4쪽 | 458g | 140*210*30mm |
ISBN13 | 9791168730007 |
ISBN10 | 1168730007 |
발행일 | 2022년 01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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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4쪽 | 458g | 140*210*30mm |
ISBN13 | 9791168730007 |
ISBN10 | 1168730007 |
들어가는 글: 과로와 죽음의 거리 오늘도 버텨야 하는 삶 | 언어 없는 사건, 개념 없는 현상 | 견고한 과로+ 성과체제 1장. 살아가는 혹은 죽어가는 삶 1. 존버씨의 죽음 왜 존버씨의 죽음을 봐야 하는가? | 과로죽음의 반복, 켜켜이 쌓인 폭력의 증거 |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죽음 | 더는 이렇게 취급당하지 않겠다 2. 번아웃과 일터 은어 번아웃증후군,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 | 고통이 각인된 일터 은어들 | 핏빛 자본주의 세상 3. 괴롭힘은 갈수록 심해진다 ~하라, ~하라, 더 ~하라 | ‘효율’이라는 이름, 위험의 외주화 2장. 특별한 또는 특별하지 않은 죽음 1. 업무상 정신질환을 어떻게 볼 것인가? 새로운 착취 양상 | 정신질환 유발하는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 2. 성과 장치는 죽음조차 개별화한다 투견장에서 미소 짓는 건 투견주일 뿐 | 또 다른 투견장, 실적이 곧 인격인 세계 | 성과주의 담론이 유도하는 것 3. 성과주의와 금융 노동자의 자살 사건 밥값 스트레스 | “미치도록 단 커피 주세요” | 우울증 블랙홀 | 실적-위법-자살의 연관고리 | 욕값도 월급에 포함 4. 한 경마장에서 일어난 죽음의 행렬 누구도 살아남기 힘들다 | 죽음이 말하는 것 | ‘선진경마’라 이름 붙은 실험의 도구 | 이런 일은 또 반복될지 모른다 5. 부품으로 전락한 개발자들 연이은 사망 사고 | ‘언제나’ 크런치 모드 | 혁신적인 프로세스, 낡은 조직문화 | 착취하기 좋은 구조 | 소작농화 6.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 우정사업본부 또 죽어간다 |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 비밀스러운 알고리즘 vs 현장 노동자의 온도 차이 | 현장 목소리에 기초한 대안 찾기 7. 왜 힘든데도 일을 계속하는가? 개인적인 것? 문화적인 것? 자발적인 것? | “회사를 중심으로 삶을 조직하라” | “끊임없이 경쟁하고,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라” 8. 그만두지 못함의 사회학 “그렇게 힘들면, 그냥 그만두면 될 거 아냐?” |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한 이유 | 우리의 일상 화법도 바꿔야 한다 | 우리에게도 자살 감정이 꽤 퍼져 있다 9. 4차 산업혁명 발 과로위험 시간권리 박탈 | 당신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10. 알고리즘 노예가 되다 휴식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 노동자를 통제하는 새로운 기술 3장. 재난, 불평등, 권리 1. 코로나19와 불평등 파국적 불안 | 박탈되는 | 과로하는 | 무력화된 2. ‘최전선 영웅’의 죽음 사건: 공무원 과로사 | 질문: 노동인권은 재난과 양립할 수 없는가? | 장치: 복무규정과 봉사자 이데올로기 | 예외적 사례? 구조에서 비롯된 사건! 3. 이주노동, 좌우간 외출 금지 소, 돼지, 딸기랑만 지낸다 | 해고 위협, 엄습하다 | 무권리, 여전하다 4. 재난 노동자의 목소리는 없었다 위험 업무를 거부할 권리 | 개별 죽음을 가로지르는 공통분모 | 직업정신 vs 노동인권 | 재난 이후의 목소리들 | 사람·권리 중심의 재난 대응이란? 4장. 승인과 불승인 사이 1. 산재는 어떻게 승인되는가? 정신적 이상 상태 | 정신적 이상 상태의 내용과 특징 | 자살 전 일어난 사건 | 과거 치료력에도 불구하고 승인된 사례 2. 산재는 어떻게 불승인되는가? 개인 취약성: 환경 요인+성향 요인 | 개인 취약성: 과거 치료력 | 경력, 적응, 통상적인 수준이란 이유로 불승인 | 유사 사건에 대한 판정 내용 비교 | 기타 불승인 사례 5장. 현재의 시간, 시간의 미래 1. 어쩌다 과노동 노동시간이 다시 길어지고 있다 | 어쩌다 이런 시대로 들어섰을까? |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까? 2.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는 왜 사라지는가? 노동시간 정책 | 과로사회 탈출을 선언했지만… | 자본의 백래시 | 현실은 여전히 지옥 3. 우리는 어떤 시간의 미래를 원하는가? 시간을 민주화하는 과정 | 자본의 역공에 대항하기 | 과로+성과체계 낯설게 보기 | 불가피성의 논리 걷어차기 | 감수성 길러내기 | 시간을 정치화하기 마치며: 왜 죽음에서 과로는 누락되는가? 부록: 산재 판정의 승인, 불승인 사례 참고문헌 주 찾아보기 |
책 제목이 흥미롭다. ‘존버’라는 비속어가 정면에 나오는 게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불편한 건 이 책에 실린 수많은 과로사 사례들과 열악한 노동조건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보다는 악화시키는 데 여념이 없는 2022년 우리나라의 집권세력이다.
조금은 말랑할 것 같은 이 책은 사실 사회학 연구서다. 과로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자는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례들을 들며 스케치 한다. 특히 최근 코로나라는 비상상황이 일어나면서 안 그래도 열악했던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었지만, 비단 문제는 근래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물질중심적 사고는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선으로 여기는 체제다. 이 때 줄일 수 있는 비용 중 시설과 관련된 것은 한계가 있고, 결국 인건비를 줄이는 식으로(필요한 인력보다 적은 수의 직원으로 일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과로의 구조화가 일어나게 된다.
또, 기술의 발전으로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는 게 한 몫을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합당한 노동기준을 요구할 수 없는 개인사업자로 취급되고,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감이나 조직적인 행동도 어렵다. 꼭 같지는 않지만, 최근 화물노조 파업을 두고 정부가 보인 조치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나는데, 분명 특정한 회사에 소속되어서 운송을 하는 대가로 대금을 지급받는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이기에 애초에 노조를 구성할수도, 파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어디까지나 법적으로는 그랬다).
이런 구조화된 악조건들로 인해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제도 마련은 더디기만 하다. 친 재벌 정당의 집요한 반대와 발목잡기로 인해 상당부분 누그러진 형태로 입법된 주당 52시간 노동제와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법률이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졌지만 온갖 빠져나갈 구멍투성이이고, 그나마 정권이 바뀐 후에는 간신히 만들어둔 제도들도 쓰레기통에 처박히거나 개정될 위기에 처해있다.
사실 이런 규정들은 무슨 한국에만 있는 특별히 반 기업적 법도 아니다. 입만 열면 국격 운운하며 그 일원이 되고 싶어 안달인 선진국들에서는 거의 대부분 갖춰진 최소한의 장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쪽에서는 위보다는 아래를 바라보는 이중적 태도를 지닌 이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하기 바쁘다.
책 후반에는 흥미로운 통계가 하나 실려 있는데,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주된 원인은 앞서 언급된 것과 같은 복잡한 이유들 때문이고(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루어진 법 개정 때문에 소폭 줄었다고 하는데,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이렇게 늘어난 노동시간의 질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삶이 좀 더 편해질 거라는 낭만적 예상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향해 한 발도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역시 좀 더 많은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니 쉴 새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는 거니까. 문제는 여기에 투입되어야 하는 인건비인데, 기업 운영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부분인 바로 임금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강요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슨 소련 시절 계획경제나 중국의 대약진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개별 기업에 인력을 더 뽑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정도만 가능한데, 이 정도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일의 양을 줄이거나 속도를 늦추는 방식이 남은 대안일 것 같은데, 기업 운영자들의 사고엔 이런 선택지가 아예 배제되어 있는 것 같다. 어쩌자는 건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주제와 관련된 여러 내용들이 잔뜩 담겨 있는 책인데, 그 구성이 썩 체계적으로 잘 되어있다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다양한 사례 모음집 사이에 저자의 분석이 살짝살짝 비추는 정도.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나 독창적 해석 같은 것도 부족하다. 다만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산발적으로 접하던 문제를 이렇게 한 권에 모아서 읽어보는 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주의: 다소 많이 어두운 이야기가 담긴 리뷰입니다. 지금 몹시 힘들거나 지친 분들은 읽기를 피해주세요. 좋았던 기분도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심정으로 그만둔다고 말하고 후임자 오면 인수인계까지 하겠다고 했을 때.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단점과 내가 그만두게 된 이유를 글로 적어달라고. 나는 해코지가 무섭다고 했다. 절대 그럴 일 없고 그렇게 되면 종이를 찢어버리겠단다.
후임자가 와서 오래 근무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를 내보내기 위한 용도로 쓰겠단다. 자신은 앞날을 미리 걱정하는 편이라서 그런다고도. 내가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죽을 것 같다고 말한 건 다 뭔가. 견딜 수 없어서 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증거가 필요할까. 참으로 이기적인 부탁이었다. 글 쓰는 거야 누워서도 쓸 수 있으니까. 알았다고 했다.
떠올랐다. 대장금의 명대사.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힘들다. 어찌 힘드냐. 힘들어서 힘들다고 하는데 어찌 힘드냐고 물으시면 힘들어서 힘들다. 라고는 할 수 없어서 전부 이야기했다. 일이 생기면 다급해져서 고함치고 늘 윽박지르듯 말한다.
일을 주고 1분도 안 지났는데 다 했냐고 묻는다.(계속 이러니까 나를 놀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실수를 하면 왜 잘못했냐, 뭐가 잘못됐냐.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겠냐. 집요하게 묻는다. 일하고 있는 거 뻔히 아는데도 옆에 와서 뭐 하냐고 계속 묻는다. 다른 사람 앞에서 하대하고 무시하듯 말을 한다. 반말은 기본 장착. 빨리하라고 재촉해서 주눅 든다. 안 그래도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투른데 자꾸 그러니까 실수를 반복한다.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일이 생기면 나에게 떠넘긴다. 일의 주체를 자신에게서 나로 넘긴다. 교묘하게. 나를 비서 부리듯 대한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게 나의 업무라고 윽박질렀다. 내 성격을 네가 다 이해해야 한다고. 대체 얼마나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 그러느냐. 그동안 편한 일만 했느냐. 너무 힘들어서 애인한테 말했더니 직장으로 애인이 찾아오는 막장 드라마에도 안 나올 것 같은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도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하고자 한 사람 앞에서 자신의 변명만을 무한 반복했다. 고칠 수 없단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면서 일을 하라니. 나는 공부하고 자격증 따서 취업을 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며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다. 상꼰대. 내가 그런 소리를 듣고서 네 네, 돈 버는 거 다 힘들죠, 그렇게 해서 돈 버는 거죠. 수긍하고 순응하면 계속 이런 더러운 세상이 될 것 같아,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나쁜 놈들이 웃으며 살게 될 것 같아. 그만둔다.
김영선의 『존버씨의 죽음』을 읽어가다 나는 그간 내가 느낀 감정이 실재하는 것이었구나 안도했다. 호흡 불안, 고립감, 소외감, 통증, 불안감이 나를 지배했다. 퇴근을 했어도 쉬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쉴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감정이 없다'를 속으로 되뇌었을까. 나는 인간인데. 감정이 있는 인간인데. 비인간으로 만들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까.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일을 했다. 자기 편한 쪽으로 업무를 분담하는 꼴을 보고서도. 일이 안 되면 왜 안되는가 집요하게 추궁하는 걸 들으면서도. 나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 없다를.
기질론은 낡아빠져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이 동원하는 여전한 프레임으로 언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다. '쟤는 원래 예민해서 그래' '나약해 빠져가지곤'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어' '완벽주의 성향' '유리 멘탈·두부 멘탈·쿠크다스 멘탈(유리, 두부, 쿠크다스처럼 부러지기 쉬운 멘탈)' '멘존약(멘탈 존나 약함)' 등. 한 노동자의 상태가 일터의 다양한 연관 고리에 영향받아 구성되는 산물이라는 사실을 탈각시켜버리고 오로지 그 개별 노동자의 원래 속성인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일종의 물신주의와 다르지 않다.
(김영선, 『존버씨의 죽음』中에서)
존버란 무엇인가. 존나 버티다의 약자. 어떤 일에서든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자가 이긴다며 버팀을 치켜세워주는 말로 쓰인다. 근데 버티면 승리할까. 다들 그런다니까 존버 해봐. 하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 사회에서는. 『존버씨의 죽음』은 일터에서 죽어간 존버씨와 죽어가는 산 자 존버씨의 행적을 쫓는다. 과로 죽음과 과로 자살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문을 인용하면서도 가독성을 잃지 않는 책이다. 일하러 갔는데 왜 죽는단 말인가.
밑줄을 그은 부분은 나의 사고와 표현력이 부족해 말하지 못한 고통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의 성격이 약하다는 것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고. 나는 잘 웃고 잘 떠드는 사람이었다. 일을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 부류였다. 바뀌고 있었다. 웃지 않고 말하지 않으며 일을 줘도 하기 싫어서 대답조차 침묵을 가진 뒤에 했다. 내가 봐도 한심하게 바뀌고 있었다. 일을 하다 약국으로 달려가 안정제를 사 먹었다. 끝나고도 사 먹었다.
궁금한 것은 그 힘듦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공감되는가였다. 고용불안을 매개로 경쟁을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의 무게에 눌려 고립되고, 타자의 고통에 다다르는 데 어려움을 겪어가 심지어 무감각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베라르디는 무감각과 비공감을 우리 시대의 윤리적 재양이라고 진단한다.
(김영선, 『존버씨의 죽음』中에서)
안 믿는 것 같아서 녹음까지 해서 들려줬다. 몇 십분의 긴 녹음을 듣고도 어떤 말도 하지 않더라. 힘들었겠네. 한 마디를 바란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욕을 하지 않아서? 때린 게 아니어서? 그랬다면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 녹음 속의 언어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언어였다. 사는 게 팍팍해서 남의 어려움은 보지 못하게 된 건가. 자신이 겪은 게 아니라서 공감이 되지 못하는가. 무감각과 비공감의 자세로 살아가는 자에게 나는 무기력했다.
일하는 동안 책을 많이 샀다. 기분 나쁨과 몸의 힘듦을 풀 데가 없어서. 예전보다 몇 십만 원 더 벌었는데 더 썼다. 벌어도 버는 게 아니었다. 산 책의 제목이 가관이다. 『존버씨의 죽음』, 『아주 편안한 죽음』, 『말론 죽다』, 『평범한 인생』. 사람이 힘들어서 죽겠다는데 원래 그 사람은 그러니까 변하지 않으니까 참고 가자는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를 듣는 동안 몸에 이상이 왔다. 눈을 자주 깜빡이고 고개를 자꾸 갸우뚱하고 키보드를 치는데 손이 떨리는. 틱 증상이었다. 호흡이 불안해지면 화장실로 도망가 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서 존버하지 못했어.
『존버씨의 죽음』의 마지막에는 과노동 저지의 방법이 나온다. 노동조합, 기업, 개인이 해야 될 지침을 알려준다. 노동조합과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모르겠고 개인이 해야 할 일에 밑줄을 그었다. 연차휴가는 할 수 있는 한 다 챙겨 쉬라는 말. 내가 한 달 만근해서 생긴 연차 쓰겠다는 것도 눈치 주면서 못 쓰게 해놓고 이제서야 선심 쓰듯 연차까지 사용해서 쉬라는 말.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냐는 뒤끝 쩌는 말. 이틀만 견디면 된다. 이틀. 이틀만 존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