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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씨의 죽음

존버씨의 죽음

: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리뷰 총점8.5 리뷰 2건 | 판매지수 312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top100 9주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458g | 140*210*30mm
ISBN13 9791168730007
ISBN10 116873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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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는 글: 과로와 죽음의 거리
오늘도 버텨야 하는 삶 | 언어 없는 사건, 개념 없는 현상 | 견고한 과로+ 성과체제

1장. 살아가는 혹은 죽어가는 삶

1. 존버씨의 죽음
왜 존버씨의 죽음을 봐야 하는가? | 과로죽음의 반복, 켜켜이 쌓인 폭력의 증거 |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죽음 | 더는 이렇게 취급당하지 않겠다

2. 번아웃과 일터 은어
번아웃증후군,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 | 고통이 각인된 일터 은어들 | 핏빛 자본주의 세상

3. 괴롭힘은 갈수록 심해진다
~하라, ~하라, 더 ~하라 | ‘효율’이라는 이름, 위험의 외주화

2장. 특별한 또는 특별하지 않은 죽음

1. 업무상 정신질환을 어떻게 볼 것인가?
새로운 착취 양상 | 정신질환 유발하는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

2. 성과 장치는 죽음조차 개별화한다
투견장에서 미소 짓는 건 투견주일 뿐 | 또 다른 투견장, 실적이 곧 인격인 세계 | 성과주의 담론이 유도하는 것

3. 성과주의와 금융 노동자의 자살 사건
밥값 스트레스 | “미치도록 단 커피 주세요” | 우울증 블랙홀 | 실적-위법-자살의 연관고리 | 욕값도 월급에 포함

4. 한 경마장에서 일어난 죽음의 행렬
누구도 살아남기 힘들다 | 죽음이 말하는 것 | ‘선진경마’라 이름 붙은 실험의 도구 | 이런 일은 또 반복될지 모른다

5. 부품으로 전락한 개발자들
연이은 사망 사고 | ‘언제나’ 크런치 모드 | 혁신적인 프로세스, 낡은 조직문화 | 착취하기 좋은 구조 | 소작농화

6.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 우정사업본부
또 죽어간다 |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 비밀스러운 알고리즘 vs 현장 노동자의 온도 차이 | 현장 목소리에 기초한 대안 찾기

7. 왜 힘든데도 일을 계속하는가?
개인적인 것? 문화적인 것? 자발적인 것? | “회사를 중심으로 삶을 조직하라” | “끊임없이 경쟁하고,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라”

8. 그만두지 못함의 사회학
“그렇게 힘들면, 그냥 그만두면 될 거 아냐?” |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한 이유 | 우리의 일상 화법도 바꿔야 한다 | 우리에게도 자살 감정이 꽤 퍼져 있다

9. 4차 산업혁명 발 과로위험
시간권리 박탈 | 당신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10. 알고리즘 노예가 되다
휴식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 노동자를 통제하는 새로운 기술

3장. 재난, 불평등, 권리

1. 코로나19와 불평등
파국적 불안 | 박탈되는 | 과로하는 | 무력화된

2. ‘최전선 영웅’의 죽음
사건: 공무원 과로사 | 질문: 노동인권은 재난과 양립할 수 없는가? | 장치: 복무규정과 봉사자 이데올로기 | 예외적 사례? 구조에서 비롯된 사건!

3. 이주노동, 좌우간 외출 금지
소, 돼지, 딸기랑만 지낸다 | 해고 위협, 엄습하다 | 무권리, 여전하다

4. 재난 노동자의 목소리는 없었다
위험 업무를 거부할 권리 | 개별 죽음을 가로지르는 공통분모 | 직업정신 vs 노동인권 | 재난 이후의 목소리들 | 사람·권리 중심의 재난 대응이란?

4장. 승인과 불승인 사이

1. 산재는 어떻게 승인되는가?
정신적 이상 상태 | 정신적 이상 상태의 내용과 특징 | 자살 전 일어난 사건 | 과거 치료력에도 불구하고 승인된 사례

2. 산재는 어떻게 불승인되는가?
개인 취약성: 환경 요인+성향 요인 | 개인 취약성: 과거 치료력 | 경력, 적응, 통상적인 수준이란 이유로 불승인 | 유사 사건에 대한 판정 내용 비교 | 기타 불승인 사례

5장. 현재의 시간, 시간의 미래

1. 어쩌다 과노동
노동시간이 다시 길어지고 있다 | 어쩌다 이런 시대로 들어섰을까? |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까?

2.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는 왜 사라지는가?
노동시간 정책 | 과로사회 탈출을 선언했지만… | 자본의 백래시 | 현실은 여전히 지옥

3. 우리는 어떤 시간의 미래를 원하는가?
시간을 민주화하는 과정 | 자본의 역공에 대항하기 | 과로+성과체계 낯설게 보기 | 불가피성의 논리 걷어차기 | 감수성 길러내기 | 시간을 정치화하기

마치며: 왜 죽음에서 과로는 누락되는가?
부록: 산재 판정의 승인, 불승인 사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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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건은 발생했는데 뭐라 이름 붙일 언어가 없는 경우가 있다. 바로 과로사·과로자살 이야기다. 과로+성과체제가 유발하는 과로죽음이 늘어나고 있다. 쥐어짜고 태우는 식의 성과 장치가 유발하는 정신질환과 과로자살은 더 그렇다. 이 책은 과로죽음의 ‘과로’를 조명해 과로죽음이 과로+성과체제의 필연적인 죽음임을 밝히고 과로와 죽음의 거리를 멀어 보이게 하는 자본주의적 담론/장치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 p.7

비극의 피해자는 또 한 번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비참을 유발하는 폭력의 지점은 면죄부를 받는다. 일터의 착취와 폭력은 재생산되고 남은 노동자들은 각자도생하는 길만이 유일한 길임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과로죽음이 개인적인 비극으로 처리되는 그런 일터/사회에서의 생존법은 각자도생을 선택하는 것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 존엄과 관용을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p.9

그렇지만 과로죽음으로 추정됨에도 ‘과로’가 사장되어버리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다. 다시 과로와 죽음을 거리로 표현해보면, 그 거리는 꽤 먼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죽음과 업무와의 연관성이 없다는 담론, 프레임, 이데올로기, 언어가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 p.24

마지막으로 과로죽음이 어이없게도 반복 발생하는 일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죽음의 장소를 면밀히 관찰해 과로죽음의 반복성에 대해 분석한다. 그 반복성은 특수한 현상인지, 과로+성과체제의 보편적인 현상인지를 질문해본다. 이 책은 특수성의 반복됨 그 자체가 과로+성과체제의 집합적인 비극이라는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이다.
--- p.27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과로죽음은 매일같이 발생한다. 어떤 곳에서는 반복되는 양상을 띤다. 사건 간 간격이 매우 짧은 걸 보면, ‘잦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사망 사건의 반복됨은 몇 개의 기사로도 확인된다. 사건의 빈도는 사망 사고조차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진부한 뉴스처럼 되어버린 시대라고 할 정도로 다반사다.
--- p.28

과로죽음을 예외나 우연으로 치부하는 일련의 담론에 균열을 낼 필요가 있다. 과로죽음에서 ‘과로’를 보이지 않게 하는 논리도 문제제기의 대상이다. 과로죽음을 과로위험이 켜켜이 쌓여 발생한 체계적인 폭력의 증거로 드러내야 한다. 동시에 과로자살은 과로+성과체제의 폭력성에 대해 ‘더는 이렇게 취급당하지 않겠다’는 분노와 저항의 비극적인 흔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존버씨의 목소리에 담긴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 p.31

실적 쥐어짜기식 성과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맥락에서는 심지어 과로사/과로자살조차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 p.62

자살은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조직의 모순을 함축하는 집단적인 비극이다. 노동자 자살은 일터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자살이 인간적 존엄이 불가능한 절망 상태를 보여주는 행위임을 감안할 때, 노동자 자살은 분명 존엄과 권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일터의 집단적 비상 상태를 나타내는 증거다.
--- p.70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에 잦아진 크런치 모드, 무리한 일정, 갑작스런 지시, 이벤트의 상시화, 위험의 전가, 부품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 유사-하청화 또는 소작농화까지 온라인에서 모바일로의 플랫폼 변화와 함께 야기된 새로운 위험 요소가 교차하면서 게임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의 결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 p.117

망자 존버씨의 죽는 게 나을 만큼, ‘나를 버릴 만큼’ 힘들었던 상황은 빈번한 야근, 새벽 퇴근, 강압적인 업무 지시, 가혹한 성과 압박, 장시간 노동을 방조하는 고질적인 제도(포괄임금제 등), 빡빡한 인력 운용, 과중한 업무량, 직장 내 괴롭힘, 시도 때도 없는 이벤트 호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 p.148

그런데 어딜 가봐야 똑같다는 자조의 감정은 그만둠을 포기토록 한다. 또한 그만두고 싶어도 불안정한 노동 현실에서 또 한 번 깊은 좌절감만 겪는다. 그만둬도 갈 데가 없고 어딜 가나 똑같다는 탈출구 없음의 상태는 자살을 일종의 마지막 탈출구로 선택하게 한다. 탈출구 없음의 상태는 탈출 열망과의 상관성이 높다.
--- p.151

모든 차원의 개혁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새로운 감각과 감수성을 길러내는 일이다. 시간권리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자유시간을 주체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촉구된다. 근면 신화의 구속력을 떨어뜨리면서 과로+성과체제로의 회귀를 막는 그런 권리에 대한 감수성 훈련 말이다.
--- p.269

과로죽음을 개인적인 사유로 연결하는 프레임은 일터 내 구조적 위험의 지점을 은폐한다. 착취를 탈정치화하는 언어가 활개 치는 맥락에서 과로죽음의 고통은 타자화된다. 성과주의 시스템은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도록 지지하는 감각보다는 각자도생의 감각을 강화한다.
--- p.271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존버씨의 목소리,
왜 ‘살아가는 삶’이 아닌 ‘죽어가는 삶’을 사는가?


1장은 왜 존버씨의 시간을 다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견디고 버틸 것을 요구하는 노동의 세계에서 우리 존버씨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노동시간이 세계 최고에 달하는 작금의 과로체제에서 무엇이 존버씨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왜 우리의 일터는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는가? 왜 우리는 나다운 삶,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가? ‘살아가는’ 삶이 아닌 ‘죽어가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로죽음에 얽힌 존버씨의 목소리를 읽는다.

2장은 금융 노동자, IT 노동자, 경마기수, 집배원 등의 과로죽음 사건을 다룬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고통의 시스템을 샅샅이 해부한다.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된 우리 시대 일터의 현실을 분석한다. 특히 각 업계에서 쓰이는 은어들(크런치 모드, 콜수, 밥값, 욕값, 분급, 경쟁성 상금, 실시간 UPH, 순증, 겸배)을 통해 각종 경쟁적인 성과 장치와 자살 감정 간의 상관성을 탐색한다. 프로세스는 혁신적이지만, 조직문화는 여전히 낡았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갖은 어려움도 드러낸다. 왜 과로죽음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를 추적한다. 특히 과로죽음이 반복돼 나타나는 우정사업본부와 부산경남경마공원의 실태를 집중 분석한다.

“반복된 자살은 여러 면에서 기이하다. 우선, 한 곳에서의 자살률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일반 인구의 자살 십만인율과 비교해도 그렇고 일반 기업의 자살률에 비해서도 상당한 정도다. ‘여가선용’의 장소가 아니라 ‘죽음의 장소’라 일컬을 만하다.”(89쪽) 그리고 과로죽음 사건이 반복됨에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방조되고 무관심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과로죽음은 과로+성과체제가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부정의의 산물임을 밝힌다.

3장은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과로죽음을 다룬다. 재난이 발생하면 최전선으로 뛰어가야 하는 재난 노동자들이 있다. ‘비상 상황’은 이들을 사명감, 책임감, 직업정신으로 포장해 동원한다. 그들에게는 위험 업무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 희생, 헌신 등 재난 이후 출몰하는 수많은 마법의 언어가 어떻게 과로죽음과 연결되는지를 분석한다. 과로위험을 특정 집단에 전가하는 방식은 불평등을 심화하는 재난 대응책임을 지적하고, 재난 대응의 첫걸음은 인권 관점에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재난을 ‘예기치 못한 것’으로 여기고 ‘희생과 사명감’을 동원하는 방식의 대응은 적절치 못하다. ‘언제라도 맞닥뜨릴 수’ 있고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 ‘반복’될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 요청된다.”(214쪽) 업무 관련한 자살이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자살이 정신 이상 상태에서 발생한 것임을 밝혀야 하고 그 정신 이상 상태가 업무와 관련되었음을 밝혀야 한다.

4장은 산재 판정의 승인 케이스와 불승인 케이스를 대상으로 승인 또는 불승인의 근거로 표현되는 언어를 비교한다. 판정 사례를 보면 승인/불승인의 경계가 그리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통상적인’이란 표현이 대표적이다. 자의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발견된다. 우울증은 다른 모든 요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작용해 불승인의 근거로 설명되는 경우도 잦다. 이는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공통의 사회적 언어가 부재한 데서 빚어지는 문제적 양상이 아닌가 싶다.

5장은 현재의 시간구조를 반추하고 건강한 시간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세계의 흐름은 노동시간의 단축 경향이 아니라 오히려 과노동이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밝힌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도 마찬가지다. 구속력이 약한 노동기준법 등 법제도 요인 이외에 세계화, 정보통신혁명, 소비자본주의, 노동의 규제완화가 과노동을 야기하는 원인임을 밝힌다. 노동시간 개선책,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과 관련해 왜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는 늘 반영되지 않는지도 탐색한다. 과로+성과체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그 대안도 고민해본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EU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 하지만 과로에 대한 한국인의 주관적 인식은 EU 국가에 비해 상당히 낮다. 일에 투여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음에도 이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는 무감각 상태에 이른 것이다. 낯설게 바라보고 거리 두기 해야 할 대상은 과로+성과체제 그 자체다.”(267쪽)

노동 VS 자본,
과로죽음이란 무엇인가?


과로죽음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돌연사(과로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과로자살)를 말한다. 그렇지만 과로죽음에 대한 실태 파악은 전무한 상태이고, 사회적 사실을 담아내는 개념이나 법제도가 부재한 실정이다. 아직까지 과로죽음은 “언어 없는 사건, 개념 없는 현상”일 뿐이다. 이 책은 이런 과로죽음에 개념과 언어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과로죽음을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치열하지만 개념과 언어의 부재로 노동과 자본은 이내 곧 소통 불가능한 전쟁 상태에 이른다. 죽음을 둘러싼 각축에서 노동은 사회적 타살, ‘살인적인’ ‘비정상적인’ 노동시간, 현대판 노예제, 인력 충원, 업무 연관성을 지목하고 강조한다. 반면 자본은 연관성 없음, 사실과 다름, 통상적인 수준, 견딜 만한 정도,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업무는 아님, 효율과 유연화, 인력 재배치를 설파하고 내세운다.”(8쪽)

저자는 과로죽음에 대한 사회적 설득과 공감을 담아낸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로죽음은 제대로 규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로죽음은 분명 ‘사회적 타살’이고, 자주 반복되지만 그 죽음을 놓고 많은 경우 개인적인 것,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것, 갑작스런 일로 처리되기 일쑤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의외로 강력한 프레임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이런 개인 탓을 내면화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다. 이 같은 현상은 과로+성과체제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존버씨의 절망,
과로죽음에서 ‘과로’는 왜 누락되는가?


“과로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적인 죽음이지만 사회·조직의 구조적 모순을 담지한다는 의미에서 집합적인 비극이다. 지금 이 시대 노동자가 어떻게 취급받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거울이다.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한 비상 상황, 절망 상태를 나타내는 사회적인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로죽음을 개인적인 비극으로 보는 시각이 꽤 많다. 이런 시각은 왜 많은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그 자체로 따져 물어야 할 연구 대상이다.”(24쪽)

과로죽음이 반복해 발생하고 있다. 돌연사하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런 일이 매일같이 일어난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우정사업본부 등과 같은 곳에서는 반복해 일어나기도 했다. IT 노동자, 금융 노동자, 택배 노동자, 물류 노동자 등의 자살 사건도 반복해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이 과로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크다. “평소 건강관리를 못 해서” “정신 상태가 글러먹어서” “원래 아픈 데가 있어서”와 같이 개인의 취약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언어로 노동자의 죽음을 묘사한다. 이렇게 되면 일터에서 일어난 구조적인 모순은 드러나지 않게 되고, 사망 원인은 ‘개인의 취약성’에 맞춰지게 된다.

이런 과로죽음을 거리로 표현해보면, 과로와 죽음 간의 거리는 가까우면서도 꽤 멀다. 가까운 이유는 과로죽음은 과로+성과체제에서 반복되는 사건으로 꽤 일반적인 죽음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사건이다. 그 역사가 오래된 점도 그렇고 최근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사회적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거리는 꽤 멀다. 죽음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분리하려는 언어, 담론, 장치, 권력이 꽤 촘촘하고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면서 과로죽음에서 과로를 떼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죽음을 유발하는 노동조건은 은폐되고 과로죽음은 취약한 개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여러 죽음 사건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과로죽음이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이다.

또한 과로자살에서 과로의 누락은 자살 예방 정책에서도 발견된다. 개념이 부재하고 정책이 부재한 탓에 과로자살 사건은 우울을 유발하는 구조 대신에 우울을 앓는 개인에 방점이 찍히고, 이에 대한 대안은 괴롭힘 방지나 착취 근절 같은 집합적 해법이 아니라 마음 치유나 정신 상담, 심리 치료 같은 개인 단위의 해법에만 집중된다.

존버씨의 탈출 혹은 저항,
“더는 이렇게 취급받을 수 없다”


“한 달에 많이 서면 12번의 당직을 섭니다. 이게 어찌 사람 사는 일입니까. …… 이제 조금은 쉬어야겠네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는데, 너무 많이 힘들어 이제는 내려놓을려구요.”(부산경남경마공원 말관리사 유서, 88쪽)

존버씨의 과로죽음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특히 실적 압박의 폭력성이 노동자들을 불안감+쥐어짜임+타들어감+짓눌림+무력감+고립감 상태로 내몰아 자살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는 과로자살 사건을 보면 볼수록 선명해지는 공통점이다.

그렇다고 존버씨의 과로자살이 무기력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만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더는 이렇게 취급받을 수 없다”와 같은 분노가 담긴 행위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행복 없이 살아가는 삶, ‘살아가는’ 삶이 아닌 ‘죽어가는’ 삶에 대한 탈출행위 혹은 저항행위로서 말이다.

“비참하게 살아가는 대신 비참과 작별하겠다는 실천인 것이다. 이같이 읽으려는 이유는 자살 행동의 많은 경우는 문제, 딜레마, 고통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몸부림, 고민, 소통, 각오, 계획, 시도이기 때문이다. 자살이 통상 우울증, 무기력, 무력감, 정신적 이상 상태로만 편향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다.”(25쪽) 과로자살은 일터에서의 인간적 삶이 불가능한 비상 상태를 보여주는 사건이자 ‘더는 이렇게는 취급당하지 않겠다’는 존버씨의 비극적 저항의 표식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죽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된 일터


과로죽음은 지금 이 시대 노동자가 얼마나 막 취급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버씨의 과로의 성질도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건강 문제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자본주의적 착취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 발전주의 시대 노동시간은 작업장 안에서만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작업장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이전에는 근면하게 일하며 자신의 노동력을 갈아넣으면 됐지만 지금은 정신과 영혼을 연료로 태우는 식의 압박이 이루어진다.

질식할 것 같은 경쟁 시스템, 성과 압박이 작동되는 세계에서 존버씨는 끊임없이 정신적 고통을 당해야 한다. 최근 들어 과노동과 실적 압박을 이유로 과로죽음이 늘어나는 이유다. 작금의 과로죽음은 발전국가 시기 이후 만성화된 과로위험에 신자유주의적 성과 장치, 기술 장치 같은 새로운 위험 요인이 덧대지면서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과로죽음의 유형으로는 게임이나 IT, 방송, 웹툰과 같이 문화콘텐츠를 제작하는 노동자의 과로죽음이나 보험·증권 등 금융 노동자나 방문판매관리 노동자의 과로죽음, 로켓배송·샛별배송 같은 야간노동+불안정노동에 따른 택배·물류 노동자의 과로죽음을 들 수 있다. 산재 인정 기준에 못 미치는 노동시간임에도 실적 압박이나 마감 압박, 집중 근무, 야간노동 같은 업무의 질적 요인에 따른 과로죽음 사례다.

핵심은 ‘분초 단위로’ ‘더욱 높아지는’ 그래서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실적 압박·성과 평가 등의 개별화하는 경쟁 장치가 턱밑까지 차오른 과로죽음의 위험을 ‘격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죽음을 발전주의 시대의 과로죽음과 구별해 다뤄야 하는 이유다.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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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과로를 강요하는 사회가 만든 비극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구**방 | 2022.12.2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책 제목이 흥미롭다. ‘존버’라는 비속어가 정면에 나오는 게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불편한 건 이 책에 실린 수많은 과로사 사례들과 열악한 노동조건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보다는 악화시키는 데 여념이 없는 2022년 우리나라의 집권세력이다.   조금은 말랑할 것 같은 이 책은 사실 사회학 연구서다. 과로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자는 이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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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흥미롭다. ‘존버’라는 비속어가 정면에 나오는 게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불편한 건 이 책에 실린 수많은 과로사 사례들과 열악한 노동조건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보다는 악화시키는 데 여념이 없는 2022년 우리나라의 집권세력이다.

 

조금은 말랑할 것 같은 이 책은 사실 사회학 연구서다. 과로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자는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례들을 들며 스케치 한다. 특히 최근 코로나라는 비상상황이 일어나면서 안 그래도 열악했던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었지만, 비단 문제는 근래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물질중심적 사고는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선으로 여기는 체제다. 이 때 줄일 수 있는 비용 중 시설과 관련된 것은 한계가 있고, 결국 인건비를 줄이는 식으로(필요한 인력보다 적은 수의 직원으로 일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과로의 구조화가 일어나게 된다.

 

또, 기술의 발전으로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는 게 한 몫을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합당한 노동기준을 요구할 수 없는 개인사업자로 취급되고,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감이나 조직적인 행동도 어렵다. 꼭 같지는 않지만, 최근 화물노조 파업을 두고 정부가 보인 조치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나는데, 분명 특정한 회사에 소속되어서 운송을 하는 대가로 대금을 지급받는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이기에 애초에 노조를 구성할수도, 파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어디까지나 법적으로는 그랬다).

 


 

 

이런 구조화된 악조건들로 인해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제도 마련은 더디기만 하다. 친 재벌 정당의 집요한 반대와 발목잡기로 인해 상당부분 누그러진 형태로 입법된 주당 52시간 노동제와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법률이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졌지만 온갖 빠져나갈 구멍투성이이고, 그나마 정권이 바뀐 후에는 간신히 만들어둔 제도들도 쓰레기통에 처박히거나 개정될 위기에 처해있다.

 

사실 이런 규정들은 무슨 한국에만 있는 특별히 반 기업적 법도 아니다. 입만 열면 국격 운운하며 그 일원이 되고 싶어 안달인 선진국들에서는 거의 대부분 갖춰진 최소한의 장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쪽에서는 위보다는 아래를 바라보는 이중적 태도를 지닌 이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하기 바쁘다.

 

책 후반에는 흥미로운 통계가 하나 실려 있는데,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주된 원인은 앞서 언급된 것과 같은 복잡한 이유들 때문이고(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루어진 법 개정 때문에 소폭 줄었다고 하는데,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이렇게 늘어난 노동시간의 질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삶이 좀 더 편해질 거라는 낭만적 예상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향해 한 발도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역시 좀 더 많은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니 쉴 새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는 거니까. 문제는 여기에 투입되어야 하는 인건비인데, 기업 운영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부분인 바로 임금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강요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슨 소련 시절 계획경제나 중국의 대약진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개별 기업에 인력을 더 뽑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정도만 가능한데, 이 정도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일의 양을 줄이거나 속도를 늦추는 방식이 남은 대안일 것 같은데, 기업 운영자들의 사고엔 이런 선택지가 아예 배제되어 있는 것 같다. 어쩌자는 건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주제와 관련된 여러 내용들이 잔뜩 담겨 있는 책인데, 그 구성이 썩 체계적으로 잘 되어있다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다양한 사례 모음집 사이에 저자의 분석이 살짝살짝 비추는 정도.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나 독창적 해석 같은 것도 부족하다. 다만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산발적으로 접하던 문제를 이렇게 한 권에 모아서 읽어보는 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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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나는 살고 싶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돼**스 | 2022.02.24 | 추천3 | 댓글0 리뷰제목
  (주의: 다소 많이 어두운 이야기가 담긴 리뷰입니다. 지금 몹시 힘들거나 지친 분들은 읽기를 피해주세요. 좋았던 기분도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심정으로 그만둔다고 말하고 후임자 오면 인수인계까지 하겠다고 했을 때.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단점과 내가 그만두게 된 이유를 글로 적어달라고. 나는 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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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다소 많이 어두운 이야기가 담긴 리뷰입니다. 지금 몹시 힘들거나 지친 분들은 읽기를 피해주세요. 좋았던 기분도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심정으로 그만둔다고 말하고 후임자 오면 인수인계까지 하겠다고 했을 때.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단점과 내가 그만두게 된 이유를 글로 적어달라고. 나는 해코지가 무섭다고 했다. 절대 그럴 일 없고 그렇게 되면 종이를 찢어버리겠단다.

 

후임자가 와서 오래 근무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를 내보내기 위한 용도로 쓰겠단다. 자신은 앞날을 미리 걱정하는 편이라서 그런다고도. 내가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죽을 것 같다고 말한 건 다 뭔가. 견딜 수 없어서 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증거가 필요할까. 참으로 이기적인 부탁이었다. 글 쓰는 거야 누워서도 쓸 수 있으니까. 알았다고 했다.

 

떠올랐다. 대장금의 명대사.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힘들다. 어찌 힘드냐. 힘들어서 힘들다고 하는데 어찌 힘드냐고 물으시면 힘들어서 힘들다. 라고는 할 수 없어서 전부 이야기했다. 일이 생기면 다급해져서 고함치고 늘 윽박지르듯 말한다.

 

일을 주고 1분도 안 지났는데 다 했냐고 묻는다.(계속 이러니까 나를 놀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실수를 하면 왜 잘못했냐, 뭐가 잘못됐냐.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겠냐. 집요하게 묻는다. 일하고 있는 거 뻔히 아는데도 옆에 와서 뭐 하냐고 계속 묻는다. 다른 사람 앞에서 하대하고 무시하듯 말을 한다. 반말은 기본 장착. 빨리하라고 재촉해서 주눅 든다. 안 그래도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투른데 자꾸 그러니까 실수를 반복한다.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일이 생기면 나에게 떠넘긴다. 일의 주체를 자신에게서 나로 넘긴다. 교묘하게. 나를 비서 부리듯 대한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게 나의 업무라고 윽박질렀다. 내 성격을 네가 다 이해해야 한다고. 대체 얼마나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 그러느냐. 그동안 편한 일만 했느냐. 너무 힘들어서 애인한테 말했더니 직장으로 애인이 찾아오는 막장 드라마에도 안 나올 것 같은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도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하고자 한 사람 앞에서 자신의 변명만을 무한 반복했다. 고칠 수 없단다. 자신의 비위를 맞추면서 일을 하라니. 나는 공부하고 자격증 따서 취업을 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며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다. 상꼰대. 내가 그런 소리를 듣고서 네 네, 돈 버는 거 다 힘들죠, 그렇게 해서 돈 버는 거죠. 수긍하고 순응하면 계속 이런 더러운 세상이 될 것 같아,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나쁜 놈들이 웃으며 살게 될 것 같아. 그만둔다.

 

김영선의 『존버씨의 죽음』을 읽어가다 나는 그간 내가 느낀 감정이 실재하는 것이었구나 안도했다. 호흡 불안, 고립감, 소외감, 통증, 불안감이 나를 지배했다. 퇴근을 했어도 쉬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쉴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감정이 없다'를 속으로 되뇌었을까. 나는 인간인데. 감정이 있는 인간인데. 비인간으로 만들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까.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일을 했다. 자기 편한 쪽으로 업무를 분담하는 꼴을 보고서도. 일이 안 되면 왜 안되는가 집요하게 추궁하는 걸 들으면서도. 나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 없다를.

 

기질론은 낡아빠져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이 동원하는 여전한 프레임으로 언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다. '쟤는 원래 예민해서 그래' '나약해 빠져가지곤'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어' '완벽주의 성향' '유리 멘탈·두부 멘탈·쿠크다스 멘탈(유리, 두부, 쿠크다스처럼 부러지기 쉬운 멘탈)' '멘존약(멘탈 존나 약함)' 등. 한 노동자의 상태가 일터의 다양한 연관 고리에 영향받아 구성되는 산물이라는 사실을 탈각시켜버리고 오로지 그 개별 노동자의 원래 속성인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일종의 물신주의와 다르지 않다.

(김영선, 『존버씨의 죽음』中에서)

 

존버란 무엇인가. 존나 버티다의 약자. 어떤 일에서든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자가 이긴다며 버팀을 치켜세워주는 말로 쓰인다. 근데 버티면 승리할까. 다들 그런다니까 존버 해봐. 하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 사회에서는. 『존버씨의 죽음』은 일터에서 죽어간 존버씨와 죽어가는 산 자 존버씨의 행적을 쫓는다. 과로 죽음과 과로 자살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문을 인용하면서도 가독성을 잃지 않는 책이다. 일하러 갔는데 왜 죽는단 말인가.

 

밑줄을 그은 부분은 나의 사고와 표현력이 부족해 말하지 못한 고통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의 성격이 약하다는 것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고. 나는 잘 웃고 잘 떠드는 사람이었다. 일을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 부류였다. 바뀌고 있었다. 웃지 않고 말하지 않으며 일을 줘도 하기 싫어서 대답조차 침묵을 가진 뒤에 했다. 내가 봐도 한심하게 바뀌고 있었다. 일을 하다 약국으로 달려가 안정제를 사 먹었다. 끝나고도 사 먹었다.

 

궁금한 것은 그 힘듦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공감되는가였다. 고용불안을 매개로 경쟁을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의 무게에 눌려 고립되고, 타자의 고통에 다다르는 데 어려움을 겪어가 심지어 무감각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베라르디는 무감각과 비공감을 우리 시대의 윤리적 재양이라고 진단한다.

(김영선, 『존버씨의 죽음』中에서)

 

안 믿는 것 같아서 녹음까지 해서 들려줬다. 몇 십분의 긴 녹음을 듣고도 어떤 말도 하지 않더라. 힘들었겠네. 한 마디를 바란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욕을 하지 않아서? 때린 게 아니어서? 그랬다면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 녹음 속의 언어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언어였다. 사는 게 팍팍해서 남의 어려움은 보지 못하게 된 건가. 자신이 겪은 게 아니라서 공감이 되지 못하는가. 무감각과 비공감의 자세로 살아가는 자에게 나는 무기력했다.

 

일하는 동안 책을 많이 샀다. 기분 나쁨과 몸의 힘듦을 풀 데가 없어서. 예전보다 몇 십만 원 더 벌었는데 더 썼다. 벌어도 버는 게 아니었다. 산 책의 제목이 가관이다. 『존버씨의 죽음』, 『아주 편안한 죽음』, 『말론 죽다』, 『평범한 인생』. 사람이 힘들어서 죽겠다는데 원래 그 사람은 그러니까 변하지 않으니까 참고 가자는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를 듣는 동안 몸에 이상이 왔다. 눈을 자주 깜빡이고 고개를 자꾸 갸우뚱하고 키보드를 치는데 손이 떨리는. 틱 증상이었다. 호흡이 불안해지면 화장실로 도망가 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서 존버하지 못했어.

 

『존버씨의 죽음』의 마지막에는 과노동 저지의 방법이 나온다. 노동조합, 기업, 개인이 해야 될 지침을 알려준다. 노동조합과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모르겠고 개인이 해야 할 일에 밑줄을 그었다. 연차휴가는 할 수 있는 한 다 챙겨 쉬라는 말. 내가 한 달 만근해서 생긴 연차 쓰겠다는 것도 눈치 주면서 못 쓰게 해놓고 이제서야 선심 쓰듯 연차까지 사용해서 쉬라는 말.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냐는 뒤끝 쩌는 말. 이틀만 견디면 된다. 이틀. 이틀만 존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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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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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된 책입니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고*형 | 2022.03.03
구매 평점5점
소설같은 제목이라서 샀는데 소설이 아니네요 굉장히 학술서적입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YES마니아 : 플래티넘 u*******g |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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