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다소 투박한 심해 잠수부의 언어다. 고도孤島 같은 외로운 실존의 소리 없는 비명이다. 여기와 저기, 과거와 현재, 더 구체적으로, 인사동과 태즈메이니아, 서울과 시드니가 섞이고 스민 흔적들이 불거진다. 윤희경의 시에는 이국의 지명과 풍물들이 단속적으로 끼어들고, 맥락 없이 소환되는 과거의 시간이 소용돌이친다.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이 장력張力의 장 안에서 서걱거린다. 이 서걱거림은 동화와 배제의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기우뚱거리는 세월을 이겨 내고, 고향 상실자로 변방을 떠도는 자가 묵묵히 견뎠을 불화의 징후다. 여기서 태 자리를 떠나 먼 곳을 실존의 자리로 삼아 안착한 호모 노마드의 고단한 숨결을 느끼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 장석주 (시인)
윤희경의 시어는 대담하다. 시적화자가 필요하다면 어떤 도발적이거나 섹슈얼한 워드도 직설적으로 끌어와 대범하게 차용한다. 공룡, 쏘가리, 표범, 군화 같은 직유는 과히 남성적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시의 출생지를 시의 부뚜막이라 부르기엔 마뜩잖다. 시의 광야라는 호명이 더 맞춤하다. 청석골을 서정의 우물로 삼아 넬슨 베이, 왓슨스 베이, 이스트우드, 체리부룩 같은, 꼬부랑 빌리지에다 친숙해질 때까지 마음을 누이고, 현실적으로 탄탄한 뿌리를 내리며, 시 세계를 건축해 냄은, 그 자체로써 치열하게 삶을 꾸려 온 징표다. 시 또한 윤희경답게 그렇게 짓는다. 청석골 미나리밭이 넬슨 베이로 이주하는가 하면, 대티 고개를 넘어서 코카투 아일랜드까지 넘보는 이민자로서 시는 짓는 자의 품이 광야를 넘어섰다.
그뿐인가. 당신의 기우뚱거림으로 타자의 비틀거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아버지의 몸 시를 알아 버리고 그 뼛속까지 아픈 환지통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 윤희경, 그녀는 이미 시인으로서 절반은 행운아다. 통점, 그건 시의 씨방 같은 거니까. 아프게 깨지고 터져 꽃은 생을 얻어 제 향기를 세상에 퍼뜨리는 거니까.
- 남홍숙 (수필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