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엑스로 마주한 지구 반대편 세상
헬프엑스가 여행 경비를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는 방식임은 분명해요. 보통 여행 경비는 대부분 숙박비와 식비니까요. 제가 헬프엑스로 여행하면서 쓴 돈이 얼마인지 들으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처음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한 달에 50만 원 정도 썼고, 남 아메리카에서는 한 달에 많아도 20만 원을 넘기지 않았어 요. 특이하게도 페루, 아니 남아메리카에는 헬프엑스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비용(하루 평균 7천~8천 원 정도)을 받는 호 스트가 많은데, 그마저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교환’하는 친환경 농장에 머물렀을 때는 한 달에 10만 원도 채 들지 않았어요. 저도 결산해보고 놀랐답니다.
하지만 단지 비용을 아끼는 방법으로만 헬프엑스를 대하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고도 유리 자르는 도구로만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헬프엑스는 단연코 그 이상의 무엇이니까요. 헬프엑스로 여행하면서, 저는 ‘세상 은 넓다’라는 표현이 결코 진부한 말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상상할 수조차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봤고, 그들과 제가 다르지 않음을 마음 깊이 느꼈지요. 헬프엑스로 여행하며 보고 들은 ‘삶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경험보다도 절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 p.15~16
도와드릴까요? 먼저 다가가야 해
헬퍼로서 호스트와 좋은 관계를 맺는 첫 번째 팁은 이쪽에서 먼저 ‘도와줄까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때는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진정한 ‘도움’이 되니, 내 쪽에서도 기분이 좋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먼저 돕겠다고 하는 편이 낫다. 그런 일이 쌓이면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두 번째 팁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하기 싫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아니라면 일단 하루 정도는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여전히 하기 싫으면 그때 가서 이야기한다. 또 왜 하고 싶지 않은지 ‘예의 바르게, 우회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물론 그렇지만 헬퍼에게는 무엇보다 자존감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좋은 관계를 지속하며 오랫동안 머문 곳은 모두 헬퍼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했던 곳이었다.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공짜로 먹고 자는 사람을 헬퍼라고 생각하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은 헬프엑스 정신에 맞지 않는다.
헬퍼는 단지 노동력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헬퍼는 ‘외부인의 시선’을 가져다준다. 건강한 자존감으로 무장한 헬퍼는 여행자의 유연함과 창의성, 외국인의 신선한 관점을 선물처럼 가져온다. 현명한 이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관점, 바로 ‘낯설게 보기’다. 호스트는 헬퍼의 이러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 헬퍼도 자신의 강점을 정확히 알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바에는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마음이 가는 다른 일을 열심히 돕는 편이 낫다.
세 번째 팁은 ‘호스트 물건을 내 물건처럼’ 소중히 쓰는 것.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넬슨은 물건을 낭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휴지와 물은 개인적으로 사서 쓰란다. 처음에는 야박하다 싶었으나 곧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를 오래 집에 들였을 때 소모품은 개인이 알아서 구매해 쓰길 바랐다. 이를테면 세탁 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 소유로 생각해야 아끼는 법이다. 조금 나아간 생각이지만, 호스트의 물건도 그럴진대 하물며 지구는 어떻겠는가.
---- p.52~54
전기 없는 정글에 온 걸 환영해
페루 여행을 하면서 웬만한 비위생에는 단련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이 도미토리는 내가 허용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물쭈물할 새가 없었다. 어둠은 이미 시시각각 몰려오고 있었다. 프랑스 신입 A와 벨기에 신입 B는 이미 준비해온 시트를 씌워 잠자리를 만들고 모기장까지 완벽하게 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든.
짐을 풀기 시작했다. 내 평생 이렇게 헤드랜턴이 소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둠은 삽시간에 온 천지를 덮쳤고 불빛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핸드폰 손전등을 켰지만 다른 한 손만으로 무엇을 하기는 너무 불편했다. 세워두면 쓰러지고 줄로 매달자니 자꾸만 360도로 돌아가는 통에 눈이 부시기만 할 뿐 정작 필요한 곳에는 불을 비추지 못했다. 어둠에 눈이 적응하는 일만 해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시트 대용으로 사용하려던 우비와 담요는 더러운 매트리스를 덮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밖으로 나가 “누구 시트 남는 사람 없어요”라고 소리쳐야 했다. 다행히 V가 마침 깨끗하게 빨았다며 시트 하나를 빌려줬다. 너무 어두워서 짐 정리는 언감생심이었다. 간신히 갈아입고 잘 옷과 세면도구만 꺼내두고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밖으로 나왔다. E와 다른 헬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 p.115~116
지구와 인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
연결이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는 잊고 살아가지만 본래 모든 건 연결되어 있다. 생명은 순환의 원리를 따라 돌고 돈다. 우리가 더럽히는 물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뿐인가. 요일을 지켜서 내어놓는 쓰레기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베어내는 나무도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잘 정비된’ 도시에서는 이 모든 게 제각각인 것처럼 포장되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기 어렵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순환의 고리는 자연스럽게 보인다. 땅에 묻은 음식물 쓰레기는 썩어 거름이 되지만 썩지 않는 비닐은 그대로 남아 내후년 밭을 갈 때 모습을 드러낸다. 타고 남은 나무는 재가 되어 깨끗하게 흙으로 돌아가지만 어떤 것은 고약한 냄새와 독소를 내뿜으며 대기를 오염시킨다. 우리는 호흡하며 그것을 몸속에 넣는다.
우리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체로 잊고 살지만, 심지어 잊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화장품을 바르고 꾸며도 본래 얼굴은 그대로이듯 말이다. 나에게 정글은 포장을 벗긴 순환의 민얼굴 그 자체였다.
---- p.161~163
스페인 게이 커플과의 만남
“저기 말이야, 후안은 동성애에 열려 있는 사람이니?”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신변에 위협이 닥칠까 봐 동성 커플이라고 밝힐 수가 없었단다. 여행할 때도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특히 소도시나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그저 ‘친구끼리’ 여행한다고만 소개한다고 했다.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애정 표현도 삼갔다고.
“그럼, 후안은 모든 것에 열려 있어. 마치 정신적인 선생님 같아.”
---- p.216
뉴욕에서 마주한 코로나19
안타깝게도 뉴욕공공도서관이 코로나 사태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간단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도슨트 투어를 비롯한 모든 모임과 행사가 취소 또는 연기된 상태였는데, 아예 문을 닫는다니 마침내 올 게 왔구나 싶었다. 가볼 수 있던 게 새삼 운이 좋았지 싶었다.
브로드웨이도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문을 닫았다. 거리는 한산했다. 나는 어딘가 숨어들어 갈 곳을 찾아 달리는 쥐가 된 기분이었다. 주변에 차례차례 셔터가 내려지고 도망칠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바이러스 자체는 별로 겁나지 않았지만, 이런 시국에 호스트 집에 머무는 건 내 몸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 했다.
결국 의료 서비스도 좋지 않은 미국에 더 머무르는 건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 판단했다. 여행자보험도 만기되어(남미를 대비하기 위해 3개월 정도만 들었다) 더욱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간 지인을 찾아가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헬프엑스는 원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관광여행과는 거리가 멀어 접촉자가 많지 않기에 큰 지장이 없으리라고 기대했다.
사흘 뒤 목요일로 밴쿠버행 비행기표를 끊고 캐나다 전자 비자를 신청했다. 국가 간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 캐나다가 마지막 여행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지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 p.320~321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 환경운동이라는 새로운 여정으로 출발!
그간 뭘 놓치며 살아온 걸까. 남미에서 생각지 못하게 경험했던 ‘자연과의 연결’은 자연에 대한 나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상력이 대단히 협소하고 제한적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불과 몇백 년 전만 해도 선조들은 산을 하나의 생명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두려워했다.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고 커다란 나무를 베면 피를 흘린다고 믿었다.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었고, 산을 밀어버리는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우리는 선조들의 마음을 기꺼이 버리거나 혹은 버리도록 강요당했다.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자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숙고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환경조건은 개발 흐름에 저항할 만한 힘을 키워내지 못했다. 우린 ‘대자연’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땅에는 사람보다 자연이 우세한 곳이 별로 없다. 정글이나 대평원, 사막이나 4천 미터가 넘는 고산처럼 인간이 감히 손댈 생각을 하기 어려운 곳이 없다.
---- p.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