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2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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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488g | 130*208mm |
ISBN13 | 9791165218133 |
발행일 | 2022년 02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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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488g | 130*208mm |
ISBN13 | 9791165218133 |
MD 한마디
혼밥, 혼술, 혼산 등 '혼자' 하는 문화가 현대에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고대에는 일부만의 특권이었던 고독이 널리 퍼진 건 근대 이후다. 이 책은 산보, 독서, 원예, 바느질 등 근대 이후 홀로 남은 개인이 시간을 보낸 방식을 소개한다. - 손민규 역사 MD
서장. 혼자 있는 시간을 생각한 사람들 1장. 고독, 나 그대와 거닐리 … ‘산책’에 관하여 2장. 19세기 나 홀로 집에 … ‘여가활동’에 관하여 3장. 기도, 수도원, 감옥 … ‘독방’에 관하여 4장. 20세기의 혼자와 오락 … ‘취미’에 관하여 5장. 영적인 회생 … ‘회복’에 관하여 6장. 어느 전염병의 귀환 … ‘외로움’에 관하여 7장. 디지털 시대의 고독 … ‘당신’에 관하여 |
멍 때리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혼자만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책을 읽고 뭔가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썩 좋은 취미활동이라는 생각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정리한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다양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국의 왕립 역사학회와 왕립 예술학회의 회원인 데이비드 빈센트교수는 계급과 문화, 비밀, 사생활, 정치 등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왔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산책, 여가활동, 독방(여기에서는 수도원과 감옥의 예를 들었습니다), 취미(DIY, 산책, 낚시, 정원 가꾸기 등) 등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에서의 ‘혼자 있기’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회복, 외로움, 당신 등의 주제는 혼자만의 시간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논한다는 전체의 목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입니다.
저자는 ‘시간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1791년 영국에서 출간된 스위스 철학자 요한 게오르그 치머만의 <고독에 관하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독에 관하여>가 지난 400여년 동안 ‘혼자 있기’를 경험한 사람들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해서 ‘시간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딱히 ‘혼자 있기’가 아니더라도 어떤 주제에 관해 역사적 자취를 살펴보는 내용이라면 붙일 수 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입니다.
몽테뉴는 공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성에 은둔하면서 방대한 분량의 <수상록>을 집필했습니다. 근대 유럽에서는 자기만의 공간으로 물러나는 은둔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의 예를 보더라도 은둔을 생산적으로 활용한 사례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사회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치매의 경우도 타인과의 교류가 치매를 예방하고 병증의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의 문인 존 이블린이 「활동적인 일과 삶이 고독보다 나은 이유」라는 글에서 ‘장담컨대 가장 현명한 이들은 서가가 잔뜩 있는 골방과 벽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활발한 대화에서 나온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은둔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일찍 간파한 선각자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들로 채우고 누리망도 잘 쓸 수 있도록 한 집필실에 칩거하면서 책을 써보는 꿈을 키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읽었는데,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고, 산책과 여행도 ‘혼자 있기’의 대표적 사례로 다루고 있어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책을 쓴 많은 작가들이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여행상품으로 하는 여행은 가치를 논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행에서도 현지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기회가 있고, 그들이 쌓아온 문명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시차 탓에 잠에서 깨어난 이른 새벽, 차로 이동하는 시간 등 넘쳐나는 여유시간은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생각하고 기록하기에 충분합니다. 단체 속에서 은둔을 즐길 수 있다고 할까요? 교통과 숙소 그리고 볼거리를 예매하는데 드는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은둔이 꼭 낭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리 속에서도 고독을 느낀다면 이 또한 은둔이라 할 것이고, 이런 은둔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둔 과정에서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은둔에서 나와 타인과의 소통하고 교감하는 일로 복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나타내기 위해 생긴 표현이다. 또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어휘를 만들었다.”
-신학자, 폴 틸리히 (281쪽)
흔히 목격하게 되는 사람들, 즉 이 시대의 상징적 인물을 “손에 쥔 기기 위로 조용히 어깨를 수그린 모습”이라고 저자 ‘데이비드 빈센트’는 인파 속에서 정신적으로 분리된 오늘의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무리나 군중 속에서도 철저히 개인화되어 ‘혼자 있기’를 주장하는 세계에 대한 적절한 설명처럼 보인다.
이러한 모습에서 집단 속에 있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고독과 외로움의 경계에 선 현대인의 모호한 심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을 고립적이고 기쁨 없는 쾌락주의에 내맡겨진 인간이라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와 달리 몰입과 자기 행복의 긍정적인 창의적 고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있기의 부정적 발현인가? 긍정적 실현인가? 집단과 혼자 있기의 절묘한 균형인가
책은 이 같은 ‘혼자 있기’의 역사를 집어가며 고독의 다양한 형태들 - 산책, 등산, 낚시, 바다항해, 뜨개질, 책 읽기, 수도원과 수녀원의 삶, 교도소 독방 등 -에 투영된 삶의 조화로운 가치로서 은둔, 은거, 고독의 변화를 탐사한다. 도시와 노동의 답답함에서 풀려나와 시냇물 거품을 바라보며 들판 목초지를 한가로이 거니는 산책 속의 고독을 노래하는 1820년 자작시 <고독>의 시인 ‘존 클레어’의 “군중의 회오리에서 달아나는 달콤함”이라는 고독의 이상성으로 글을 연다. 이를 시작으로 당대 걷기의 유행과 도보 여행, 등반 여행에 이르는 혼자 있기의 갈망의 형태에 스며든 삶의 철학들을 소개한다.
이른 아침의 산보에서 다가오는 평화로운 고독의 울림을 노래하는 워즈워스의 시 <서곡>에서부터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자유의 충족과 열린 마음을 가져오는 도보 철학에 이르기까지 고독한 산책자는 공동체와 하는 삶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은밀함이 주는 고독의 절대 요구성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당대에 이러한 혼자 있기에 대한 찬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뚜렷한 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부랑자 단속법이란 것이 만들어지면서 산책이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당대의 귀족과 고위 관료들에게 평민들의 혼자 걷기는 유약하고 이기적이며 불온한 행동으로 보였기에, “단독 도보는 단체 보다 윤리적으로 훨씬 아래다.”라며 단체 행동, 공동의 추구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고 하니 고독을 즐기기 위한 산책마저 금지 당하던 인간 역사의 추레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다시 산책, 홀로 걷기의 찬양으로 되돌아가보자. 바이런의 잘 알려진 연작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첫 2부에서 그는 집단의 부재와 미지 자연에 깃든 정기를 찬양한다.
“길 없는 산을 오르는 것,
홀로 비탈길을 거품 이는 폭포 위로 숙이는 것,
이것은 고독이 아니리.
이것은 자연의 매혹과 대화를 지속하고 펼쳐지지 않은
자연의 보고를 보는 일일지니.” -69쪽
혼자 있기의 수단이 여행, 등반, 산책, 그 무엇이 되었든 고독은 압박을 벗어난 해방감과 자연과 일체화되는 만족감을 준다. 직업, 공동체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자유야말로 고독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독이 마냥 축복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오염과 부패가 만연한 지하 감옥, 그리곤 참혹한 공개 사형 현장이 제도와 규율을 제대로 갖춘 교도소가 된 것은 19세기 들어서 비로소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당대 유럽 사회는 수감자들을 영적으로 교화시키겠다고 독방에 감금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모든 종류의 접촉을 차단한 채 독방에 가두어 놓았더니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고 죽이더라는 것이었다.
카톨릭은 “고독의 공포 속에서 생명의 유한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열릴 것이다.(164쪽)”고 주장했다니 이 인간에 대한 몰지각과 몰인정의 종교가 인간의 생명, 그 존엄성을 인정하기까지 다시 1세기가 흘러야 했으니 아무튼 인간 역사는 수치스러움의 연속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제된 고독은 ‘고립’이라는 타율적 차단의 형태이지 고독의 개념과는 그 범주가 다르다고 해야 할 것 같다.
18세기부터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흥미로운 고독의 역사라 할 이 책을 모두 열거하려면 지면이 한 없이 길어질 듯 하지만 고독의 위험을 경고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설 《노스트로모》의 중심인물인 저널리스트 마르틴 데코는 섬에 남아 홀로 구조를 기다리다 고독사(孤獨死) 한다. 작자는 이 비극 원인을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고독해서 죽은 것이며, “고독은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적이고, 가장 둔한 자들만 고독을 견딘다.(229쪽)”고 썼다. 절대 고독, “종일 새 한 마리 못 봤네, 온종일 이 중얼거림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완전히 적막한 하루였다. 평생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고독이라는 광활하고 무심한 세계에서 내적 목적의식을 찾을 수 없을 때 인간은 쉽게 허물어질 위험 앞에 그저 삼켜지기 쉽다.
이러한 고독의 위험에 맞서 내적 고독의 승화를 말하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존 쿠퍼 포이스의 신비주의적 고독의 철학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하겠다. 비록 오늘날 개인이 사회에 의존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지닐지언정 “번잡한 생활 속에서 사회를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은 내적 고독을 가꾸는 일뿐”이라고 반박하는 그의 무형의 명상에 대한 강조는 내 고독의 추구에 강력한 지지가 되 주었기 때문일 것 같다.
“대화를 중단하고 영혼이 ‘장구한 세월의 중얼거림을 듣고,
우주의 신비를 느끼는’데 필요한 고요를 만들어야 한다.” -234쪽
그의 지적처럼 도시를 가득 채운 고층 빌딩의 막대한 괴물성과 장중한 공포가 발산하는 피로를 훌훌 떠나 자연의 유려하고 순수한, 오랜 차분함은 내 속을 흩뜨리는 욕망과 시기와 분노를 잠재워준다. 저자는 이것을 현대의 삶에서 인공적이지 않은 틈이 있다고 믿는 무모한 순진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고독의 소명이 무한한 위험을 안는 고뇌임을 모르지 않는다.
이제 외로움이 부상하는 오늘의 시대를 말하는 외로움의 치명성이라는 과장된 담론을 살펴보는 것으로 책의 소감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영국의 건강 및 사회연구소의 2003년 보고서는 노년의 외로움이 현저히 증가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우리 시대가 외로움을 상징적 실패로 규정지으려는 태도, 그리고 외로움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인 슬픔을 소외로 이해하려는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정신의학의 만연성은 외로움을 정신 질환화 함으로써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서 증폭시키는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외로움은 양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어떤 외로움은 달리 이해될 뿐이다. 사실 여기에는 현대성의 실패를 의식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부정적 경향이 한 몫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도 한다. 물론 오늘의 사회가 경쟁적 이기심과 극단적 개인주의로 견뎌낼 만한 친밀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고작 환상적 공간이 주는 쾌락의 세계에 맡겨 인간성의 본질인 연결성을 파괴하는 현실의 은폐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혼밥을 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는 것이 소외나 고립의 외로움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의 ‘혼자 살기는 현대성의 병폐가 아니라 삶의 전략’이라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강력하게 주장하는 혼자 있기는 사회 거부가 아니라 사회 참여를 배우는 필요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이 문제되는 것은 더 이상 도피할 여지가 없을 때이지, 고독과 집단으로의 참여를 언제라도 왕래하며 이를 조절 할 수 있는 상태는 삶의 건강성이며 균형이라 할 것이다. 점점 혼자인 것이 정상이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고독을 무한정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짧고 우연한 혼자인 순간들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 시대가 야기하는 소통 파괴와 인간관계의 진정함을 훼손하는 것도 사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제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여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에서 자아의 안정감과 공감능력을 강화하는 시선을 읽어야 하며, 함께 일 때 생산적 고독에 빠져드는 법을 익혀야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책과 노동의 균형을 잡던 18세기의 사람들처럼 혼자 있기와 함께 있기의 슬기로운 지혜를 갖춰야 할 때다. 고독의 지혜가 풍부하게 묻힌 역사의 길을 거닐며 고독에 대한 빼어난 지식들을 무한하게 또한 매력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고독과 관계를 맺을지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마 이 책은 매혹적 즐거움을 선사할 것 같다.
“그래서 이제 히키코모리가 되겠다고?”
작년에 읽은 <명랑한 은둔자>에 이어 이 책을 읽는다 하자 친구가 무심히 되묻는다.
“히키코모리가 아니라, 명랑하고 낭만적인 은둔이라고!”
항변해보지만, 음..역시 '은둔'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인가? 하긴 사전을 뒤져봐도 '세상일을 피하여 숨음'이라는 해석이 따라붙으니 소극적이고 어딘가 부정적인 느낌마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을 듯 하다.
행복하게 혼자라고? 은둔하는데 명랑하다고? 그런 모순이 어딨어! 그건 불가능해! 안타깝게도,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p.41
<명랑한 은둔자> 중에서
그럼에도 나는 캐롤라인 냅이 이야기했듯 명랑한 은둔이 가능하리라 여기지만 말이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p.41
<명랑한 은둔자> 중에서
1장. 고독, 나 그대와 거닐리 : ’산책‘에 대하여
2장. 19세기 나 홀로 집에 : ’여가활동‘에 관하여
3장. 기도, 수도원, 감옥 : ’독방‘에 관하여
4장. 20세기의 혼자와 오락 : ’취미‘에 관하여
5장. 영적인 회생 : ’회복‘에 관하여
6장. 어느 전염병의 귀환 : ’외로움‘에 관하여
7장. 디지털 시대의 고독 : ’당신‘에 관하여
저자 데이비드 빈센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킬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강의, 옥스퍼드 대학교 및 케임브리지 대학교 예술,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 센터의 방문연구원으로 초빙됐으며, 현재 영국 오픈 대학교의 사회사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한다. 책날개에 적힌 소개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은 잘 엮인 한 권의 논문집 같다.
관련 도서들과 선행연구 그리고 다양한 인용을 통해 ’은둔‘의 역사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한다(이 책의 원제는 'A History of Solitude'이다). '낭만'을 기대했던 내게는 다소 아쉬운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제목(원제를 기준으로)에 걸맞게 책 속에는 1791년 출간된 <고독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시작해 '2011년'과 '2015년'을 비교한 미국 10대 인터넷 사용자들에 대한 연구내용으로 끝맺는다. 말 그대로 '은둔'의 역사를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1791년, 400년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의 ‘혼자 있기’를 고찰한 전례없는 책이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고독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스위스 철학자 요한 게오르그 치머만이 집필한 네 권짜리 책이었다. p.12
18세기 말로 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자기 회복’이 한층 의미를 띠었고, 치머만이 논문을 준비하던 시기에 출판된 장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특히 그 양상이 뚜렷했다. p.16
19세기에 도보는 고독을 경험하는 가장 평범한 수단이었다. 자연에 심취한 작가 리처드 제프리스는 자서전에서 “어딘가 가서 혼자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몇 분이라도 내 마음이 다른 일들에서 벗어난 나름의 생활을 요구했다.” p.81
가장 혁신적인 발전은 20세기 마지막 25년간 일어났다. 1979년 소니 워크맨이 출시되어 이동하면서 혼자 고품질 오락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은 이어폰을 사용해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면 외부의 방해가 줄었다. p.199
목차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혼자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방법으로 산책과 함께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논하는데 우표 수집, 자수(바느질), 독서, 원예, 낚시 등이 이에 속한다. 솔직히 ‘은둔’을 논하는데 ‘취미생활’이 이렇게나 많은 부분을 차지할지는 몰랐기에 조금 의외이긴 했는데 특히나 십자말 풀이와 직소 퍼즐 거기에 흡연까지 언급되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다른 조용한 취미처럼 우표 수집은 혼자 집중하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옆에 사람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집중력이었다. p.96
가정의 아버지와 아들들은 앨범에 몰두한 한편 어머니와 딸들은 바느질에 몰두했다. 자수의 역사는 길지만 다른 가정 여가활동들처럼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p.97
어른들은 책을 들고 앉는 걸 집중하는 수단으로 평가했고, 조용히 있고 싶다는 신호로 여겼다. 책은 북적대는 집에서 공간을 만들었다. 그런 공간이 많을수록 집단 안에서도 혼자 있을 기회가 커졌다. p.110
원예는 조용한 여가와 따로 또 함께 즐길 가능성이 뒤섞인 복잡한 예였다. 이 시기에 원계는 널리 퍼지고 책도 쏟아져, 현대생활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다목적 은둔 기능이 높이 평가되었다. p.114
19세기의 모든 여가활동 중 낚시는 조용한 활동으로 꼽혔다. 월튼은 낚시꾼이 강가에 자리잡고 “초기 기독교 은둔자들이 누린 소박함”에 빠졌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낚시꾼에게 낚시는 “마음을 쉬고 정신을 더 즐겁게 하고, 슬픔을 다른 데로 돌리고, 요동치는 생각을 가라앉히고, 열정을 중화시키고, 만족감을 일으킨다. 또 낚시를 하는 이들에게 평온과 인내의 습관을 갖게 했다”. p.123
담배를 물면 잠시 딴 데 정신을 팔 수 있었고 압박에 처했을 때 치유받을 수 있었다. 최초로 흡연의 사회적 역사를 다룬 글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고독한 사람에게 오래된 담뱃대는 소중한 동반자다.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넉넉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파이프를 채우고 안락의자를 벽난로 앞으로 가져간다. 그는 외로운 줄 모른다.” p.220-221
책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대목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산책’에 대한 언급과 외로움과 고독을 비교해 설명해준 부분이었다.
‘혼자 있으면서 상당히 편안한’ 상태인 고독과 ‘동반자 없이 혼자 있어서 불편한’ 상태인 외로움은 잘 구별될 필요가 있다. 정치학자 토머스 덤은 이렇게 쓴다. “고독 속에서 각자는 혼자지만 쓸쓸하지 않다. 각자는 혼자이면서 외롭진 않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행복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p.281
작가 사라 메이틀랜드는 “외로움에 대한 논의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고독의 긍정적 기능이 가려져 버렸다”고 짚지만, 현대사회에서 혼자 있기란 어느 한쪽에 치우쳤다기보다 고독과 외로움의 경계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p.295
성장의 과정으로서 고독의 가치도 주목을 받았다. p.300
어떤 면에서 고독은 단순히 휴식의 문제다. 관계와 삶의 변화를 생각해볼 기회인 것이다. 은둔을 선택하면 그 시간 속에서 새 목표를 찾고 새로운 만남을 위해 영혼을 충전할 수 있다. p.324
현대사회는 개인의 외로움에 주목하고 이를 염려한다. 그러다보니 ‘고독’의 가치에 대해서도 폄하하는 듯 하다. 마치 모든 사람은 ‘우리’라는 형태로 함께 해야 하고 그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듯도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둘 사이에는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 듯,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항상 무리와 함께 하는 삶 역시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적어도 ‘은둔’을 옹호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까 싶다.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의 전개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취미활동’에 이렇게나 공을 들여 기술해 두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혼자있음’의 필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혼자만의 ‘평화와 고요함’은 역사적으로 쉽사리 간과되지만, 과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노동을 마치고 회복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p.325
‘혼자 있기’는 프라이버시와 은밀함의 경계선상에 있다. 이는 자신을 탐구하고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 그에게 일어나는 일에서 타인을 배제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균형은 개인과 사회가 쌓은 신뢰가 결정한다. p.185
캐롤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와 함꼐
*기억에 남는 문장
혼자나 집단생활 각각 따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한쪽이 다른 쪽 때문에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과연 적정한 상태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부터 살피려고 한다..(중략)..지금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이라는 병’과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은 사실 2,000년 넘게 시와 산문에서 나타난 딜레마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p.13
산책은 ‘낭만적인’ 은둔을 실행하는 주된 방식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p.23
도보는 사람들을, 특히 북적대는 집을 피할 가장 간단한 수단이었다. 동시에 강렬한 문학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산책자들은 한적한 곳에서 읽을 책을 소지해 다양한 도보 문학에 기여했다. 보행 속도는 자연과 인간이 만든 환경을 숙고하기에 이상적이었다. 계속 전망이 바뀌는 와중에 발견하고 본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눈 팔지 않고 움직이는 시선은 걷는 곳이 들과 숲인지 도시의 거리인지 의식하지 않고 몰입하게 했다. p.34
작가 마일스 젭의 표현처럼 “걷기는 복닥거리는 생활에서 독립을 만끽하고 사시사철 자연과 교감하는 복된 순간을 선사했다”. 별도로 기록되지 않고 연구 대상도 아니었지만 도보 활동은 고단한 생활에서 가장 간단하고 싸고 훼방 없는 휴식 방법이었다. 동반자 동행 여부는 소중한 선택 사항이었다. p.39
“여행의 영혼은 자유, 원하는 대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하는 완벽한 자유다. 모든 방해와 불편에서 벗어나려고 여행을 떠난다. 자신을 남겨두려고, 타인들로부터 벗어나려고 떠난다.” 오솔길이나 시골 도로는 인적이 없어 말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없었다. “내겐 방해 없는 침잠한 마음뿐이며, 그것만이 완벽한 웅변이다.” p.53
혼자만의 산책은 물리적인 상황 못지않게 마음의 상태였다. 사람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특별한 형태의 분리가 필요했다. 시골 산책과 도심 탐험에서도 지도와 안내서를 갖추면 지나는 보행자들에게 말을 걸 필요가 없었다. p.82
1812년 정신질환 안내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열정적인 소설 읽기도 여기 속한다.”
이 시대의 소실 읽기는 신경질환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가장 현대적인 이따위 상사병 쓰레기로 즐거워지는 마음이라면, 이성적인 사람의 수준을 밑도는 오락거리를 찾는다. (...) 특히 여성들은 고매한 감성을 가졌기에 이런 문학적 독극물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일부 가장 불우한 여성들은 파멸의 주원인을 소설 탓으로 돌렸다. p.108
여성들은 혼자 다양한 여가활동을 할 수 있기에 남편들보다 투병생활을 더 잘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유급 저널리스트 린 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투병 중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참을성 있는 이유는 그들이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일 독서하면 눈이 아프고 머리가 멍해진다. 남성들은 큰 노력없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즐겁게 지내기 위해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러나 여성들은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수많은 소소한 도구를 갖고 있다. p.135
혼자서 하는 기도는 안락하면 힘들어졌고, 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p.149
극장 관객석이야말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최고의 창소였다..(중략)..조명이 꺼지면 답답한 현실세계가 사라졌다. 프로젝터만 번뜩이는 암흑 속에서 모든 가정사나 갈등은 한도안 멈추었다. 느긋한 관람객은 영화 속 세계에 들어가든, 상상을 일으키는 혼자만의 풍경 속을 거닐든 선택 할 수 있었다. p.213
단독 항해자들은 보통 출발 전에 책들을 챙겼다. 거친 바다에서 나 홀로 독서는 연대하는 고독을, 멀리 있는 이들과 공감하는 동지애를 나타냈다..(중략)..그는 “책들이 늘 내 친구였다. 예외 없이”라고 회고했다. p.244
마음챙김은 현대사회에 맞춘 절충적이고 사적인 상품화될 준비가 된 은둔이다. p.274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타인들과 교류할 때 일어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여성들에게 자신의 본모습과 되고 싶은 모습을 고민하고자 버거운 양육과 가사노동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p.300
친절하고 선량하지만 기본적으로 둔하고 따분한 배우자와 결혼하면 때로 몹시 외롭다. p.301
디지털 혁명은 사회적 교류와 동시에 사회적 교류 단절을 추구하는 흐름의 극치다. 혼자 있기의 역사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은둔은 물리적으로 고립되기, 연결된 채 혼자 있기, 딴 곳에 정신팔기의 세 모습으로 실행된다는 것을 알았다. p.310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출판 길벗/ 더퀘스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